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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4색 문화 에세이-22] 이 은 희 수필가 '신운이 감도는 돌탑'

진안 마이산 탑사

2024-11-27     김철희 기자
전북 진안군 마이산 탑사에서 바라본 전경. 사진=작가 제공

골짜기로 들어설수록 두 봉우리가 낙타 등의 쌍봉처럼 쫑긋하다. 두 개의 암봉은 숫마이봉(681.1m)과 암마이봉(687.4m). 마주하는 암벽은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동안 형성된 지질이다. 눈앞에 거대한 암벽이 지각 변동으로 퇴적층이 암석화된 후 융기한 것이라니 두렵기도 하다. 지금도 땅속 어딘가에선 바위가 부딪고 틈이 생기는 변화가 일고 있단다. 암벽에 군데군데 뚫린 구멍이 그 증거라니 입이 절로 벌어진다. 산의 지명은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는 용출산, 조선시대에는 태종이 산의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馬耳山)이란 이름을 내려 그렇게 불리고 있다. 

발을 딛고 서 있는 지상이 평균 해발 300미터가 넘는 고지. 일부 지역은 해발 500미터 이상으로 고산 지형에 속한다. 전북 진안의 역사와 문화 해설을 듣고 있자니 다른 나라에 온 듯 생소하다. 평지처럼 느껴지는 산길은 해발 고도가 높아 선선하다. 하지만, 겨울에는 한파와 눈이 자주 내려 매우 춥다고 한다. 진안군 인구는 면적 대비하여 약 2만 3천 명이라니 도시가 쾌적한 환경일 수밖에 없다. 진안이 호남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데가 여기에 있다. 마이산 중턱에 작은 움막을 짓고 호숫가 암봉을 바라보며 신선처럼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마이산은 사람이 쌓은 신비스러운 돌탑으로 유명하다. 돌탑을 보고자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드는 진안이다. 암벽과 바위, 주위에 돌 천지이니 108기 돌탑을 세울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돌탑을 쌓았다고 하니 놀랍지 않은가. 돌탑은 사람들의 거친 손길에 아쉽게도 80여 기가 남아 있단다. 정녕 돌탑은 마이산(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2호)을 마이산답게 거듭나게 한 문화유산이다.

마이산 두 개의 암봉,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진=작가 제공

돌탑에서 신운(神韻)이 감돈다. 탑 앞에서 보암보암으로 무슨 말인가 하려다 멈춘다. 각각의 돌탑은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특별한 접착제 없이 자연석을 쌓아 올리려면 돌의 모형을 맞추고 각도 등에 심혈을 기울였으리라. 깊은 신앙심이 없다며 돌탑을 이렇듯 정교하게 쌓을 수도 없었으리라. 그의 정성과 염원에 강풍과 폭우도 비껴가지 않았으랴. 

이갑용(1860~1957) 처사가 산속에서 혼자 돌탑을 쌓으며 수행자로 지냈다고 전해진다. 현재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녕 그림자만 쫓다 나뭇가지에 걸린 작가의 뜻을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눈에 보이는 돌탑에서 심오한 뜻을 헤아리지 못하니 영양괘각(羚羊掛角)이 아닐 수 없다. 돌탑 앞에서 고개만 절로 숙어질 뿐이다. 

여느 산사든 작은 돌탑은 있다. 하지만, 마이산처럼 거대하고 정교한 돌탑은 찾아볼 수 없으리라. 그가 깊은 산골로 들어간 시기가 일제강점기로 추정된다. 아마도 침략자의 짓거리가 보기 싫어 산속에 숨어 사는 은자로 남길 원했으리라. 추측이 맞는다면, 울분을 삭이며 돌을 한 개씩 올렸으리라. 탑에 하나의 돌을 올릴 때 각자의 염원을 빌며 가장 낮은 자세가 되지 않던가. 그의 울분이 돌탑에 녹아들어 견고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자연석으로 쌓은 마이산 천지탑(天地塔). 사진=작가 제공

마이산은 탑사에서 바라보는 비경이 제일이다. 탑사를 향하는 길은 세속의 길을 지우라는 듯 백팔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야만 한다. 등골에서 흐르는 땀을 식히고자 허리를 펼 즈음 전각 앞에 닿는다. 탑사에서 바라본 풍광은 발아래 수려하게 펼쳐지리라. 협곡 아래 솟아오른 돌탑군도 비장하고, 암벽에 붙은 전각은 더없이 고아하게 다가온다. 잠시 풍경 속에서 주객일체(主客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이다. '아무런 감각의 혼란도 없고, 심정의 고갈도 없고, 다만 무한한 풍부 유열(愉悅)과 평화가' 있다는 이양하의 〈신록예찬〉 글귀처럼 심신이 자유롭다.

마이산은 진안으로 많은 사람을 불러들인다. 수려한 자연의 돌탑 자원은 후인에게 돌아가고 있다. 전국 산사에 돌탑은 많지만, 마이산의 돌탑은 그만의 남다른 아우라가 느껴진다. 돌탑에 감도는 숨결과 암묵적 언어를 어찌 말로 다 형용하랴. 삶은 문화이다. 삶에 어떤 문화를 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지리라. 처사는 그만의 독특한 삶의 문화를 남기고 떠났다. 부디 돌탑이 오래 보존되어 후인에게 풍요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었으면 한다.

이은희 수필가. 사진=토토 사이트 커뮤니티DB

◆이은희 주요 약력

△충북 청주 출생 △ '월간문학' 등단(2004)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구름카페문학상, 박종화문학상,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외 다수 △수필집 '검댕이' '화화화' '불경스러운 언어' 외 8권 △계간 '에세이포레' 주간 △청주문화원 부원장 △충북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