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분산전원 대신 ‘에너지수요분산’…與수뇌부의 역발상 통할까?
한무경 의원 ‘에너지 수요 분산 정책의 필요성과 과제 세미나’ 개최 "에너지 다소비시설을 발전소 인근으로 이전…지방활성화에 기여"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여권 수뇌부가 전력 수요 급증에 대비해 분산에너지 정책대신 에너지 수요 분산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인력과 자금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지 따져볼 일이다.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실은 23일 의원회관에서 ‘에너지 수요 분산 정책 필요성과 과제’ 세미나를 개최했다. 한 의원은 “지방활성화와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에너지 수요 분산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에너지 수요 분산은 분산에너지와 방향이 다르다. 분산에너지는 에너지 다소비처에 40MW 이하의 발전설비나 500MW 이하의 집단에너지, 구역전기, 자가용 발전설비가 옮겨가는 개념이다. 이에 반해 에너지 수요 분산은 기존 대형발전소에 에너지 다소비시설이 들어선다.
최근 분산에너지 특별법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는데, 이 법안에는 발전소 인근의 전기요금을 발전소에서 먼 곳보다 값싸게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개념을 원자력발전소나 석탄, LNG발전소 등 기존 에너지원에 적용한다면 데이터센터 같이 전력 다소비 시설은 기존 대형 발전소 인근으로 옮겨 전기요금을 값싸게 제공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여권에선 ‘에너지 수요 분산’이라 지칭하고 있다. 발전소와 전력수요지 간 거리가 줄어들수록 송전선로를 포함한 송변전설비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기존 대형발전소 인근에 전기를 값싸게 공급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재 발전설비는 지방에, 전력 다소비시설은 수도권과 광역시 등 대도시에 몰려 있기 때문에 에너지 수요 분산이 이뤄진다면 국토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다. 지방이 지역구인 국회의원들에겐 꽤나 매력적인 일이다.
또 여권이 선호하는 에너지원은 소형모듈원전(SMR)인데, SMR은 2027년 이후에나 상용화가 가능해 현실에 사용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원자력발전 확대를 위해선 고준위 방폐장 설치와 주민수용성 확보가 필수인 점은 여권 수뇌부가 잘 알고 있다.
실제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지역구는 울산 남구을이다. 이 지역은 원전 인접지역으로 고준위 방폐장, 사용후 핵연료 임시처리장(캐니스터) 등 원자력 이슈가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이런 이유로 여권 수뇌부는 이구동성으로 에너지 수요 분산을 지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기현 대표는 “윤석열 정부는 전력소비량이 많은 시설을 지방의 대형 발전원 인근으로 분산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지방으로 이전된다면 송배전망 건설 비용 절감은 물론 양질의 일자리가 지방에 유치되어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대구 달서구을)는 “전력 수급량의 안정성과 지방의 생존 전략 확보를 위해 실효성 있는 에너지 수요 분산 정책이 논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경남 진주시갑)은 “현재 정치권에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논의하고 있지만, 분산에너지의 낮은 효율성과 높은 발전원가로 인해 에너지 요금의 급격한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수도권에 발전설비를 늘려나가기보다 전력 수요시설을 기존 발전원 인근으로 옮겨 수요를 분산하는 에너지 수요 분산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권 수뇌부의 이같은 주장에 학계와 연구기관도 힘을 실어줬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정부가 발전지역의 여력 지역으로 수요 산단을 이전시키고 기업의 상속세나 지자체의 세금까지 포괄적으로 지원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인호 KDI 경제정보센터소장은 “수도권 인구집중으로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전기요금 할인 등 에너지 다소비 기업이 대형 발전소가 있는 지역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전력다소비시설의 대표적인 설비를 데이터 센터로 보고 있다.
박상희 산업부 신산업분산에너지과장은 “데이터 센터의 지역 분산 정책의 목적이 지역 균형 발전인만큼 지자체와 관계부처가 협력해 데이터 센터를 이전하고 균형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임은성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에너지 수요 분산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 되기 위해선 데이터 센터의 분산입지를 통해 균형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데이터 센터의 개별입지에 멈추지 않고 전후방 연계효과를 촉발하는 클러스터 육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시각이 여당 의원들과 달리 데이터 센터에 좁게 설정된 것을 근시안이라고 탓할 수도 있지만, 공장이나 기업연구소의 지방 이전이 쉽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양향자 의원(무소속)은 “지방 이전이 바람직하긴하나 현실적으로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형 발전소 인근으로 공장과 기업연구소, 데이터센터가 이전하면 지자체 입장에선 법인세 수익 확대와 지역 경기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가 있다. 여권 수뇌부가 대구, 진주, 울산에 근거를 뒀기 때문에 이같은 정책 추진이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렇지만 서울이 대한민국의 중심이라는 뿌리 깊은 인식은 여권 지도부가 지향하는 에너지 수요 분산 정책에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선 '서울=수도'라는 관념이 관습법으로 존재하고, 수도권 편중 현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서울보다 경기지역 전입인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지방에서 전출한 인구가 경기 전입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여권 수뇌부도 내년 총선의 핵심 이슈 가운데 하나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수도권과 지방 간 치열한 힘겨루기가 펼쳐질 것이고, 필요에 따라 여야를 넘나드는 합종연횡이 벌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