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수필가 11인] 김 광 '신호(信號)'
주간한국 23일자 31면 게재
벽(壁)은 요지부동이다.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맴만 도는 화두. 자신만의 동굴 하나쯤은 있어야 세상과의 싸움에서 지칠 때 그곳에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내가 되려 그 동굴에 갇혀버렸다. '눈부신 설산을 다시 바라볼 수 있을까. 오로라의 밤하늘과 '마추픽추'에 배인 잉카인의 꿈을 되새길 순 있을까. 이 암흑의 끝이 있기나 한 건가. 이대로 이름도 없는 화석(化石)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팬데믹 이후 유폐된 삶이 길어지다 보니 최선이라고 믿었던 가치나 진리, 아름다움에 대한 소신까지 회의론에 잠겨버렸다.
작년 봄이었나. 갑자기 어지럼증과 몸이 한쪽으로 기우는 현상이 찾아온 게. 가슴이 철렁했다. 머릿속에 고약한 녀석이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풀어 오르는 녀석. 녀석이 내 머리에 똬리를 튼 지는 제법 됐다. 퇴직 전 과로로 병원에 갔다가 후두부 뇌혈관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해면상 혈관 기형'이라나 뭐라나. 동맥류와는 좀 다른 꽈리랬다. 다행히 악성은 아니고 예후도 좋아서 약으로 치료하다 안 되면 '감마나이트'인지 하는 레이저 시술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오래전 남미를 돌 때 현지에선 잠잠하던 '고산증'이 꽈리에 영향을 주었는지 귀국 후에야 발병해 고생한 것 말고는 오랫동안 조용했는데 작년 봄에 신호를 또 보내온 것이다. 그럴 땐 무조건 쉬어야 한다. 여행은 물론 글쓰기도 편집도 SNS까지 다 접어야 한다. 쓰고 있던 여행에세이만 마감 짓고는 먹고 자고 놀고, 무뇌아처럼 생각 없이 살았다. 한 해가 지나자 어떤 산이든 뛰어다닐 정도로 몸도 기분도 거뜬해졌다. 퇴직해 집에 있던 애 엄마가 '혹시'하고 국내 여행길을 몇 번 동행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다니게 놓아주었다.
그녀도 여행 마니아다. 그러나 내 여행과는 다른 점이 많다. 현대판 노마드의 삶을 꿈꾸던 나는 지자체의 초청이나 후원단체를 낀 해외여행 등 매체에 연재도 하고 노트북과 사진을 이용해 나만의 집을 짓다 보니 원고료와 광고 수입이 따라왔지만, 그녀의 관광성 여행은 많은 돈이 필요했다.
"당신이 받는 월급은 당신이 다 써요. 생활비는 신경 쓰지 말고"라고 했지만 그건 어쩌면 내 방랑을 무마하기 위한 선심성 가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맞은 그녀의 정년퇴직은 그녀에게 많은 인내를 요구했다. 그녀의 여행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모든 수입원이 끊긴 나도 퇴직연금만으로는 그녀의 여행까지 감당하기엔 빠듯했다. 도움을 주고는 싶었는데 그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딜레마에 빠졌다. 퇴직 후엔 글만 쓰겠다던 나였는데... 고민을 거듭하다가 지인 소개로 겨우 건설 현장에서 차량을 유도하는 신호수(信號手) 자리 하날 얻었다. 출입 차량에 안전 신호를 주는 단순 작업이었지만,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어쩜 지구상의 모든 건 신호의 망(網)에 갇혀 있는지 모른다. 병(病)이 오기 전에 느끼는 어지러움이나 메스꺼움, 지진 전 개미 떼의 이동, 경사면에 물이 솟고 바람도 없는데 나무가 흔들리는 산사태의 조짐, 태풍 전 쥐들이 배를 떠나는 이유가 다 재난을 알리는 전조현상이고 위험하다는 신호가 아닌가.
그렇다면 건설 현장을 찾은 나의 변신은 어떤 신호일까. 노동의 진실이나 가치를 체험코자 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적 신호는 아닐 테고... 체력도 파악할 겸, 가족을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보호본능의 갸륵한 신호라고 위로하고 싶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면 어떠냐. 힘이 들어도 그녀에게 보탬이 된다면 그걸로 된 거지. 또 아직은 나이 뒤에 숨기도 싫었다. 앞장서서 걷고 싶고, 바람을 피하기보단 헤치면서 가고 싶었다.
젊다고 믿고 싶은 데서 나온 행동이리라. 신호를 무시하는 것도 안 되겠지만 주눅들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만용이라 해도 좋다. 두려운 건 현실과 타협하다 나의 몫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몫을 하고 살려면 내게 오는 신호가 아프다는 신호인지, 포기하지 말라는 신호인지 잘 감지해야 한다. 오판도 안 되고 자만도 위험하다. 눈먼 도둑이 도망치다가 본인이 안 보이니 남도 안 보일 거라는 생각으로 ‘못 보겠지?’ 하고 살며시 주저앉는 어리석음을 배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우(杞憂)다. 환도처럼 날아와 어깨에 앉는 한 뼘의 빛.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건 분명히 있다. 날 사랑해 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나의 몫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는 소박한 명제가 그것이다. 금방 거꾸러질 듯한 질병의 신호 역시 마찬가지다. 나만 의연하면 붉은빛을 보내다가도 노란빛으로 바뀌고 다시 초록과 파랑을 보내는 녀석. 그 신호의 의미가 꼭 위험하다는 경고의 역할만은 아닐 것이다. 잠시 앉아 숨을 고른 뒤, 일어나 뛰면서 몫을 다하라는 무언의 격려일지도 모른다.
◆김 광 주요 약력
△전남 목포 출생 △'계간수필' 등단(2004) △갯벌문학 전, 편집주간 △제3회 농촌문학상 △계간수필 수필문우회 부회장 △수필집 '숨비소리' '내게서 온 편지(여행에세이)'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