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동력 잃은 아파트 리모델링…건설사도 ‘손절’
‘재건축’ 쏠린 규제 완화에 리모델링 '찬밥신세' 전락 리모델링 조합들, ‘재건축 선회’ 움직임 가시화 한화·쌍용, 사업성 문제로 리모델링 시공권 반납 검토
[데일리한국 김하수 기자] 재건축사업 보다 진입 장벽이 낮고 사업 속도가 빨라 각광받던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이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1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정비사업 규제 완화 정책이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집중되면서 리모델링 사업의 추진 동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일부 건설사는 사업성 문제로 이미 확보한 리모델링 시공권을 포기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리모델링은 기존 아파트를 철거하는 재건축과 달리 골조(뼈대)를 유지한 채 증축하는 방식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 강력한 재건축 규제로 안전진단 통과가 어렵거나 용적률이 높은 단지를 중심으로 리모델링 ‘붐(Boom)’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러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현 정부가 재건축 단지들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리모델링 사업의 장점들이 사라진 것이다.
정부는 연초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1.10 부동산대책’을 내놨다. 아파트를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도록 했으며, 조합설립 시기도 앞당기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또 선도지구 지정, 용적률 상향 등 혜택도 뒤따른다.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업의 출발선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반면에 리모델링 사업은 오히려 규제가 강화됐다. 서울시는 지난해 공동주택 리모델링 안전기준 개선 방안을 마련해 수평증축도 수직증축과 마찬가지로 2차 안전진단을 거치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그동안 1층에 필로티를 짓고 최상층 한층을 증축하는 리모델링은 수평증축으로 간주돼 안전진단을 1차만 통과하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방식도 수직 증축으로 간주돼 2차 안전진단을 받아야 사업이 가능해졌다. 리모델링 진행에 큰 난관이 생긴 것이다.
이에 리모델링을 계획하던 단지들은 재건축으로 사업을 선회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송파동 거여1단지는 지난해 3월 임시총회를 열고 리모델링 사업 중단을 결정했으며, 지난 2008년부터 리모델링을 추진해온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는 일부 소유주들을 중심으로 ‘조합 해산’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기 신도시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단지들도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이후 재건축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주민 반대 의견이 잇따라 제기되며 내홍을 겪고 있다.
시공권을 포기하는 건설사들도 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공사비마저 급등하면서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관리에 보수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한화 건설부문은 경기 성남시 매화마을2단지 리모델링 조합에 사업 참여 철회를 통보했다. 지난해 8월 수의계약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약 8개월만이다. 회사 측은 기업운영 상황과 공사비 등의 이유로 조합에 사업 철회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성동구 옥수극동 아파트도 시공사인 쌍용건설과 계약 해지 수순을 밟고 있다. 시공사의 대여금 지원 중단으로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게 돼 해지 절차를 밟게 됐다는 것이 조합의 입장이다.
리모델링 사업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 전국 리모델링 단지 주민과 조합원들의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재건축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리모델링 사업 관련 규제도 완화해 달라는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서울시 리모델링 주택조합협의회(서리협)관계자는 “리모델링 사업으로 인해 공급되는 주택 수에는 한계가 많다는 잘못된 인식이 있는데, 수평증축 및 별동 증축 방식을 통해 재건축 정비사업에 버금가는 신규주택 공급이 가능하다”며 “공동주택 리모델링 특별법 등 국회에 계류 중인 공동주택 리모델링 활성화 법안이 조속하게 통과해야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