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유가·정제마진…정유업계 ‘표정관리’
[데일리한국 김정우 기자]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이 급등하는 가운데 정유업계의 하반기 실적 개선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정유사들은 ‘폭리를 취한다’는 부정적 인식에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지난 7일(현지시간) 기준 배럴당 86.87달러를, 영국 런던 선물거래소의 북해산 브렌트유는 89.92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최근 유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인식에 따라 각각 전날 대비 0.67달러, 0.68달러 소폭 하락했지만 지난 6월 8일 이후 3개월 만에 20% 이상 오르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의 유가 급등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의 감산 조치에 따른 공급 축소가 주된 원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일평균 산유량을 1000만배럴에서 900만배럴로 줄였으며 최근 이 조치를 오는 10월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감산 조치가 이어질 경우 국제유가가 100달러선을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기름값도 치솟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8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1753.05원, 경유 가격은 전국 평균 1645.55원이다. 지난달까지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8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유가 상승에 따라 정유업계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은 지난달 5주차 배럴당 13.3달러를 기록, 4월 4주차 2.4달러보다 5배 이상 뛰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 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를 포함한 원료비를 차감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배럴당 4~5달러 수준을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이에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하반기 실적 회복 기대감도 커졌다. 4사는 정제마진 하락 영향으로 올해 2분기 합산 영업손실 535억원을 기록, 7조553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전년 동기 대비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평균 13~15%에 달했던 영업이익률은 0%대까지 떨어졌으며 총 매출액도 44조2926억원으로 21.1% 줄었다.
정제마진 상승세에 따라 증권가 등에서는 정유 4사가 올해 3분기 각각 수천억원대 영업이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높아진 유가도 미리 구입한 원유의 재고 평가이익 증가로 이어져 재무구조 개선에 기여할 전망이다.
정유사들은 호실적이 기대되는 상황에서도 쉽게 웃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른바 ‘횡재세’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횡재세는 일정 기준 이상의 이익을 낸 기업에 추가적으로 징수하는 초과이윤세를 말한다. 지난해 3분기까지 업황 호조에 힘입어 정유 4사가 각각 수조원대 누적 영업이익을 올리며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을 당시 정치권에서는 횡재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횡재세 도입 주장의 배경에는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깔려있다. 특히 기름값 상승으로 민생에 부담이 걸리는 상황에서 정유사가 이익을 취하는 구조가 달갑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만큼 업계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먼저 횡재세 도입이 논의된 바 있는 해외의 경우 정유사들이 원유를 직접 시추하고 되파는 업스트림 구조로 큰 이익을 남기기 쉽다. 반면 국내 정유업은 원유를 수입‧가공해 되파는 다운스트림 구조인 만큼 기업들이 원가 상승분을 부담해야 하는 차이가 있다.
특히 국내 정유업은 유가가 상승할 때 정제마진이 좋아지면서 이익이 나고 다시 유가가 하락할 때 손실을 보게 되는 구조인데 손해에 대한 보전 없이 이익에 대해서만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것은 시장경제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