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청구간소화 10월 도입...'비급여 정보' 지키려는 의료계 반대로 난항
비용 분담률 놓고 생·손보 갈등도 계속 금융당국 적극적 중재개입 필요한 시점
[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최동수 기자] 보험업계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가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지만 오는 10월 본격적인 도입을 앞두고 여러 가지 문제로 난항에 빠졌다. 전송대행기관에 보험개발원이 선정됐음에도 '비급여' 정보를 지키려는 의료계의 반발과 시스템 구축·운영 비용의 분담률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는 생·손보업계로 인해 간소화 시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보험업계와 의료계에선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 중재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의료 데이터를 받는 중계기관의 전문성과 공공성 향상을 위한 지원은 물론 분담률을 놓고 합리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개발원은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고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계약 절차를 진행 중이다. 보험개발원은 전송대행기관으로 해당 시스템의 구축과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앞서 국회는 지난해 10월 본회의를 통해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 가입자가 요청할 경우 병원이 전송 대행 기관(중계기관)을 거쳐 보험사에 진료비 세부내역서와 처방전, 영수증 등 각종 서류를 전송하는 서비스다. 오는 10월 25일부터 병원급 이상에 1단계 시스템을 적용하고(1단계) 내년 10월에는 의원과 약국으로 시스템을 확대할 계획이다.
보험사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시행되면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는 절차가 간편해질 뿐 아니라 비급여 항목에 대한 과잉 의료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의료계 반발에 보이콧 가능성도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관련 절차 개선을 권고한 이후 14년 만에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이 급물살을 탔지만 데이터를 제공하는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병원과 보험사 간 실손보험 청구서류 전송을 대행하는 전송대행기관 선정을 놓고 갈등을 이어갔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보험개발원을 전송대행기관으로 선정하자고 제안했지만 의료계는 민간 핀테크 업체 선정을 주장했다.
결국 금융당국은 10월 말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 지난 2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필요한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하는 중계기관으로 보험개발원을 선정했다.
그러자 의료계는 보험개발원이 데이터 중계를 하면 진료비 세부내역서 등 환자 정보가 보험업권에 수집되고 보험 가입 거절, 보장 축소, 보험금 지급 거부 등으로 이어져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 예민한 의료 정보가 보험사에 넘어가게 되면 보험 혜택 축소뿐 아니라 비급여 진료 통제 등으로 국민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보험개발원은 "보험업계의 유일한 국가주요통신기반시설로 그동안 단 한 번도 보안 사고가 없었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와 유사한 자동차수리비온라인청구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충분히 전문성을 갖췄다"며 "보험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공공성도 있다"고 반박했다.
다만 일각에선 전송대행기관 관련 의료계와 보험업계의 갈등이 길어지면 일부 병원이 보험개발원이 구축한 전산시스템을 거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민간 핀테크 업체를 이용하거나 저항 차원에서 자료 전송 자체를 보이콧하는 병원이 나올 수도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이콧을 해도 현행법에선 처벌할 근거는 없다"며 "결국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아 데이터를 받을 수 있어야 '반쪽짜리' 제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비용 분담 놓고 생·손보사 의견 엇갈려
의료계와의 갈등 봉합은 물론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시스템 구축·운영 비용의 분담률 문제 역시 오는 10월 법 시행을 앞두고 해결해야 할 숙제다. 시스템 구축까지 들어갈 비용은 총 10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면서 해당 비용을 분담해야 하는 생·손보사간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생명보험업계는 수입보험료 기준 점유율(MS)로 분담금을 나누자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실손보험 보유계약 건수는 총 3565만건으로 손해보험 82.8%, 생명보험 17.2% 비중으로 나뉜다. 보험개발원 역시 손보 7, 생보 3으로 분담 비율을 정하고 사후정산 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손해보험업계는 생명보험사와 절반씩 비용을 분담하잔 의견이다. 초기 시스템 구축 비용이 각 보험회사 청구 건수 등 이용량과 무관하게 시스템 설계 방식, 의료기관 개수 등에 따라 비용이 결정되는 고정비 성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갈등이 이어지면서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합리적인 중재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법안 시행이 반년 밖에 남지 않는 상황에서 예산 분담 비율 관련 갈등이 계속되면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당국의 적극적인 중재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