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이야기가 있는 맛집(363)] 쑥
쑥은 약 혹은 약 이상의 신비로운 존재…3월 통영‘도다리쑥국’ 전국 유행
2019-03-04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서양에서 부르는 쑥의 이름은 ‘아르테미지아 허브(Artemisia herbs)’다. 이 이름은 그리스 신화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에서 따왔다.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달은 여성이다. 쑥은 여성에게도 퍽 좋은 식물이다. 쑥에는 여성에 특히 좋은 약성이 있다고 믿었다.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는 여성의 생리가 정상적이고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쑥 속 식물의 이름은 모두 ‘아르테미지아(Artemisia; 아르테미스의 풀)’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1596년 3월12일의 기록이다.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장계 초 잡은 것을 수정했다. 동복(同福)의 계향유사 김덕린이 와서 인사했다. 경상수사가 쑥떡을 보내왔다. 낙안군수, 녹도만호 등을 불러서 떡을 먹였다. (후략)”
이순신 장군이 1차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을 무렵이다. 삼도수군통제사보다 계급이 낮은 경상수사가 보내온 것은 쑥떡이다. 낙안군수와 녹도만호를 불러서 같이 먹었다고 했다. 군수와 만호는 모두 벼슬아치다. ‘사대부’ 중 대부다. 쑥이 귀한 것이 아니라 떡이 귀한 것이다. 곡물이 귀한 중에 떡을 먹는다는 것은 그나마 사치다. 그런데 쑥떡이다. 별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벼슬아치들이니 쑥떡을 보내고 나눠먹은 것이다. 음력 3월 무렵이면 쑥이 흔할 때다. 전쟁 통이다. 들판에 널린 쑥을 캐서 떡을 만든 다음 이순신 장군에게 보낸 경상수사의 정성도 놀랍다.
쑥떡, 개떡, 수리 떡?
봄철이다. 대부분 이 시기는 춘궁기다. 오래 전에는 늘 봄철 보릿고개가 겹쳤다. 보리는 나오지 않고 가을에 수확한 곡식들은 간당간당하다. 봄철 쑥을 캐서 곡물과 섞는다. 양을 늘려서 곡식 부족한 봄철을 넘긴다. 그래서 쑥을 먹었을 것이다.
철학적인 해석도 있다. 동양사상으로는 홀수는 양의 숫자, 짝수는 음의 숫자다. 양이 겹치는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은 모두 의미가 있는 날들이다. 이중 5월 5일은 단오(端午) 날이다. 양이 겹치기 때문에 양의 기운을 한껏 빨아들인 쑥은 양을 극대화한 음식이다. 쑥떡은 ‘음’을 없애는 좋은 식재료로 생각했다. 창포로 머리를 감고 쑥떡을 해먹는 것은 바로 양의 기운으로 음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쑥떡과 개떡에도 재미있는 ‘오해’가 있다. 흔히 쑥떡을 두고 ‘개떡’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쑥떡은 ‘개떡’이 아니다. 우리 민족은 쑥을 신성하게 생각했다.
‘개떡’의 실제 이름은 ‘겨떡’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순신 장군이 드신 쑥떡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전쟁에 관해서 기록한 책에 ‘쑥떡, 개떡’이나 ‘쑥떡 만드는 법’이 나오면 곤란(?)하다. 쑥떡을 받았다는 내용과 나눠 먹은 사람만 나오고 쑥떡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춘궁기가 있던,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사람들은 ‘겨’도 먹었다. 쌀이나 보리에는 겉피(외피)가 있고 속피(내피)가 있다. 쌀의 겉을 벗긴 것은 왕겨다. 불쏘시개로도 사용하고 예전에는 베갯속으로도 사용했다. 벽돌을 찍을 때도 넣고 거름을 만들 때 사용했다. 이 왕겨를 벗긴 것이 색깔이 누르튀튀한 현미(玄米)다. 현미의 ‘玄’은 ‘검을 현’이다. 현미의 반대말은 백미다. 하얀 쌀이다. 현미에서 ‘속겨’를 벗겨내면 백미가 된다. 누르튀튀한 속겨를 제거하면 검은 쌀은 흰쌀이 된다. 속겨는 동물의 사료로도 이용했다. 쌀겨, 속겨는 ‘미강(米糠)’이다. ‘강(糠)’은 ‘쌀겨 강’이다. 미강유는 쌀겨에서 짜낸 기름이다.
쌀이 귀했으니 이 겨를 쑥과 버무려서 떡을 만들었다. 바로 ‘겨떡’이다. 겨떡이 개떡이 되었으리라. 쑥떡은 개떡이라고 ‘함부로’ 부르기에는 그 콘텐츠가 너무 깊고 넓다.
쑥국이나 쑥떡에 사용하는 쑥은 채취 기간이 불과 보름 정도다. 이 짧은 기간이 지나가고 나면 쑥은 억세진다. 향이 쓴 맛을 낸다. 쑥의 섬유질도 지나치게 질기다. 괜히 쑥의 향기 운운하며 젓가락을 들었다가 쑥의 진한 향에 젓가락을 놓는 경우가 많다.
곰이 쑥을 먹으면 인간이 된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에서는 약용과 식용으로 쑥을 사용한 내용이 있다. 단군신화의 두 가지 주요한 식재료(?)중 하나가 바로 쑥이다.
중국에서도 쑥을 약으로 사용했다. 맹자의 “이루(離婁) 상(上)” 편에 “이제 왕이 되고자 하는 이는 7년 묵은 병에 3년 묵은 쑥을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 만일 미리 비축해두지 않는다면 평생 구해도 못 구할 것(今之欲王者/猶七年之病/求三年之艾也/苟爲不畜/終身不得)”이라는 내용이 있다. 맹자의 표현에 따르면 쑥은 미리미리 구해두어야 하는 약재다. 더하여 몇 해씩 묵혀두는 것의 약효가 좋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중국인들은 쑥을 약용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도 쑥으로 만든 음식은 그리 흔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기록에도 쑥을 약재로 사용한 것은 흔하게 나타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장유(張維, 1587∼1638)의 시문집 <계곡집>(1643년 발간)에도 쑥을 약재로 이용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있다. <계곡집> 제30권에 “쑥뜸을 뜨고 나서 서재에 들어앉아 붓 가는 대로 짓다”라는 칠언율시가 있다. 시의 제목에 쑥, 쑥뜸이 등장한다.
이 시의 본문에 “야윈 몸에 시험 삼아 선고(仙姑)의 쑥뜸을 떠봤는데(羸軀乍試仙姑艾)”라는 표현이 나온다. ‘선고’는 신선한 여자 혹은 여자 신선 등으로 표현하지만 특히 ‘서왕모(西王母)’의 별칭으로 쓰기도 한다. 서왕모는 중국 서쪽 곤륜산에 사는 전설 속의 존재다. 그녀는 불로장생, 천도복숭아 등과 연관이 있다. 즉, 조선의 선비 장유는, 불로장생을 뜻하는 서왕모의 쑥뜸을 해봤다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 역시 쑥을 불로장생의 의미와 연관 지어 생각했다.
화타(華陀)는 후한 말 안휘성 출신의 명의다. 2-3세기 살았고 이미 외과수술을 시행했던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화타가 어느 날 “얼굴색이 생강처럼 노랗고 눈이 쑥 들어간, 장작개비처럼 마른 환자”를 만났다. 황달이었다. 환자가 화타에게 치료를 부탁했으나 화타는 “나도 황달은 고칠 수 없다”며 치료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6개월 후 화타는 다시 그 ‘죽어가던 환자’를 만났다. 살아 있었던 것이다.
화타는 죽어가던 그 환자가 먹었다는 제비쑥을 다른 환자에게 먹였으나 다른 환자들은 치료 효과가 없었다. 쑥의 채취시기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결국 화타는 ‘만물의 생기가 넘치는 3월의 제비쑥’을 찾아서 환자를 치료한다.
화타는 줄기와 잎이 부드럽고 약효가 있는 이 쑥을 특별히 ‘인진(茵蔯)쑥’이라고 불렀다. 화타의 “삼월 인진쑥은 병을 고치지만, 사월 제비쑥은 불쏘시개일 뿐이라네”라는 문구가 남아 있다. 우리도 쑥은 간의 독성을 뽑아내는 효과가 있다고 믿었지만 그 시기를 중요시 여겼다. 우리 선조들도 3월 인진쑥, 4월 개똥 쑥이라고 표현했다.
전국 쑥 맛집 4곳
비진도횟집
목포쑥굴레
충무집
이나경강화약쑥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