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정권 상관 없이 원자력산업 생태계 꾸준히 조성
정권 교체 후 일몰 원전 예산은 동종 신규 사업으로 계승
2023-05-15 안희민 기자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최근 에너지 차관으로 불리는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을 돌연 교체당한 산업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교체 배경을 놓고 산업부 곳곳에선 뚜렷한 근거 없이 이런저런 얘기만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일각에서 문재인 정권 '탈원전 정책'의 폐지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와 반대로 이는 원자력 전반에 대한 오해에 기반한다는 '동정론' 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원자력 관련 예산 항목이 거론된다.
15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정권 들어선 이후 산업부는 일몰된 원전 예산을 원자력 관련 예산으로 계승해 원자력 산업계를 배려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 정권에서 추진한 대표적인 탈원전 정책인 원자력핵심기술개발은 2021년 이후 예산이 크게 줄었다. 원자력핵심기술개발 항목은 △원전 안전 및 선진화 △원자력 환경 및 해체 예산으로 구성돼 포스트 원전 시대를 준비하는 예산이다. 전자는 원전 사고 예방과 대처, 안전 설계·해석평가에 관한 내용이고, 후자는 원전 제염·해체환경복원과 관련된 내용이다.
문 정권이 독자적으로 예산안을 수립한 2019년 투입된 사업비는 611억6500만 원, 다음해 2020년 648억9800만원, 2021년 562억1800만 원, 2022년 312억 원이다. 정권이 바뀐 후 윤 정권이 처음으로 입안한 예산안은 64억9600만 원이다. 사업비가 2021년 이후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원자력 환경 및 해체’ 예산이 2021년 일몰됐기 때문이다.
경주와 포항 지진 이후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노후 원전을 보강하는 기술 개발을 내용으로 하는 '원전중대사고방지안전강화기술개발' 예산 규모도 문 정권 때는 풍부한 편이었다.
이 사업은 2019~2023년 간 진행됐는데 2019년 47억1900만 원, 2020년 56억4800만 원, 2021년 70억5000만 원, 2022년 58억9700만 원을 기록했다. 일몰년인 2023년엔 17억700만 원이 책정됐다.
이 사업은 원전의 안전 수준을 미국과 일본 수준으로 높여 중대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중소·중견기업 대상으로 원전 안전 관련 기자재를 국산화하고 품질을 향상시키며 정비 고도화를 지원해 원전산업 생태계를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편성된 '원전안전부품경쟁력강화기술개발' 사업도 문 정권 시절인 2020년 처음 편성됐다.
이 사업은 첫해인 2020년 51억 원, 2021년 65억2600억 원, 2022년 43억7000만 원, 2023년 22억7300만 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2024년에 일몰될 사업이기에 내년에 한차례 더 예산이 편성될 예정이다.
한국에서 처음 폐로된 고리1호기(facility)의 기기(devices)에 대한 사업인 '고리1호기기기·설비활용원전안전기술실증사업'도 문 정권 시절인 2021년 15억 원을 출연한 뒤 2022년 31억8500만 원이 배정됐으며 2023년 17억3000만 원이 책정됐다.
원전 수출에 필요한 주요 기술개발을 목표로 삼은 '원전산업글로벌시장맞춤형기술개발사업'은 2021년 처음 시작됐다. 사업 기간이 2021~2025년인 이 사업은 2021년 25억9200만 원, 2022년 63억1300만 원이 편성된 에 이어, 2023년 37억9900만 원이 책정됐다.
이 사업의 주요 내용은 한국산 원전인 APR에 관한 것으로 △유럽 요건 비접지 고입전력계통 △코어캐처 설계 최적화와 3차원 냉각성능 △노심배럴덕트 유동분포 실증 △안전 강화 노심 △원전 SPACE 기반 원자로건물 고유 열수력분석 체계 기술개발에 관한 것이다.
문 정권은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애로를 호소하는 원전 기업을 위해 '원자력생태계지원사업'도 마련했다. 2021~2025년이 사업기간인 이 사업은 △원전기업역량강화(경영안정화, 회복 지원) △혁신형 소형모듈원전(SMR) 산업생태계 조성 지원 △원전기업인력양성 사업으로 구성됐다.
2021년 58억7800만 원, 2022년 64억7800만 원이 편성됐고, 2023년엔 88억8900만 원이 책정돼 37.8% 늘었다.
이들 내용을 보면 문 정권이 원전 수출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극단적인 '탈원전 정책'으로 보는 것은 '정치적 프레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심지어 문 정부은 전임 정권과 같이 원전 안전을 중시했으며 원전 수출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활로를 제시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게다가 SMR 사업에도 착수해 2030년 이후의 세계 원자력 시장을 준비해왔다.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바뀐 뒤 산업부는 원전에 대한 종전의 애정어린 태도를 계속 유지했다. 일몰된 원전 예산을 원자력 관련 신규 산업으로 되살리고, SMR과 원전 폐로 사업을 핵심 미래 먹거리로 선정했다.
일몰 예산을 원전 관련 신규 사업 예산으로 되살린 대표적인 사업이 '원전안전운영을위한핵심소재부품장비국산화기술개발사업'이다. 이 예산은 40% 증액됐다. 원전 핵심기자재를 국산화하고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한다는 목표로 수립된 예산이다.
2022년 처음 편성된 이 예산은 2022년 예산규모가 49억9500만 원이었지만 2023년 70억2900만 원으로 편성돼 40.7%나 늘었다. 사업종료연도가 2026년이기 때문에 윤 정권 내내 관련 예산이 편성될 전망이다.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보면 △파일롯 구동 안전방출밸브(POSRV) △중성자 흡수 경량 복합소재 △표면 윤활성을 향상시킨 실리콘카바이드 복합재 △원자로냉각재 수위 감시용 열전대(HJTC) △사용후핵연료 연소도 측정 설비이다.
이들은 중소·중견기업들이 직접 개발하기엔 경제성이 맞지 않아, 정부 지원을 요구해왔던 부품들이다. 개발 기간도 최소 3~5년으로 여유를 뒀다.
문 정권 시절인 2022년 시작된 사업이지만 편성 금액이 250억 원이 넘은 예산도 있다. '가동원전안전성향상핵심기술개발사업'이다. 2029년까지 진행될 이 사업은 심층방호 혁신 기술을 통해 가동원전의 안전여유도를 향상시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의 원전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2022년 예산이 263억6000만 원이며, 2023년엔 316억1300만 원이 편성됐다.
윤 정권 들어 산업부가 2023년 진행 중인 '원전해체경쟁력강화기술개발사업'은 책정 예산이 337억3400만 원에 달한다.
이 사업은 원전해체 산업기반을 조성하고 현장기술 확보와 해외시장 진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경쟁력 있는 원전해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30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앞으로 폐로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는 노후원전을 위한 사업으로 평가된다.
윤 정권의 산업부가 편성한 원전 사업 가운데 가장 주목 받는 사업은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SMR)개발사업'이다. 2023년 38억7000만 원이 책정됐지만, 2028년까지 지속될 사업으로 향후 한국 원전산업의 향방을 결정할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윤 정권의 대표 정책으로 보이는 이 사업이 착수된 것은 문 정권 시절인 2021년 4월이다. 같은해 8월 한국연구재단은 온라인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윤 정권 들어 산업부는 이 SMR에 수천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산업부는 SMR을 2030년대 세계시장에서 요구하는 원전형태로 보고, 2028년까지 핵심기술 개발과 표준설계·기술검증을 완료할 계획이다. 총사업비가 원안에서는 5832억 원이었으나 검토 후 3992억 원 규모로 다소 줄었다. 국가(국고)에서 2747억 원을 지원하고, 민간이 1245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원자력 산업에 대한 산업부의 정책적인 뒷받침은 전임 정권이나 현 정권이나 변함없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탈원전 폐지’에 지지부진했다는 일각의 평가가 오해에 가깝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