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문학,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검은 원피스 입고 노벨문학상 수상
“가장 어두운 밤에도 우리를 잇는 것은 언어” 연회서 수상소감 스웨덴 국왕, 시상식서 문학상 121번째 주인공에 메달·증서 수여
[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민병무 기자] 한강이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다”라고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10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외신 등에 따르면 한강은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 블루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고 말했다.
한강은 이날 소감에서 어린 시절 비를 피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이를 글 쓰는 일에 비유했다.
그는 “저는 여덟 살 때 오후 산수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다른 아이들과 건물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일을 기억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길 건너편에는 비슷한 건물의 처마 아래에 비를 피하는 사람들이 보여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그 비에 팔과 다리가 젖는 것을 느끼면서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와 나란히 비를 피하는 사람들과 길 건너편에서 비를 피하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나’로서 살고 있었다”며 “이는 경이로운 순간이었고,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한강은 또 “책을 읽고 글을 쓴 시간을 돌아보면 저는 이런 경이로운 순간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며 “어의 실타래를 따라 마음의 깊은 곳에 들어가면 다른 내면과 마주한다”고 말했다.
이날 한강은 연회 말미에 연회장 가운데로 이동해 약 4분 동안 소감을 말했다. 행사 진행자는 한국어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게 되어 영광이다”라며 한강의 이름을 불렀다.
오후 7시에 시작된 연회는 국왕과 총리, 스웨덴 한림원 등 수상자 선정 기관 관계자 등 1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식사 사이사이 공연이 펼쳐지며 4시간 넘게 이어졌다.
스톡홀름에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한강은 스웨덴 국왕의 사위인 크리스토퍼 오닐과 함께 연회장에 입장했고, 국왕과 대각선으로 마주 보는 자리에서 연회를 즐겼다. 수상자는 연회에 지인을 초청할 수 있어 한국 출판사 관계자들도 함께 자리했다.
연회를 중계한 스웨덴의 공영 방송사 SVT는 이날 방송 중 한강을 인터뷰한 영상을 공개했다.
한강은 이 인터뷰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집필한 과정에 대해 “모든 조각을 모으고 싶었다”며 “해당한 사람들의 일기를 읽었고, 이는 생존자로서의 죄책감이었다. 어떤 사람은 저나 제 가족 대신 죽었을 수도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한강은 연회에 앞서 이날 오후 스톡홀름의 랜드마크인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해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시상식은 국왕의 입장으로 시작됐다. 이어 오케스트라 연주로 모차르트의 행진곡이 울려 퍼지자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한강이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입장해 시상식장 무대 중앙 왼편에 앉았다.
한강은 부문별 시상 순서에 따라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에 이어 네 번째로 호명됐다.
한림원 종신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은 시상에 앞선 5분가량의 연설에서 한강의 작품들에 대해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했다.
맛손은 이어 영어로 “친애하는(Dear) 한강”이라고 부르며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나와 주시기를 바란다”고 청했다.
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가운데로 향하자 장내 참석자들이 모두 기립했고, 그가 메달과 증서를 받아 들고 환한 미소를 띠며 국왕과 악수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총 1500여명이 참석한 시상식은 스웨덴의 주요 연례행사로 꼽히는 만큼 격식을 갖춰 진행됐다.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이브닝드레스를 입었고 시상이 이뤄질 때마다 축하 음악이 연주됐다.
한강은 역대 121번째이자 여성으로는 18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이며, 문학상을 받는 것은 1901년 이 상이 처음 수여된 이래 123년 만의 일이다.
노벨상을 상징하는 ‘블루 카펫’을 밟은 한국인은 한강이 처음이다. 평화상 시상식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려 김 전 대통령은 오슬로에서 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