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128)] 역사 숨쉬고, 지방 고유 음식 가득
■ 인사동 맛집
'민가다헌' 퓨전 한정식 독특
개성·안동·호남음식 전문점들
다양한 식재료, 전문식당도 즐비
2014-05-05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민가다헌은 '퓨전한정식 집'이다. 태극기 문양으로 모양을 낸 비빔밥이 있고 와인과 쇠고기 산적(散炙)으로 '마리아쥬'를 보여주는 집이다.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이집의 역사와 유래다. 민가다헌의 원래 주인은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익두다. 아버지 민보식이 똑 같은 한옥 두 채를 지어서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한 채는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자리에 있었고 나머지 한 채가 현재의 '민가다헌'이다. 한옥이라고 하지만 전통한옥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이니 서양식, 일본식 모양새가 숨어들었다. 실내외를 보면 한옥이긴 한데 마치 서양건물이나 일본건물의 냄새가 난다. 굳이 표현하자면 '퓨전 한옥'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퓨전한식을 내새웠다. 된장에서는 일본 미소의 냄새가 나고 술은 와인 위주로 내놓는다. 새싹비빔밥도 마찬가지. 한식은 원래 생채(生菜)가 아니고 숙채(熟菜)였지만 이집에서는 퓨전 스타일로 생채를 내놓는다.
'개성만두궁'은 이름 그대로 황해도 일대 그중에서도 개성식의 만두 종류를 내놓고 있다. 개성은 지금은 북한이지만 원래는 경기도에 속하기도 했던 중부권의 도시다. 음식이나 문화가 모두 북한식이라기보다는 중부식, 한양의 그것들과 닮았다. 만두도 북한식 큰 만두보다는 작다. 맛과 향이 강하지 않고 기품이 있는 반가의 음식이자 문화다. 재미있는 것은 조랑이 떡국.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목을 누르는 것같이 만들었다는 '조랑이 떡국'은 전통적인 개성 음식이다. 고려의 수도 개성에 살았던 사람들이 고려를 망하게 하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잘록한 허리 등 모양이 너무 아름다운 조랑이 떡국에 '미움'이 묻어 있는 것은 참 서글프다. 좀 더 아름답고 세련된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필요하지 않을까? 개성만두궁의 음식은 심심하면서도 재료의 맛이 살아 있다. 도심이자 관광특구인 인사동에 이 정도로 고유의 맛과 향을 지니고 있는 음식점이 있는 것은 다행이다.
'신천'은 호남음식전문점으로 자리 잡았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면서 원래 음식이 아니라 간장게장 등 관광객들이 원하는 메뉴를 덧댄 것은 아쉽지만 짭짤한 간이 살아 있는 호남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
'두레'는 의미가 있는 밥상이다. 두레는 지역별 향토음식, 지역별 식재료를 뛰어넘는 음식을 내놓고 있다. 현 주인의 윗대부터 경남 지방에서 음식점을 경영했다. 음식점으로는 2대전승인 셈이다. 의미가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두레의 음식이 특정 지역에 한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기에 맞는 재료를, 전국 어디서나 공급받아서, 주방의 솜씨를 최대한 살려서 내놓는다"는 것이 두레의 음식이 지니는 의미다. 지역별 특산물이든 향토음식이든 사실은 의미가 없어졌다. 전국 어디서나 각 지역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1일 생활권인 나라에서 지역별 식재료를 논하는 것도 우습다. 두레는 오래 전에 이런 부분을 넘어섰다. 시기별로 가장 좋은 식재료를 구해서 자신만의 요리법으로 내놓는다. 한식의 경우, 음식의 맛을 정하는 식재료가 아니라 장(醬)이다. 우리 조상들은 귀한 식재료를 구하지 않았다. 집집마다 음식 맛이 다른 것은 장의 맛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레는 이 평범한 진리를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인사동에서 꾸준하게 고집하고 있다. 당연히 음식은 매일 달라진다.
'인사동김치찌개'는 '간판이 없는 집'으로 유명하다. 실제 간판이 없고 '김치찌개'라고 쓴 간판만 하나 붙어 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실비집, 밥집 같은 스타일이다. 실비집의 원형은, 손님이 식재료를 가져가면 얼마간의 조리비용만 받고 싼 값에 푸짐하게 음식을 내놓았던 집이다. 물론 인사동김치찌개는 실비집은 아니지만 지금도 싸고 푸짐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산촌'은 채식전문식당이자, 저녁에는 공연을 하는 집으로 널리 알려졌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채식, 사찰음식을 좋아하는 이들도 자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