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윤석열 앞에서 웃었다…‘전경련 부활’ 조짐?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모처럼 웃었다.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초대를 받아 경제단체장 회동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다. 그가 정권과 관련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5년 만이다. 진보정권에서 홀대를 받았던 전경련이 보수진영의 집권을 계기로 부활할 지 재계의 관심이 쏠린다.
허 회장은 문재인 정부 내내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했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이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실상 존폐의 기로에 선 단체의 수장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삼성·현대자동차·SK·LG 등 4대 그룹의 잇따른 탈퇴는 ‘전경련 몰락’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간판급 대기업이 떠나자 수입이 급속도로 줄어들며 전경련의 위상은 떨어졌고, 역할은 축소됐다.
전경련은 문재인 정부에서 철저히 ‘패싱’ 됐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주도해 설립된 1961년 이후 재계의 대표적인 소통 창구로 자리 잡은 전경련을 경제인 초청 행사나 경제장관회의, 해외 경제사절단 등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전경련 창립 60주년이었던 지난해에도 별다른 축전을 보내지 않으며 외면했다.
자연스레 과거 이병철, 정주영, 최종현, 김우중 등 당대의 기업인들이 수장을 맡으며 붙었던 ‘재계 맏형’ 수식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전면에 나선 대한상공회의소로 넘어갔다. 새 정부 첫 경제단체장 회동에서도 윤 당선인 옆자리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겠다는 듯 허 회장은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허 회장은 국내적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 보완을 요청한 데 이어 일본‧미국‧EU 등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겠다며 적극적인 국외 활동 의지를 내비기도 했다.
이는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측이 전경련 측에 회동 계획을 알림과 동시에 일정 조율을 요청하는 등 재계 대표로 대우하자 자신감을 얻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과거 중소기업중앙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 후 경제단체 중 자신들을 처음 방문하자 큰 자부심을 가진 사례도 있다.
다만 전경련이 부활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먼저 예전의 위상을 찾기 위한 필요조건인 4대그룹의 복귀가 어렵다. 정경유착 이미지를 완전히 벗지 못한 전경련에 고객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있는 4대 그룹이 눈치를 보며 가입할 이유가 없다. 윤 당선인 측이 회동 일정 조율 과정에서 “전경련의 과거를 간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재계 대표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한상의의 위상이 과거와 달리 매우 높다. 대한상의는 사상 처음으로 4대그룹 일원인 재계 서열 2위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을 수장으로 앉혀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함께 아우른다. 대한상의는 최 회장이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통해 정경유착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전경련과 이미지 차별화에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상대적으로 내로라할만한 기업이 부족한 전경련으로선 연구 기능과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해 또 다른 차별화를 보여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물론 윤 당선인이 재계 첫 회동에 허 회장을 초대했다고 해서 전경련에 노골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인수위엔 SK출신이 중용됐다. 외신 공보담당 보좌역엔 김일범 전 SK 수펙스추구협의회 부사장이 임명됐고,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경제2분과에는 SK하이닉스 사외이사를 지낸 이창양 카이스트 교수와 SK경영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 출신인 왕윤종 동덕여대 교수, 유웅환 전 SK텔레콤 ESG혁신그룹장이 있다. 이는 경제 정책 전반에 경제단체의 목소리가 담기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재계는 전경련의 부활을 조심스레 점친다. 다만 전경련의 역할론을 관망하는 경제단체들의 움직임에 따라 이들의 입지는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