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패 후 '쇄신' 고민한 尹대통령, 비서실장·정무수석 교체로 변화 꾀하나
'총선 패배 책임' 한오섭·이관섭 사의 표명 12일 만에 인선 소통 강한 홍철호·정진석 각각 정무수석과 비서실장 임명 '친윤' 정진석 임명엔 野 일제히 비판…"국민 눈높이 안 맞아"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신임 정무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이후 국정 쇄신에 방점을 찍은 만큼, 소통에 강점을 둔 인사들을 배치해 변화를 꾀하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 여론의 반응이 긍정적일 진 미지수다. 비서실장의 경우 국민의힘 내 대표적인 '친윤'(친 윤석열) 인사인 정진석 의원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국민 명령을 외면한 인사'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오섭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후임으로 홍철호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을 발탁했다. 같은 날 오전에는 이관섭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정진석 전 국민의힘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으로 전임 정무수석과 비서실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12일 만이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공식 일정을 대부분 소화하지 않고 장고를 이어갔다. 하지만 지난 19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회담을 제안했고, 이 과정에서 여야가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만큼 인선을 서둘러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국회와의 소통 가교 역할을 할 정무수석에는 홍 전 의원을 임명했다. 치킨 프랜차이즈 '굽네치킨'의 창업주인 홍 전 의원은 김포시에서 재선을 지냈다. 홍 전 의원은 2017년 19대 대선 때 바른정당에 몸을 담그며, 유승민 당시 대선후보의 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
또한 복당한 뒤에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에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홍 전 의원은 성품이 합리적이고 온화해 의원들과 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는 경기 김포을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윤 대통령은 "정치인 이전에 먼저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 한 기업인"이라면서 "제가 당의 많은 분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소통과 친화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해서 추천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자수성가 사업가로서 어떤 민생 현장의 목소리도 잘 경청하실 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여야 의원들 모두 소통과 친화력이 뛰어나다고 추천받았다. 함께 일해보거나 개인적인 관계는 전혀 없지만 잘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같은 날 오전에는 비서실장에 정 의원을 임명하기도 했다. 언론인 출신인 정 의원은 16대 총선 때 충남 공주·연기에서 처음 당선됐다. 이후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냈고, 국회 부의장과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며 야당 의원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 또한 당내에서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윤 대통령은 "여야 두루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비서실장으로서 용산 참모진뿐만이 아니라 내각, 당, 야당, 언론과 시민사회와 원만히 소통하면서 직무를 잘 수행해 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윤 대통령에게 별도의 원고는 없었다. 2022년 윤 대통령이 미국에 방문했을 당시 불거졌던 MBC의 '바이든-날리면' 보도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기자들과 소통도 재개됐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초대 내각 명단을 발표한 바 있지만, 취임 이후에는 이번이 처음이다.
신임 정무수석에 오른 홍 전 의원은 "제 몸에 비해서 너무 옷이 커서 걱정이 많아 적임자인가를 놓고 많은 시간 고민했으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서 "이번 선거에서는 민심을 확인했고, 결괏값은 정부 쪽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당이 요구하는 '채상병·김건희 특검법'을 민주당 측과 논의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민주당 천준호 대표 비서실장하고 만나고 난 다음에 해야지, 그쪽에서 어떤 말을 할지 모르는데 답변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신임 비서실장이 된 정 의원은 삼봉 정도전이 ‘백성을 지모(智謀)로 속일 수 없고 힘으로 억누를 수는 더욱 없다’고 한 것을 언급하면서 "600년 전 왕조 시대에도 국민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그랬다”며 “지금은 공화국이다. 오직 국민의 눈높이에서 대통령께 객관적인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정무수석과 비서실장으로 홍 전 의원과 정 의원을 발탁한 배경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이 제기돼온 '소통 부족' 문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문제가 국민의힘의 총선 참패에 있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지적돼 왔던 만큼, 소통에 강점을 둔 정치인 출신 인사들을 배치해 여소야대 정국을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윤 대통령은 정무수석과 비서실장을 한 날 교체한 배경에 대해 "이재명 대표에게 용산 초청을 제안했기 때문에 그와 관련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하는데 정무수석을 더 빨리 임명해 신임 수석이 준비하고 진행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인적 쇄신을 통해 변화에 나섰지만, 효과가 있을 진 미지수다. 홍 전 의원은 여권 내에서 온건 성향의 보수 인사로 꼽히지만, 정 의원은 친윤으로 대표되는 인물로 야당이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정 의원의 비서실장 임명을 두고 "친윤 핵심 인사로 그동안 국민의힘이 용산 대통령실의 거수기로 전락하게 한 장본인"이라면서 "'불통의 국정을 전환하라'는 국민 명령을 외면한 인사란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단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 의원이 과거 친일 망언을 일삼았던 인물이란 점을 밝히면서 "비뚤어진 역사관과 인식을 가진 정 비서실장은 협치 대신 정쟁을 촉발할 인물"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민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고 오히려 국민 기준에 현저히 떨어지는 인사"라고 비판했다.
강미정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윤 대통령 주변과 국민의힘에 인재가 없긴 없나 보다"면서 "정 실장은 과거 한일 관계에 대해 했던 발언들을 곱씹어 보길 바란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이제라도 바로잡고 사과하시길 권고한다"고 촉구했다.
김민정 녹색정의당 대변인은 "쇄신은 온데간데없는 구태 인사"라고 비판했다. 최성 새로운미래 수석대변인은 "인적 쇄신을 예고한 지 열흘 넘게 지나 내놓은 인사가 고작 막말, 친윤 인사라니 국민의 성에 찰 리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총선 참패 후 한오섭 전 정무수석과 이관섭 전 비서실장과 함께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국무총리의 후임을 발탁하는 데까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회담은 신임 정무수석과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준비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도 이날 신임 총리 인선 시기와 관련한 질문에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임 총리 후보군으로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함께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 등이 언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