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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수필 공간] 서미숙 수필가 '명품'

2025-09-01     김철희 기자
서미숙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DB

지난한 길을 돌아왔다. 아픈 상처를 부여잡고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던 고국의 품이 아니던가. 탐욕의 거친 손길에 의해 낯선 땅, 어두운 창고 속에 팽개쳐질 땐 내 삶이 허무하게 끝나는 줄만 알았다. 

천지신명의 보살핌이었을까. 어느 날 나를 만나기 위해 꼬레CORE에서 온 자그마한 여인 덕분에 백 년을 훌쩍 넘겨서야 자존심을 회복하게 되었다.

꿈만 같다. 그 옛날, 나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강화도 행궁의 외규장각에 머물렀지. 오직 국왕의 간택만을 기다리며 우아하게 매무새를 꾸미는 일이 전부였다. 범상치 않은 내 모습에 반한 약탈자들은 전리품인 양 함부로 나를 취하지 않았던가. 제 아무리 명품을 휘감아도 절대 나를 흉내 내지는 못하리라.

나는 날마다 기품 있는 초록색 비단옷만 입었다. 머리와 꼬리가 달린 구름과 복을 기원하는 전보錢寶, 여의如意, 서각犀角, 만자卍字등 다양한 운보문단雲寶紋緞이 가득한 옷을. 한쪽에는 길게 변철邊鐵을 대어 포인트를 주었다. 

그곳에도 은은한 능화 문양을 잊지 않았지. 오침을 한 중앙에는 한옥의 방 문고리를 닮은 놋쇠 물림을 앉히고, 위아래는 방실한 국화 문양의 정을 각각 두 개씩 박았다.

그렇다고 내가 겉옷에만 정성을 들이겠는가. 민망하지만 나의 속옷도 살짝 소개할까나. 속치마는 고급 초주지로 지었다네. 그것도 여러 겹으로. 두께와 밀도에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친구들과는 확연히 차별화했지. 

그곳에는 이름난 서예가를 초빙해 붉은색으로 인찰선을 긋고, 해서체로 가지런하게 글자를 써넣었다네. 도화서의 화공은 최고급 안료를 사용하여 글에 어울리는 멋진 그림을 그려 주었지.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색감이 선명하게 살아 있으니 과거의 영화가 그리울 수밖에.

내 속옷을 겹겹이 들춰보면 엄청난 문화사에 관한 정보가 숨어있지. 바로 기록문화의 꽃이라고 알려진 의궤라네. 의궤는 '의식의 궤범'이란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란 뜻이지. 

조선 시대 국가와 왕실의 각종 행사 절차를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한 걸세. 세자 및 왕비의 책봉 행사와 결혼, 국장 논의 및 준비 과정, 의식 절차 및 경비, 행사 유공자들의 포상 등을 규정한 왕실 규범집으로 후대 사람들이 원활하게 의례나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모범적인 선례로 만들어진 것이라고나 할까.

이는 철저한 기록 정신의 산물로서 예를 숭상하는 유교문화권의 핵심 요소가 담겨 있지. 그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국가의 통치 철학과 운영 체계를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네. 

조선 건국 초기인 15세기부터 만들어졌으나 현재에는 임진왜란 이후의 것만 남아 있다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국왕이 친히 열람하는 어람용과, 사고와 관련 부서에 나누어 보관하기 위한 분상용으로 구분된다네. 국왕을 위한 어람용은 당대 최고 인쇄술과 제본의 진수를 엿볼 수 있게 신경을 썼지.

그런데 가관인 것은 이곳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이라네. 언제 봤다고 나를 부둥켜안고는 절대 고국으로 보내줄 수 없다며 난리가 났지.

나를 본국으로 데리고 가려 애쓰던 자그마한 여인은 박병선이란 분이라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에서 약탈해간 물품의 행방을 찾으라던 은사의 말씀을 프랑스 유학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지. 

그녀는 학문에 남다른 열정을 기울였고, 많은 정보를 섭렵하고자 파리국립도서관을 자주 드나들면서 도서관의 서적을 접하였다네. 그녀의 잦은 도서관 출입은 도서관 직원들 사이에 회자하였고, 급기야 임시 사서라는 특별연구원으로 채용되었지.

그 여인은 1970년대 초, 중국 책으로 알려져 있던 직지심체요절이 '1377년에 찍은 우리의 금속 활자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지. 그 또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찾아내었다네. 당시 세계 최초 활자본으로 공인받던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보다 78년이나 앞선 활자본임을 만천하에 알리기도 했고.

안타깝게도 나의 존재를 한국 언론에 알렸다는 이유로 도서관에서 해고까지 당했다네. 냉수로 허기를 달래며 매일 도서관에 와서 나를 만났으니 참으로 대단한 집념이었지.

나는 고국으로 돌아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네.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 나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밤잠까지 설치며 지방에서 두 번이나 올라온 열성 팬도 있었다네. 

그녀와 처음 만나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네. 그녀는 다소 흥분된 모습으로 한동안 내 앞에서 떠날 줄 몰랐지.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사진도 수없이 찍어 대었지. 그러더니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왔다네. 오직 나를 만나기 위해 몇 시간씩 고속버스를 타고.

그녀는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가례 절차를 기록한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의 반차도에 매료되었지. 삼백팔십여필의 말과 천삼백여명의 등장인물을 오십여 쪽에 달하는 반차도의 적재적소에 일일이 그려 넣은 걸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전과는 달리 왕과 왕비의 연이 모두 등장하지. 그러나 지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빈 가마로 처리하지. 놀랍게도 궁중의 상궁, 시녀, 의녀 등 여인들도 가례 행렬에 말을 탄 당당한 모습으로 한 자리를 차지한다네. 4D로 새롭게 재현한 반차도는 대형 에니메이션을 방불케 한다네.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색다른 체험이 되었을 걸세.

내가 떠나 있는 동안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지. 그 무렵 성의 특수성과 아름다움보다도 성을 축조하는 과정을 그림과 더불어 자세한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 자체가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아마도 우리 선조들은 지혜로운 분들이었나 보네. 일찍이 기록의 중요성을 간파한 걸 보면. 이제 강제로 일본에 끌려갔던 내 친구들도 돌아왔다네.

이젠 나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네. 조선왕조의 주요 의식을 방대한 양의 그림과 글을 체계적으로 담고 있지 않은가. 조그마한 군주국가의 기록이 아니라, 한때 세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유교 전통의 핵심을 대표하는 기록이니까.    이러한 유형은 동서양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기록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지. 

요즘 외국에서는 인테리어를 위한 한정판 명품 책을 제작한다지. 쑥스럽지만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나 의궤야말로 예술적 품격을 지닌 최고의 명품이 아닐까.

◆ 서미숙 주요 약력

△경북 안동 출생 △계간 '문장'(2015) 등단 △수필집 '남의 눈에 꽃이 되게' 기행수필집 '종점 기행'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 △프리랜서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