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 [이야기가 있는 맛집(359)] 명태 이야기
조선초부터 알려져, 흔한 생선에서 귀한 몸값으로…이름 다양, 한ㆍ중ㆍ일 쓰임새 달라
2020-01-28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치어 방류는 성공적이다 2016년 무렵 치어 방류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암 명태를 구해서 내륙에서 치어를 생산한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부분이 성공한 것이다. 어느 정도 자란 녀석들을 다시 바다로 내보낸다. 이듬해인 2017년 일부 명태가 살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2018년 말, 엉뚱한 소식이 들렸다. 고성 앞바다에서 느닷없이 자연산 명태가 수백 킬로 단위로 잡혔다는 보도였다. 사실이었다. 그중 4마리는 인공적으로 방류한 것이었다. 4마리가 적은 것이 아니다. 인공 방류한 명태가 살아 있음이 오히려 반갑다.
2019년 1월, ‘명태 보호 법안’이 통과되었다. 명태를 잡는 것은 이제 무조건 불법이다. 크기나 기간이 정해지지도 않았다. 2019년 1월, 국회의 ‘법령 개정’은, 당분간 명태의 크기, 잡는 시기에 관계없이 명태를 잡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1년 내내 금어기다.
필자도 잘 못 알고 있었다. 명태 이름에 대한 이야기다. 고종 때 영의정까지 지낸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 제27권 춘명일사(春明逸闻)’에 나온 이야기니 믿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내용은 이렇다.
원래 ‘명태’라는 이름도 없었다. 함경도 지방 도백(道伯)에게 어느 날 맛있는 생선 요리가 올라왔다. 식사를 마친 도백이 관리에게 물었다. “이 생선의 이름이 무엇이냐?” 도무지 생선 이름을 몰랐던 관리가 대답했다. “생선 이름은 알 수 없사오나, 명천(明川) 사는 태(太) 씨 성 가진 어부가 올린 것입니다.” 도백이 말했다. “그럼 앞으로 이 생선의 이름을 명태(明太)라고 하라”라고. 도무지 만화 같은, 약간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기록이 남아 있으니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명백하게 틀린 이야기였다.
그 이전에도 명태에 대한 다른 이름은 있었다. 명태는 그 이전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홍양호(1724∼1802년)가 쓴 <이계집>에도 명태는 나타난다. 이름이 다르다. ‘무태어(無泰魚)’다. <이계집>에 “청어 등은 그물로 잡고, 무태어는 낚시로 잡으며(無泰魚以釣)”라는 내용이 있다. 무태어는 바로 명태다.
그 훨씬 전인 조선 초, 중기(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무태어는 등장한다. 함경도 경성, 명천 일대의 특산물로 무태어를 들고 있다. 명태는 ‘명천 사는 태씨 어부’ 이야기 전에도 무태어란 이름이 있었고 또 널리 먹었던 생선이다. 그런데 왜 명태가 아니라 무태어 혹은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까?
민간에서는 여전히 명태라고 불렀을 것이다. 누군가가 ‘명태’라는 이름의 심각성(?)을 알고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것이다. 명나라 태조 때문에 명태는 오랫동안 자기 이름을 가지지 못했다.
명나라는 17세기 중반에 망했다. 명태라는 이름이 해금된 것은 명나라가 망하고 제법 세월이 지난 후다. 19세기에는 조선 측의 기록에도 명태라는 이름이 나타난다. 청나라에 대한 반감으로 오랫동안 망한 명나라를 지지했다. 그 사이 청나라는 서방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등 날로 번영한다. 조선의 관리, 선비들이 청나라를 접한다. 청나라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면서 명나라에 대한 호의적인 시각도 줄어든다. 명태라는 이름이 다시 나타난 이유다. 명나라가 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조선에서도 명태는 자기 이름을 찾는다.
19세기 중반에는 명태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등장한다. 오주 이규경(1788∼1856년)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북어(北魚)’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보다 더 상세하게 명태를 설명하기 힘들다
명태? 참 묘한 생선이다 명태는 이름이 많다. 글에 나타나듯이 겨울에 잡아서 동태(冬太)고 얼렸다고 동태(凍太)다. 봄에 잡는다고 춘태(春太)고 이외에도 낚시 태나 그물태라는 이름도 있다. 색깔에 따라 흑태, 백태, 황태로 나누기도 한다. 말리다가 떨어진 것은 낙태, 머리가 잘린 것은 무두태라고도 부른다. 수백 가지 이름이 있다.
쓰임새도 다양하다. 내장을 꺼낸 다음 말리면 명태, 북어라고 부른다. 노랗게 잘 익은 것은 별도로 황태라고 부른다. 내장이나 대가리도 버리지 않는다. 지금은 말린 대가리를 국물 낼 때 사용한다. 아가미로 아가미젓갈, 창자로 창난젓, 알로 명란젓을 담근다. 생태 살을 김장김치에 넣기도 한다. 결국 명태 한 마리에서 4가지의 삭힘, 젓갈이 나온다.
명태는 90% 이상이 러시아 수역, 일본 수역에서 잡는다. 한반도에서 소비하는 명태의 대부분이 바로 이 수역에서 잡은 것이다. 일본인들이 명태를 먹지 않고 명란만 먹으니 묘한 일이 벌어진다. 명태 잡이 배에서 명태를 해체, 알은 일본으로, 몸통은 한반도로 수출한다. 봄철, 내장 없이 국내로 수입되는 동태는 대부분 알을 일본으로 수출한 것들이다.
명태, 한국, 중국, 일본의 묘한 삼각관계
일본은 명란을 위하여 명태를 잡는다. 중국 배들은 북한 연안 혹은 공해에서 명태를 잡는다. 이들이 ‘쌍끌이 어선’으로 치어까지 잡는 바람에 오징어, 명태 등이 사라지고 있다는 원성도 있다. 중국인들은 일상적으로 명태를 먹지는 않지만, 식품공장 등에서 명태 살을 사용한다.
중국은 북어를 수출하고 일본은 동태 몸통을 한국으로 수출한다. 묘한 관계다. 명태 복원에는 두 나라 모두 관심이 없다. 명태로 시원한 동태 국, 생태찌개, 명태 국을 먹는 한국은 필사적이다. 동해안에서 명태 복원에 애쓰는 이유다.
언론인 고 홍승면(1927∼1983년) 씨의 글을 소개한다. 우리가 명태를 얼마나 알뜰하게, 잘 먹는 지 보여주는 내용이다.
“북어대가리를 의뭉한 불에 바싹 굽는다. 태우지 말아야 한다. 이걸 유리잔에 넣고 뜨겁게 덥힌 청주를 붓는다. 접시로 잠시 덮어두었다가 불을 붙인다. 푸른 색 불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일식집에서 흔히 보는 복어 지느러미 대용품으로 명태 대가리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름이 낭만적이다. ‘북어두주(北魚頭酒)’다.
명태 맛집&가게 4곳
안성또순이집
진미생태찌개
용대리백담마을
진미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