[2023결산] 살길 찾는 정유·석유화학업계…배터리 업계는 '숨고르기'
[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김정우 기자] 올해 석유화학·정유 업계는 불안정한 글로벌 업황으로 녹록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석유화학 수요 악화에 따른 실적 부진과 국제유가 급등락으로 인한 정유 업계의 희비가 엇갈리는 한 해였다. 친환경 신사업에 대한 도전에 속도가 붙었으며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른 배터리 산업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수혜를 입는 동시에 여러 숙제를 떠안았다.
◇ 정유, 횡재세 논란 뒤로하고 신사업 가속
정유 업계는 널뛰는 국제유가로 인해 큰 폭의 실적 급등락을 반복했다. 상반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선을 오가면서 지난해 대비 영업이익이 급감했다가 유가가 90달러선까지 급등한 3분기 총 4조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실적 반등세를 나타냈다. 다시 4분기에는 유가가 배럴당 60달러선으로 떨어지면서 재고평가 손실이 발생, 연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약 4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업계의 실적이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기업의 초과이익에 대해 부과하는 이른바 ‘횡재세’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지난해 정유업계가 역대 최대 규모의 실적을 기록하자 황재세 도입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올 상반기 실적 하락과 함께 사그라들었고 3분기 실적 반등과 함께 다시 논의에 불이 붙은 것. 이후 다시 4분기 실적 부진이 예상되면서 횡재세 논의에 힘이 빠지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반복됐다.
정유사들은 이처럼 불안한 구조를 극복하고 산업 전반의 친환경 기조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화학과 친환경 연료 등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친환경 에너지·소재 중심의 ‘카본 투 그린’ 전략을 통해 배터리 분리막(LiBS), 플라스틱 재활용, 바이오 항공유(SAF) 등 친환경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미국 펄크럼 바이오에너지에 2000만달러를 투자했으며 울산콤플렉스(CLX)에 SAF 생산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 규모인 9조2580억원이 투입되는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석유화학 사업 비중을 기존 12%에서 2030년 25% 수준까지 2배 이상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울산에 세계 최대 규모 복합 석유화학 시설을 건립하는 사업으로 2026년 6월 완공을 목표로 한다.
GS칼텍스는 바이오 연료 사업의 선두에 섰다. 대한항공과 SAF 실증 운항에 나섰으며 HMM과 바이오 선박유 시범운행도 진행했다. 국내 업계 최초로 핀란드 바이오 연료 기업 네스테와 협력 관계를 맺고 국제 친환경 제품 인증 ‘ISCC EU’를 획득하기도 했다. 포스코, 에이치라인해운과 바이오 선박유 사업 공동 추진을 위한 협력도 진행한다.
HD현대오일뱅크도 바이오 연료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바이오디젤 제조 공장 건설, 차세대 바이오 항공유 생산, 바이오 케미칼 사업 진출 등으로 구성된 3단계 바이오 사업 로드맵을 추진 중이다. 올해 대산공장에 차세대 바이오디젤 제조 공장을 건설하고 내년까지 대산공장 일부 설비를 바이오 디젤(HVO) 생산설비로 전환할 예정이다.
◇ 석유화학, 뼈 깎고 체질개선
올해 석유화학 업계는 실적 부진에 허덕였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와 공급 과잉이 맞물리면서다. 이에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한계 사업을 정리하는 동시에 친환경·배터리 소재 사업 역량 강화에 집중했다.
LG화학은 올해 1·2분기 흑자를 기록했지만 석유화학 부문에서는 영업손실을 면치 못했다. 다만 CNT(탄소나노튜브) 등 고부가가치 사업에서 손실 폭을 줄이고 양극재 등 배터리 첨단소재 부문에서 실적 부진을 방어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2분기까지 5개 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다가 3분기 겨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분기 기준 배터리 소재 등을 포함한 첨단소재사업에서 이익이 발생했지만 기초소재사업과 등에서 발생한 더 큰 적자를 기록했다.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등도 석유화학과 기초소재 부문에서 지난해보다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29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석유화학 제품 수출액은 462억달러로 지난해 543억달러 대비 14.9% 감소할 전망이다. 석유화학 산업 핵심인 에틸렌 수출액은 올해 1~11월 기준 8억424만달러로 전년 동기 15억2130만 달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LG화학은 올해 5월 충남 대산 스티렌모노머(SM) 공장을 정리한 데 이어 9월에는 IT소재 사업부의 편광판 사업 부문을 매각했고 에틸렌·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여수 NCC 2공장 가동을 약 반년 동안 중단하기도 했다. 반면 핵심 신사업인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는 지난해 4조7000억원 수준이던 매출을 2030년 30조원 규모로 성장시킨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롯데케미칼도 한계사업을 정리하고 친환경·첨단소재 강화에 나섰다. 올해 초 배터리 소재인 동박 생산 자회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출범했으며 지난 9월에는 재활용·바이오 플라스틱 제품을 아우르는 친환경 소재 브랜드 ‘에코시드’를 론칭했다. 2030년 재활용 플라스틱 매출 2조원 달성이 목표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신사업 투자 계획을 발표한 이후 올해까지 CNT,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 등 배터리와 전기차 소재·부품 사업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 배터리, IRA 혜택 받고 재도약 준비
배터리 업계는 공격적인 해외 투자가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미국 IRA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효과로 수익성이 개선된 것. 반면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과의 경쟁이 격화됐고 원자재에 대한 대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또한 전기차 시장 성장이 주춤하는 가운데 미래 시장 선점위한 정비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25조7441억원, 영업이익 1조8250억원을 달성하며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지난해 연간 매출 25조5986억원, 영업이익 1조2137억원을 경신했다. 삼성SDI는 같은 기간 누적 매출 17조1435억원, 영업이익 1조3216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1.1%, 0.3% 성장했다. SK온은 3분기까지 562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흑자 전환에는 실패했지만 지난해 대비 적자폭을 절반가량 줄였다.
이는 미국의 AMPC 효과 덕분이다. 북미 현지에 가장 많은 공장을 보유한 LG에너지솔루션은 3분기까지 4267억원의 AMPC 혜택을 실적에 반영했다. 조지아주 1·2공장을 가동 중인 SK온의 누적 AMPC 예상액은 3769억원이다. 양사의 올해 세액공제혜택은 총 1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는 2025년부터 북미 현지 공장 가동이 개시되면 AMPC 혜택을 볼 전망이다.
올해 국내 배터리 3사의 누적 수주 잔고는 1000조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이 440조원을 넘겼고, SK온은 290조원, 삼성SDI는 260조원가량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것으로 추산된다. 중장기 일감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최근 미국 정부가 IRA 보조금 지급 기준을 강화하면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중국 자본 지분율 25% 이상인 합작법인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제한하는 FEOC 세부 규정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배터리 핵심 광물 공급망에서 중국 비중이 압도적인 데다 그간 중국 소재 기업들과의 사업 합작을 활발하게 추진한 국내 기업의 지분율 조정 등 계획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중국의 공세도 거세다. 전기차 가격 경쟁 국면에 따라 원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중국산 LFP 배터리 채택이 급격히 늘면서 그간 내수 시장에 의존하던 CATL, BYD 등 중국 기업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빠르게 늘었다. 이에 3사도 LFP 배터리 개발에 나서면서 맞불을 놓고 있다.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에 따른 숨고르기도 진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 미시간 법인은 11월 현장직 인력 170명을 정리해고 했으며, SK온의 미국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도 미국 조지아 공장의 생산량을 줄이고 일부 직원에 대한 휴직 조치를 실시했다.
또한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포드, 튀르키예 코치 그룹과 튀르키예 배터리 합작공장 계획을 철회했으며, SK온과 포드의 합작 켄터키 2공장 가동 시점도 2026년 이후로 연기됐다.
이런 가운데 일본 파나소닉이 완성차 합작사와 AMPC 혜택을 나누겠다고 선언, 완성차 업계의 AMPC 혜택 분할 요구가 본격화 되는 모양새다. 국내 배터리사들도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주요 합작 파트너사와 관련 협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내년 ‘글로벌 최저한세’가 시행되면 해외서 받은 AMPC 혜택분에 대한 적잖은 추가 세금을 국내에서 토해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은 회사를 업계 선두 위치까지 이끈 권영수 부회장 후임 최고경영자(CEO)로 김동명 사장을 신임 선임했고, SK온도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대표를 신임 CEO로 앉히면서 새로운 시장 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사령탑을 세웠다. 삼성SDI는 최윤호 사장이 자리를 지켰지만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차세대 제품인 전고체 배터리 전담 조직 ASB사업화추진팀을 설치하는 등 정비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