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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조건부 상여도 통상임금 포함'...산업계 임금부담 커져

경제단체 "기업 경영 환경 악화...현장 혼란 불가피"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벌어질 듯

2024-12-20     안효문 기자
대법원 . 사진 = 연합뉴스 제공

[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안효문 기자] 대법원이 지난 19일 조건부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산업계는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국제정세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라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강화될 전망이어서 한국 산업계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화생명보험 전현직 근로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지급 조건은 무효”라며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또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서도 “최소근무일수 조건은 무효”라며 역시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20일 산업계에 따르면 당장 내년부터 임금협상 시 난항이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최소근무일수 조건 등이 붙은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됐는데, 앞으로는 정기상여금에 ‘상여금 지급일 현재 재직자에게만 지급된다’ ‘기준기간 내 15일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 대해서만 상여금을 지급한다’와 같은 조건이 달려있어도 모두 통상임금으로 보겠다고 대법원이 판결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11월 대법원이 갑을오토텍 노조가 제기한 소송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통상임금의 일반적 기준으로 제시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동시에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판결한 지 11년만에 상황이 뒤집어졌다.

이날 대법원 결정으로 산업계는 대폭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특히 한화생명보험 노조가 제기한 소송의 쟁점인 재직자 지급 조건은 많은 기업이 동일한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한화생명 측은 “법원의 의견을 존중하고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제단체 "산업계 혼란 우려" 한 목소리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라인 전경. 사진=현대차 제공

대한상공회의소는 강석구 조사본부장 명의의 입장문에서 "지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형성된 통상임금 판단기준인 '재직자 지급원칙'을 뒤집는 이번 전원합의체의 판결에 따라 산업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고, 대내외 불확실한 경영 여건과 맞물려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연공 서열 중심의 우리나라 임금체계를 직무급으로 바꾸는 근본적인 개선방안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인협회도 이상호 경제산업본부장 명의의 성명에서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가 우려되는 상황에 통상임금 고정성 요건을 제외하면서 임금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예측지 못한 경영 리스크를 가중해 고용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현장의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고 향후 소송 제기 등 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며  "정치적 혼란과 내수 부진, 수출증가세 감소 등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재무적 부담까지 떠안게 돼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지속되는 고금리·고물가, 장기간의 내수 부진 등으로 경영환경이 악화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번 판결로 중소기업의 추가적인 비용 부담과 노사 간의 갈등이 증가할 수 있고 고용감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연간 7조원 인건비 추가 부담...기업간 영향 차이날 듯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전경. 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경총에 따르면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우리나라 기업 26.7%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부담해야 할 추가적인 인건비는 연간 6조7889억원으로 추산된다. 연장근무, 야간근무, 휴일근무, 연차수당 등이 한 번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았던 수당 등은 아무래도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더 세밀히 책정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런 금액들이 통상임금에 산입될 경우 (임금인상 효과는) 대기업 근로자들이 더 크게 누리게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의 당사자격인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재직자 지급 조건이나 최소근무일수 등의 조건으로 상여금을 지급해온 다수의 기업들은 인건비 추가 부담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대차의 경우 판결 이전부터 매년 빠르게 늘고 있는 인건비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회사 공시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연간 9000억원대였던 종업원 급여 비용은 지난해 1조2000억원까지 늘어난 상태다. 지난해 급여 인상율은 13.5%에 달했다.

HD현대 등 이번 판결에 비교적 자유로운 회사들도 있다. 이미 노사협약에 따라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으로 처리하는 경우다.

HD현대의 경우 지난 2012년 조선부문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 근로자 10명이 사측을 상대로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추가 법정수당 등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 대법원이 상여금 전부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은  미지급 법정수당 및 퇴직금을 산정·지급하고, 임금체계도 개편한 바 있다.

10년이 넘는 소송 결과 대법원이 상여금 800% 전부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 HD현대중공업은 소송에서 패소해 미지급 법정수당 및 퇴직금을 산정해 지급을 완료했고, 임금체계도 개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