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의 대중문화산책] 신보 리뷰
■ 신보 리뷰
2013-08-23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 지은 3집, '3', 2013년, 해피로봇
오지은의 1, 2, 3집은 트릴로지 사랑학개론 같다. 전형적인 인디 시스템으로 제작한 첫 번째 앨범 '지은'은 자신의 존재감과 인디음악씬의 자생력을 입증한 기념비적인 음반이었다. 동명의 2집이 전작의 성공을 뛰어넘는 다채로운 밴드 사운드와 달콤 살벌한 가사로 음악 팬들과 평단 모두로부터도 호평을 이끌어내며 오지은은 단숨에 우리 시대가 가장 주목해야 할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등극했다. 최근 발표한 3집에서는 한층 성숙해진 음악 내공과 뭔가 정돈된 사랑의 정서를 담아냈다.
사전에 모여 약속을 한 것 일까? 한희정, 요조, 타루처럼 미모와 자기 목소리가 분명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금년에 신보를 발표하며 돌아왔다. 30대에 접어든 이들은 하나 같이 '홍대 여신'이라는 비주얼 틀에서 벗어나 자기 색깔이 분명한 뮤지션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오지은은 조금은 느리더라도 오래 전부터 색채가 또렷한 자신의 음악 정체성으로 대중과 진득하게 소통해 왔다. 그녀의 노래는 예쁘게 꾸며지기보다 자신의 오만 감정에 충실한 날 것 그대로가 담겨있다. 1집 '화(華)'의 가사 중 '널 갈아먹고 싶어'라는 표현처럼 데뷔 시절의 그녀는 과격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사랑을 노래했다. '홍대 여신'보단 '홍대 마녀'라는 별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던 이유다.
3집은 분위기도 차분해졌고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도 뭔가 평온하고 정리된 느낌이다. 마치 전작들에서 쏟아냈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개념의 앨범으로 여겨진다.
슬퍼서 아름다운… 한국 정서 제대로 담아
● 아시안체어샷(Asian Chairshot) 데뷔EP, '탈춤', 2013년, 다다뮤직
3인조 록밴드 아시안 체어샷의 강렬한 사운드는 너무 슬퍼서 아름답다. 이들의 드라마틱한 록 사운드는 그런지에서 얼터너티브를 거쳐 사이키델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자신감으로 가득 찬 개러지 록의 전형이다.
드라마 추노의 주인공 이대길(장혁 분)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멋진 음악은 처음 듣는 청자의 가슴에 생치기를 남길 정도로 치명적이다. 그런데 기꺼이 상처 입고 싶은 유혹적인 사운드이기도 하다. 또 다시 듣지 않고는 배겨낼 재주가 없다. 이건 미친 중독성이다.
국악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한국적 한의 정서를 기막히게 표출하는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수록곡 '소녀', '반지하제왕', '꽃', '탈춤' 중 뺄 노래가 없다. 과연 루키밴드가 맞는지 귀를 의심해야 할 정도다. 아시안체어샷의 음악은 3명의 멤버 황영원(보컬, 베이스), 박계완(드럼), 손희남(기타)의 거칠고 야성적인 모습과 판박이다.
팀 이름에서 체어샷은 프로 레스링 경기에 등장하는 반칙 기술을 의미한다. 헤드락, 암바, 코브라 트위스트도 있건만 왜 하칠 반칙인 체어샷을 선택했을까. 체어샷은 '의자로 친다'는 의미인데 음악을 듣고 나면 의자로 한 방 맞은 것 같은 몽롱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제법 그럴싸한 이름이다.
CJ튠업 9기 출신인 이들은 최근 EBS 헬로루키에 선정되며 올해의 빛나는 루키밴드로 거침없는 질주를 벌이고 있다. 9월 14일 서울 광흥창역 인근에 있는 CJ AZIT에서 열리는 앨범 발매 단독콘서트는 이들의 음악을 경험할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