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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수필가 11인] 박원명화 '한여름 밤의 탱고'

주간한국 8월26일자 31면 게재

2024-08-25     김철희 기자
박원명화 수필가. 사진=토토 사이트 커뮤니티DB

아무래도 방 어딘가에 서식처가 있는 게 분명하다.
여름이 오기도 전에 컴백이라니? 철모르고 기승을 부리는 모기들이 도를 넘나들고 있다. 생존의 전략인지 번식의 본능인지 모르지만, 그 처사가 고약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못된 것을 퇴치하기 위해 집안 곳곳에 향을 피우고, 분사기를 들이대고, 연막을 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발원 본색 할 방도를 모르겠다. 종자가 바뀐 것인지 면역이 된 것인지 백약이 무효이다. 살충제 냄새에 견디지 못하는 건 모기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니, 영장의 체통이 말씀이 아니다. 

모기는 저승까지 함께 가기로 약속한 부부의 설화에서 탄생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부인이 죽자 망연자실한 남편은 죽은 부인의 시체를 안고 하루에 세 번 환생을 기원한다. 이를 가상히 여긴 도인이 시신의 입안에 세 방울의 피를 떨어뜨려 아내를 소생시킨다. 그러나 아내는 재물에 눈이 어두워 세 방울의 피를 돌려주고 남편을 떨쳐내기 위해 그 손에서 다시 피를 뽑아낸다. 남편을 배신한 부인은 다시 깨어나지 못하고, 도인은 이 여인을 모기로 만들어 살게 했다는 베트남 동화에 나온 이야기다. 

은혜도 고마움도 모르고 남편을 배신하고 모기로 살 수밖에 없는 여인의 한이 남의 피를 탐하는 것이라면 더욱 용서 못 할 일이다. 모기가 들어올세라 문이란 문은 죄다 꼭꼭 여며 보지만 야밤이든 낮이든 상관없이 찾아와 천방지축 탱고 춤을 추며 사람을 괴롭힌다. 

밤에 불이 켜졌을 때는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도 불이 꺼지면 어둠을 기다리던 흡혈귀처럼 나타나 물고 도망치기를 반복하니 이 끈질긴 놈을 어찌하랴. 잠자리에 누우면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귀찮아 이리저리 팔을 휘둘러 보지만 그것도 잠시, 놈은 줄기차게 귓전을 윙윙 맴돈다. 아무리 너그러운 사람도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다. 

팔목이 가려워 불을 켠다. 손등에서 팔목까지 벌써 대여섯 군데가 물려 예민한 살갗이 벌겋게 성이 나 있다. 이대로 그냥 잠들었다가는 밤새 모기에게 뜯겨 피도 빼앗기고 살갗도 온전치 못할 것 같아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불을 끄고 누워 있으려니 어디선가 윙~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떡하든 박살 내고 말겠다는 오기가 발동한다. 모기와의 한판 전쟁을 선포하고 먼저 천장부터 살핀다. 천장에서 벽까지 무늬 하나하나를 세며 구석구석을 검색해 보지만 놈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다. 대체 어디에 숨은 것일까? 한순간 자취도 없이 사라진 걸 보면 사람보다 더 지능적인 것 같다. 

안경까지 찾아 걸고 섬멸 작전에 나서기로 한다. 찾다 찾다 지쳐 불을 켜둔 채 누워 온몸을 이불로 감싸고 얼굴만 낚싯밥으로 내놓는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30여 분, 피 냄새의 유혹인지 배가 고팠는지 주위를 맴도는 놈의 정체가 포착된 순간 와다닥 손바닥으로 내리친다. 확인사살 하듯 눈길을 쫓아 보지만 공중을 차고 나는 솜씨가 총알보다 빠르다.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벽을 치고 나서야 드디어 녀석을 한 마리 해치운 쾌거를 맛본다.

사진=작가 제공

승리의 미소를 짓고 다시 불을 끄고 누워 있으려니 어디선가 또 제트기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방금 죽은 몸의 원혼일까! 동료의 보복 출격일까. 다시 불을 켠다. 무거운 눈꺼풀을 반쯤 열고 살펴본다. 얼마를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다. 치고 빠지는 묘수가 전술을 익힌 듯하다. 아무래도 쉽사리 나타날 것 같지 않아 다시 아까처럼 얼굴만 미끼로 내놓고 기다려보기로 한다. 기다리다 졸음에 겨워 결국 내가 백기를 들고 말았으니.

피를 빨아먹든 말든, 살을 뜯어 먹든 말든, 불을 끄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잠이 막 들려는 순간, 또다시 앵앵 팔랑개비 돌아가는 소리가 귓전을 간질인다. 적군을 향해 출전하는 병사처럼 나는 분연히 일어난다.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쫓기고 쫓는 한바탕 혈전을 다짐하며 온 방을 수색하듯 샅샅이 흩어본다. 역시 없다. 내 눈 밖의 어딘가에 숨어서 '나 잡아봐라' 비웃는 것 같아 은근슬쩍 약이 오른다. 그래 내가 얼마나 끈질긴가를 분명히 보여주기로 하자. 잠을 떨쳐내고 두어 시간 망을 보며 기다린 끝에 결국 놈을 발견하고 꽝 하는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놈을 박살 내는 데 성공한다. 

모기는 2억 년 전인 중생대 때부터 지금까지 종족을 유지해온 적응력이 매우 뛰어난 생물이다. 열대, 온대 지방은 물론 극지 부근에서도 서식한다. 2700여 종의 종류 중, 우리나라에는 약 55종이 있지만, 우리 주변을 맴도는 건 10여 종 정도이다. 모기는 64km 밖에서도 사람의 냄새를 맡는다고 한다. 특별히 모기를 잘 타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잘 씻지 않거나 피가 단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한번 피를 빠는 데는 8-10초가 소요 되며 그 양은 5㎕에 불과하다. 하지만 무서운 전염병을 옮겨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니 작은 생명체이지만 사람에게는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약삭빠른 모기와의 전쟁, 그야말로 밤새 초가삼간 밝히느라 잠을 설치는 일이 잦다. 그러나 제까짓 것이 아무리 드세다 한들 대 자연의 도도한 흐름을 언제까지 거역할 수 있으랴.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으니 기다리다 보면 모기도 제풀에 스러질 날이 오리라.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자연의 순리마저 외면한 생물들의 진화가 날로 새로워지는 것도 사람들의 욕심에서 비롯된 변화라고 하니 몰골이 송연해진다.

◆박원명화 주요 약력

△충북 청주 출생 △2002년 한국수필 등단 △(사)한국수필가협회 사무총장 △수필집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달빛 사랑' '디카, 삶을 그리다' 외 다수 △제39회 일붕 문학상, 제15회 한국문협 백년 상, 제42회 한국수필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