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프 흐루샤 “가장 친밀감 느끼는 드보르자크 8번·9번...보헤미안 사운드 진수 선사”
밤베르크 심포니 이끌고 3월29일 예술의전당 공연 브루크너의 ‘교향적 전주곡’도 애정하는 레퍼토리 “감상은 자유로운 상태서 들어야 음악의 매력 발견 예술도 정신적 투자 있어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제가 처음으로 지휘한 풀편성 오케스트라 작품이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과 9번입니다. 가장 친밀감을 느끼는 심포니죠. 이번 투어에서도 이 곡으로 ‘보헤미안 사운드’의 진수를 보여줄 겁니다.”
지휘자 야쿠프 흐루샤(1981년생)는 체코 출신이다. 그가 본거지는 독일이지만 음악적 뿌리는 체코에 두고 있는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한국을 방문한다. 올해로 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관현악의 숨은 강자’ 밤베르크 심포니와 함께 오는 3월 29일(수)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연다. 서울에서는 8번 교향곡을, 대구콘서트하우스(28일)와 경기아트센터(30일)에서는 9번 교향곡을 들려준다.
흐루샤는 2016/17시즌부터 제5대 상임 지휘자로 활약하고 있다. 23일 서면 인터뷰에서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사랑한다. 그의 작품은 우리 오케스트라의 핵심 레퍼토리 중 하나다”라고 밝혔다. 자신과 악단의 DNA에 민족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체코 음악이 흐르고 있음을 강조한 것.
밤베르크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 위치한 인구 7만의 도시다. 이곳을 기반으로 1946년 밤베르크 심포니가 탄생했다. 론칭 과정이 이채롭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체코슬로바키아(1992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됨)에서 독일로 이주한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결성됐다. 요제프 카일베르트(1908~1968), 오이겐 요훔(1902~1987) 등 전설적 마에스트로들이 초기 예술감독을 맡아 단숨에 독일 정상의 오케스트라로 점프시켰다.
밤베르크 심포니의 국내 첫 방문은 2016년. 지휘 명장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1927~ )가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 교향곡을 이틀간 선보이며 관록의 기량을 뽐냈다. 이번 7년만의 내한 공연에서는 드보르자크뿐 아니라 브루크너의 ‘교향적 전주곡’도 선보인다. 그는 “밤베르크 심포니와 제가 발견한 아름다운 곡이다”라며 “구스타프 말러의 ‘블루미네’, 한스 로트의 ‘교향곡 1번 E장조’를 함께 녹음해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팬들에게 선사할 선곡에 대한 프라이드가 느껴진다.
“저희는 브루크너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좋아하지만, 해외 투어 중 브루크너와 드보르자크를 함께 선보일 기회를 만들기는 쉽지 않아요. 이번에 연주할 ‘교향적 전주곡’은 교향곡에 비해서는 사이즈가 작은 작품이지만, 적어도 체코와 독일을 잇는 레퍼토리로서는 아주 의미 있는 곡이에요.”
흐루샤는 서울시향과 두 번 호흡을 맞췄다. 2010년에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연주했다. 2013년에는 호르니스트 라덱 바보락과의 협연, 그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으로 케미를 보여줬다.
“그 당시 객석은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차 있었어요. 저는 밤베르크 심포니와 그 경험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해요. 이번 투어가 정말 기대됩니다.”
흐루샤는 “밤베르크 심포니에 대한 밤베르크 시민들의 지지는 엄청나다”며 “주민의 거의 10%가 음악 애호가며 정기적으로 저희 공연을 감상하는 단골들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장 없이 말씀드리면, 밤베르크 심포니는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단체 중 하나며 도시의 문화적 삶을 책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협연에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로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음악 세계를 넓혀가고 있는 김선욱이 함께해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려준다. 흐루샤는 “김선욱은 아시아와 유럽, 특히 독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는데 협연은 처음이다”며 “그의 음악에 대해 아주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공연을 보는 관객들이 특히 집중해서 들어야할 포인트를 알려달라는 말에는 오히려 ‘묻지마 감상’을 권했다. 그의 팁은 수학 문제 풀이 과정과 엇비슷했다. 정답을 맞히려 하지 말고 설령 틀리더라도 해결 과정에 몰두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특별히 어떤 것에 포커싱을 맞춰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저조차도 무대 위에서는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해야 하거든요. 관객의 입장에서도 템포, 표현, 강조, 균형, 음색, 개성 등 많은 것을 상상하며 연주에 매혹되는 것이 아주 커다란 즐거움이죠.”
그러면서 “‘감정’이라는 추상적인 상태는 작품의 구조를 만드는 ‘지능적인 면’과 결합돼 음악의 세부적인 디테일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음악을 이끌어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객석에서 들을 때 한 번쯤 이 설명을 떠올려 보면 저희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3년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장기적인 팬데믹을 처음 경험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예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는 정신적 투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저는 예술이란 우리의 마음, 두뇌, 기쁨, 슬픔, 딜레마, 문제, 희망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을 연결시켜줄 수 있다고 믿어요. 엔터테인먼트와 소비지상주의의 영향을 받는 예술이 아닌 순수 예술은 우리 자신의 정신적 투자를 필요로 합니다. 이 투자는 우리가 느끼는 풍요로움을 더 깊게 만들어줘요. 실제로 예술은 종종 재미없기는 하지만, 정신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게 곧 예술은 재미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