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사우디 21조 원전 시장 바라만보다 213조 태양광 시장 놓쳐
사우디-소프트뱅크, 2030년까지 200GW 규모 태양광발전소 건설
사우디 원전 비중은 2040년까지 15%, 설비 기준 17.6GW에 불과
‘원전 수출’에 목메던 산업부, 닭 몸통 아닌 깃털 잡은 모양새 전락
2018-03-30 안희민 기자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UAE 바라카 원전 1호기 건설완공식을 기점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예정한 2.8GW 원전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뜻을 밝힌 정부가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에 기습작전에 허를 찔렸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마사요시 손(한국명 손정의)과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이 2030년까지 200GW의 태양광발전소를 구축하고 태양광 모듈,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유관 산업에 213조원(2000억달러)의 비용을 들여 10만명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업무협약(MOU)을 맺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UAE 방문을 기점으로 중동 지역에서 원전 르네상스가 일어날 듯 홍보한 산업부는 졸지에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믹스의 몸통이 아닌 깃털을 잡은 모양새가 됐다.
◇ 칼둔 UAE 장관, 지난 1월 방한 시 사우디의 태양광 사업 논의
사우디아라비아의 태양광사업은 국내에서도 익히 알려진 사업이다. 한화큐셀 등 한국의 태양광 기업들이 주목했고 올 1월 방한한 칼둔 칼리 파 알 무라바크 UAE 아부다비 행정청 장관도 백운규 산업부 장관과 사우디 태양광사업 진출을 논의했다.
글로벌 태양광 전문지 PV테크는 작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에 설치되는 300MW급 태양광발전소의 균등화발전단가(LCOE)가 kWh당 1.786센트(20원) 이하로 적어냈다고 전했다. 태양광발전설비 단가 사상 최저의 가격을 적어낸 기업이 바로 UAE에 적을 둔 아부다비 퓨처 에너지다.
칼둔 장관은 방한 당시 백운규 산업부 장관과 사우디 태양광사업 진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산업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칼둔 장관이 사우디 태양광발전 가격이 kWh당 1.7센트라고 전하며 태양광 기술과 에너지저장장치 기술이 우위에 있는 한국과 협력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아부다비 퓨처 에너지가 제시한 kWh당 1.7센트의 태양광발전 단가는 한국 기업에게 부담되는 가격으로 알려졌다. 현재 태양광모듈 가격이 와트(W)당 35센트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평가가 한국 기업에서 흘러나왔다.
한화큐셀코리아 대표를 역임한 차문환 한화솔라파워 대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300MW 태양광발전소의 LCOE 가격이 부담스럽다”고 데일리한국에 밝힌 바 있다.
칼둔 장관이 백 장관에게 사우디 태양광 협력을 밝혔지만 더 이상 한국과 UAE 간 태양광 산업 협력이 회자되지 않았다. 한화큐셀도 올해 3월 결국 300MW급 사우디 태양광발전사업 본입찰 참여 포기를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믹스의 몸통은 원전 아닌 태양광
이후 산업부는 ‘원전 수출’을 빌미로 UAE 바라카원전,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우디 원전 등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산업부의 원전 수출 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과 에너지전환을 선언하는 바람에 궁지에 몰린 한국 원자력업계에 퇴로를 열어준다는 의미가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태양광 사업의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았다.
계약 규모만을 놓고 봤을 때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믹스에서 몸통은 태양광이고 원전은 깃털에 불과해 중동 원전 수출 정책 때문에 더 큰 태양광시장을 놓쳤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2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2030년까지 2000억달러(213조원)을 투자해 200GW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건립하기로 했다. 첫 단계로 7.2GW를 올해 착공한다. 주목할 것은 태양광발전설비만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UAE의 칼둔 청장이 한국 정부에 협의를 해온 것처럼 태양광발전설비를 보완할 에너지저장장치(ESS)와 태양광, ESS 제조설비에도 투자한다. 이 프로젝트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UAE 바라카 원전 건설완공식을 기점으로 한국과 UAE 정부가 공동으로 수주하겠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전 사업의 규모는 당장 20조원, 2040년경에도 100조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파이낸스에 따르면 사우디가 올해 3~4월 입찰 받으려는 원전은 총 2기로 2.8GW다. 사업비는 200억달러(21조3000억원) 가량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원전을 계속 늘려나갈 계획인데 2040년까지 15%를 목표로 삼았다. 이를 원전 설비로 환산하면 17.6GW 규모로 총 사업비가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발전용량이 80GW 수준이다. 따라서 유진투자증권은 200GW의 태양광발전설비가 들어오면 타 발전원의 시공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요컨대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믹스에선 태양광이 주력이고 원전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은 업계에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태양광발전의 전환효율이 13~19%이기 때문에 태양광발전을 200GW를 설치한다해도 2030년 실제 발전량은 26~38GW 정도다.
원전의 발전효율을 설비용량만큼 인정해준다 해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40년에 원전을 통해 얻는 발전량은 17GW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원전의 2배 발전량을 태양광발전을 통해 얻을 계획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산업부, 재생에너지 3020 발표 후 한 일은 신재생 조직개편이 전부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 소프트뱅크의 200GW 태양광발전 업무협약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해외에선 재생에너지가 원전을 앞서 나아갈 만큼 글로벌 트렌드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한국은 여전히 탈원전과 에너지전환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득권 에너지세력에 밀려 재생에너지 정책이 기를 펴지 못하다가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에 뒤통수를 맞는 우를 범하게 됐다.
산업부가 작년 12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까지 확충한다는 내용의 재생에너지3020 계획을 발표했을때만해도 태양광과 풍력업계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태양광업계는 목표달성을 위해 산업부가 태양광 신규설비를 37GW 가량 확충할 계획을 세웠다는 소식에 다소 미진한 느낌이 있지만 일단 환영의 뜻을 표했다. 풍력의 경우 육상풍력사업이 저물 조짐을 보이며 해상풍력사업에 방점이 찍어졌지만 한국에서 지지부진했던 해상풍력이 일어설 기회가 왔다고 반기는 표정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지금, 산업부의 신재생 담당부서는 여전히 ‘업무파악 중’이다. 그동안 한일은 기존 과장급 신재생에너지정책과가 국장급 신재생에너지정책단으로 승격된 것이 전부다.
분명 ‘만년 과장’급이던 신재생에너지정책 추진 주최가 과장급에서 국장급으로 승격하고 신재생에너지정책단장에 2000년대 초반 한국 신재생에너지정책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이 보임된 일은 반가운 일이다.
김현철 신재생에너지정책단장도 지난달 14일 홍익표 국회의원이 개최한 재생에너지3020 이행계획 성공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재생에너지정책방향을 밝힌 것으로 이투뉴스는 보도했다.
김 단장이 밝힌 내용 가운데 폐기물, 바이오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 외지인보다 지역주민 참여확대 등의 항목은 신재생에너지의무공급제(RPS) 공급인증서(REC) 가중치 공청회에서 다뤄질 내용으로 알려진 것들이다.
문제는 RPS REC 공청회가 당초 1월말 개최에서 2월말, 3월말, 4월로 개최시기가 늦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중치는 신재생에너지의 가치를 시장가격으로 돌려주는 제도로 업계의 첨예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안의 중요성을 보아 심사숙고할 일이지만 정부의 정책을 신호등 삼아 의사결정할 재생에너지 업계의 속은 타들어갔다.
결과적으로 산업부는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시책에 맞게 신재생에너지 조직을 키웠지만 정작 조직을 통해 구현했어야할 사우디아라비아 태양광시장 진출엔 실기했다. 이를 두고 재생에너지업계 일각에선 고의적인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명하는 상황이다.
물론 산업부가 조직개편을 빌미로 고의적으로 업무를 해태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겠지만 해외시장 동향을 면밀히 살피고 사우디 태양광사업에 진출을 도모하던 한화큐셀과 같은 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사우디 원전의 10배 이상의 사우디 태양광 수주고를 올렸어야 하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산업개발 시대처럼 산업은행 등 공적금융을 동원해 사우디 태양광 사업에 진출하는 기업을 직접적으로 돕지는 않더라도 한국 기업 진출의 장애가 될 정도로 낮아진 태양광발전 단가 부담을 장기간-대규모 사업을 통해 상쇄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기업을 도왔어야했다는 것이 재생에너지 업계의 중론이다.
강희찬 인천대 교수는 “에너지전환을 표명한 현 정부에서 산업부가 재생에너지 진흥을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겉모양에 치중한 나머지 재생에너지업계의 실속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며 “산업부가 정책의 진정성을 입증하려면 국제 트렌드에 발맞춰 과감히 나서며 성과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