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 이경은의 독서에세이...에밀 졸라의 '결혼, 죽음'
'내 안의 굉음을 울리는 진실'
그가 걸어가는 발자국마다 '나는 고발한다'라는 함성이 신발 밑창으로부터 새어 들어온다. 피할 수 없다. 신발을 바꿔 신어도 소용없다. 한번 비에 젖은 신발에서 나는 냄새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나에게 두 사람의 외국 소설가를 뽑으라면 도스토예프스키와 에밀 졸라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조건 좋아해서이고, 에밀 졸라는 읽으면서 맨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매번 놀라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대한 환상이 있었지만, 프랑스에 열망이 있지는 않았다. 러시아 여행을 할 때 프로그램에 일부러 밤 열차 여정을 넣었다. 창문으로 자작나무 숲을 내다보고 싶어서... 밤새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고 눈이 빠지게 내다봤다. 하지만 자작나무는 시시해서 맥이 빠졌고, 서운한 마음을 여행 가방에 쑤셔 넣어야 했다. 프랑스 일주 여행은 느닷없이 떠나게 되었는데, 왜 모든 예술가들이 이 땅으로 오는지를 알 것 같았다. 역시 여행은 현장 체험이다.
사실 나는 자연주의 대가라는 말보다는 그저 에밀 졸라의 소설이 재미나서 <테레즈 라깽>부터 <목로주점> <나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제르미널> <작품>, 그리고 맨 끝으로 <결혼, 죽음>을 읽었다. 저 <작품>이라는 하나의 작품 때문에 폴 세잔과 이별한 일은 가슴 아프다. 우정인가, 작가인가. 늘 답변이 궁해지는 질문이다.
소설 <결혼, 죽음>을 보는 순간, 궁금했다. 결혼이 죽음인가. 결혼 옆에는 늘 죽음이 파트너처럼 어슬렁대고 있나. 결혼과 죽음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책을 폈다. 단편소설이라 짧은데 그 여운이 길고, 처절하게 냉담하다. 차라리 칼로 베이듯이 날카로운 게 낫겠다. 뭐 풍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입 안의 모래처럼 꺼끌거리고, 너무 대놓고 들여다봐서 건조하고 메마르다. 그의 장편에서 보았던 눙치는 맛도 적다. 내가 손에 땀을 내면서 보았던 <테레즈 라깽>같은 감정이입도 없다. 게다가 프랑수와 모리악의 <테레즈 데케루>까지 보게 만드는 힘도 없다.
그런데 결혼과 죽음의 진실한 모습을 제대로 직면한 기분이 들었다. 재미있는 서사나 감동어린 장면도 없고, 서점의 맨 위나 맨 아래 칸에 놓일 것 같지만 먼지를 툭툭 털고 보니 보물 같은 책이다.
피하지 않아서 엿볼 수 있었다. 결혼과 죽음이라는 뒷그림자를. 내 안의 굉음을 울리는 진실을. 마르틴 루터의 그 유명한 진실의 말을. "와인은 강하다. 왕은 더 강하고, 여자는 더욱 더 강하다. 그러나 가장 강한 것은 진실이다" 며칠 후 새벽, 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결혼과 죽음이 바로 '삶'이 아닌가.
깊고 싸한 메독와인에 올리비아 투쌩(Olivier toussaint)의 <Eden is a Magic World>를 듣는 책!
◆이경은 주요 약력
△서울 출생 △계간수필(1998) 등단 △수필집 '내 안의 길' '가만히 기린을 바라보았다' '주름' 외 6권. △그 중 수필 작법집 '이경은의 글쓰기 강의노트', 포토에세이 '그림자도 이야기를 한다', 독서 에세이 '카프카와 함께 빵을 먹는 오후' △디카 에세이집 '푸른 방의 추억들' △한국문학백년상(한국문협 주관), 율목문학상, 한국산문문학상, 숙명문학상 등 수상 △현재 방송작가, 클래식 음악 극작가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