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원자력이슈위원회 '파이로-고속로, 차세대 원전 전부 아냐'
원자력이슈위원회 "사회적 수용성 확보위해 타분야 전문가 포함 다제간 협의체 필요"
박종운 동국대 교수 "고속로는 비싸고 위험한 원자로, 핵폐기물은 땅에 묻는게 최고"
2017-11-25 안희민 기자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이 주도하는 이 연구가 유일한 대안으로 홍보돼 왔는데 '원자력이슈위원회'라는 원자력계 내부에서 이같은 의문을 제기함에 따라 논란이 일고 있다.
원자력이슈위원회는 2013년에 조직된 원자력학회 내 분과위원회다.
원자력이슈위원회는 원자력계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질의 패널을 구성해 2016년 5월20일 '국가 순환핵주기 연구의 쟁점과 정책제언을 위한 질의 및 논의'라는 제목으로 원자력계 전문인력으로 질의 패널을 구성해 의견을 수렴했고 '순환핵주기 연구의 쟁점과 정책 제언을 위한 질의 응답서'를 같은해 7월 발간한데 이어 '순환핵주기 연구의 쟁점과 정책 제언'이라는 보고서를 같은 해 8월 작성했다.
특히 '순환핵주기 연구의 쟁점과 정책 제언' 보고서의 말미에 "파이로-금속핵연료-소듐냉각고속로 연계 시나리오는 유력하지만 유일한 방안은 아닐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
토토 사이트 커뮤니티이 25일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원자력이슈위원회는 파이로-고속로 연구에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파이로-고속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하고 폐기물 줄인다던데…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파이로-고속로 연구가 기존 원전에서 생성된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 등을 추출해 핵연료로 재활용하고 쓸모없는 초우라늄(TRU)를 태워 없애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플루토늄은 원래 핵분열성 물질이라 경수로에서도 핵연료가 되지만 다른 원소들은 경수로에서 핵분열하지 않는다. 다른 원소들은 반감기가 장수명으로 방사능이 높은 물질이라 처분 곤란한데 고속로에선 핵분열한다. 파이로-고속로는 고속로 이용으로 핵분열 또는 중성자 흡수로 반감기가 짧은 핵분열생성물로 변환시킨다는 연구다.
우라늄은 원전의 핵연료이다. 초우라늄은 우라늄보다 원자 번호가 큰 원소로 플루토늄과 마이너액티나이드(MA) 등을 말하는데 독성이 최소 10만년 동안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사용후핵연료 분리공정이 건식재처리방식의 하나인 파이로프로세싱이며 초우라늄을 핵분열시킬 수 있는 강한 중성자를 이용하는 원자로가 소듐냉각고속로다.
파이로프로세싱은 500~650℃의 고온의 용융염 매질 내에서 전기화학적 방법을 이용해 사용후핵연료로부터 우라늄(U)와 초우라늄(TRU) 원소, 핵분열생성물을 분리하는 기술이다.
소듐냉각고속로(SFR)는 액체금속 소듐(Na)을 냉각재로 사용하고 경수로에 비해 높은 에너지의 고속 중성자를 이용해 핵분열을 일으키는 원자로인데 초우라늄을 태워 고준위 사용후핵연료의 부피와 독성을 줄이고 고준위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의 면적을 줄인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 가운데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의 실증은 한미공동연구로 진행되고 있으며 파이로 기술의 타당성을 2020년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력이슈위원회, 파이로-고속로 연구 명분과 당위성 재검토
원자력이슈위원회는 '순환핵주기 연구의 쟁점과 정책 제언' 보고서에서 그간 알려진 파이로-고속로 연구의 명분과 실익을 검토하고 있다.
파이로-고속로 연구가 완성되면 고준위 사용후핵연료 물량이 20분의 1로 줄어든다는 주장에 대해 원자력이슈위원회는 "파이로프로세싱에선 다양한 형태의 고준위 및 중저준위 폐기물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실제적인 고준위폐기물량의 감소율과 분석의 전제조건이 제시돼야한다"고 말했다.
고준위 사용후핵연료 처분면적도 100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는 주장에 대해 "국내 사용후핵연료의 절반 정도는 중수로에서 나오지만 중수로핵연료는 파이로프로세싱의 처리대상이 아니다. 국내 고준위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엔 중수로핵연료의 처분면적도 포함돼야하기 때문에 실제 처분면적의 100분의 1 감소는 그동안 알려져 온 것과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의견을 냈다.
고준위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관리기간이 1000분의 1로 줄어든다는 주장에 대해 "현재 국내법규엔 고준위폐기물 처분 관리기간이 명시돼있지 않아 관리기간은 파이로프로세싱의 물질수지 및 폐기물 관리방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원자력이슈위원회는 "I, Tc 등 일부 장수명 핵질이 지하에서 흡착성이 떨어져 분리 후 고속로에서 소멸, 심부시추공 처분 등 다른 처리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어 다양하고 현실적인 폐기물 관리계획에 근거해 관리기간을 평가해야 한다"고 썼다.
파이로-고속로 연구로 향상된다는 우라늄 자원 이용률도 도마에 올랐다.
파이로-고속로 연구자들은 우라늄 자원 이용률을 94~96%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원자력이슈위원회는 "자원 이용률을 우라늄 원광에서 채굴된 천연우라늄으로부터 원자로 연소까지의 효율로 정의한다면 경수로의 우라늄 이용률은 0.69%, 경수로 연계 초우라늄 연소로부터의 우라늄 자원 이용률은 0.4%이며 전체로는 1.1%"라고 말했다.
◇원자력이슈위원회 "파이로프로세싱도 폐기물 발생시켜, 대책마련해야"
파이로프로세싱의 폐기물 관리방안도 다뤄졌다.
원자력이슈위원회는 "파이로프로세싱 시설 운영시 사용후핵연료 처리과정에서 다양한 폐기물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반감기가 10년6개월인 Kr-85는 포집, 분리 후 저장용기에 100년 동안 적정한 차폐와 격리가 이뤄진 시설에서 저장하는 것이 필요해 관리방안 수립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원자력이슈위원회는 이어 "상당히 많은 양의 우라늄이 파이로프로세싱 전체에서 발생하는 반면 파이로프로세싱-소듐냉각고속로-파이로프로세싱 순환주기에서 사용되는 우라늄의 양이 매우 제한적이므로 누적되는 회수 우라늄을 처리, 관리하기 위한 계획의 수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자력이슈위원회는 또한 "모의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한 실험실 규모의 실험에선 우라늄과 초우라늄의 회수량이 99.9%에 달했으나 공학적으로 99% 이상의 회수율 달성이 가능한지 확인되지 않았으며 실제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한 회수율 검증실험은 한미공동연구(JFCS)에서 검증이 돼야한다"고 피력했다.
원자력이슈위원회는 해체와 부지복원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원자력이슈위원회는 "파이로프로세싱 시설의 경우 사용후핵연료 분해와 화학적 처리 공정이 있어 부지 오염을 고려해야 한다"며 "부지오염은 사고와 상관없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이와함께 "향수 시설의 수명 완료 후 해체 및 부지복원에 필요한 해체비용도 경제성 평가에 현실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원자력이슈위원회 "파이로-고속로 연구, 유일한 방안 아닐 수 있어"
원자력이슈위원회는 무엇보다 사회적 수용성과 다제간 협의체계 구성과 운영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자력이슈위원회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수용성의 확보”라며 “주변 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적기에 사용후핵연료 관리 연구에 대한 정책적, 사회적, 기술적 권고와 지원이 가능하도록 원자력 분야뿐만 아니라 타분야 전문가도 포함된 다제간 협의체계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 맺었다.
◇박종운 동국대 교수 "고속로는 비싸고 위험한 원자로"
고밀도 원전의 감축과 에너지 전환에 앞장서는 박종운 동국대 교수(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는 파이로-고속로에 대해 원자력이슈위원회보다 진일보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기하고 있다.
박 교수는 "고속로는 20% 이상의 고농축 플루토늄을 핵연료로 사용해 우라늄 핵연료보다 오히려 더 많은 핵분열생성물들을 만들어 내기에 형식만 다를 뿐 경수로보다 몇갑절 비싸고 위험한 원자로일 뿐이다. 파이로-고속로나 경수로-MA연소나 모두 핵재처리와 농축공장을 전제로 하며 국내에 이런 시설을 수용할 지역은 없다. 사용후핵연료는 그냥 그대로 깊이 묻는 방법이 최선이다"라고 역설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깊이와 장소와 수용성이 문제다. 영국 셀라필드 등 재처리공장에서는 이미 폭발, 화재, 임계 등 수십 건의 사고가 난 바 있다. 셀라필드 재처리공장도 내년에 폐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어떤 방식이든 간에 이미 건설, 운영, 관리 및 폐기에 경수로의 몇 갑절에 해당되는 천문학적 비용으로 인해 이미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한국에서 사용후핵연료를 개봉해 재순환하는 순간부터 이 땅에서는 새로운 비극이 시작된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전문가들, 원자력이슈위원회를 비판적으로 볼 것을 권고
전문가들은 원자력이슈위원회의 활동과 보고서를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이슈위원회가 파이로-고속로 연구를 비판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반대를 위한 보고서가 아니며 결국 또다른 재처리 방법을 제시한 것뿐이라는 의견이다.
박종운 교수는 "원자력이슈위원회는 이 파이로-고속로 연계방식에 대한 연구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보완해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하라는 격려일 뿐이며, 경수로에서 MA를 태우는 더 황당한 연구까지 제시하는 등 오히려 불필요한 연구를 조장하는 핵처리 연구 확장론에 불과하다. 사회적 수용성 외에는 원자력이슈위원회 제안도 모양만 다른 핵재처리 주장일 뿐이며 비판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경제학)는 "원자력이슈위원회도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추진파의 모임에 불과하다"며 "원자력연구원과 다른 안전 연구자들의 예산을 둘러싼 다툼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