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토토 커뮤니티

[월요 수필 공간] 서미숙 ' '같이'의 가치'

2024-07-07     김철희 기자
서미숙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DB

산책은 내 삶의 여유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동네를 한 바퀴 돈다. 보안관처럼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린다. 강변 체육공원이나 아파트 인근 숲길을 느릿느릿 걷기도 한다. 좀 더 여유로운 날은 근교에서 산책의 자유를 누린다.

주로 아침에 나가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을 때는 낮이나 저녁에도 걷는다. 가게 앞에 화분을 내어놓거나 울타리를 없애고 정원을 이웃과 공유하려는 집들을 만나면 세상이 환해진다. 예쁜 꽃도 혼자 보기보다는 이웃과 나누면 기쁨이 배가 될 것이다.

정원이 싱그럽다. 울도 담도 없는 대로변에 이토록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다니. 출입구부터 바깥마당까지 제라늄 바이올렛 등 올망졸망한 화분부터 커다란 수국까지 다양한 꽃을 배치했다. 우아한 자태와 향기를 뽐내는 장미는 각기 이름표를 달았고 아치문을 따라 덩굴도 올렸다. 꽃집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꽃도 여럿이라 눈 호강을 한다. 

하얀 건물 외벽과 초록 식물, 화사한 꽃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유럽의 어느 저택에 초대받은 기분이다. 레이스 양산을 쓴 귀부인들이 풍성한 드레스 자락을 끌며 가든파티라도 열면 제격이겠다. 카페를 찾는 사람은 물론이고 강변 체육공원으로 오가는 길목이라 행인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초록 마당 가운데 의자와 테이블도 곁들였다. 아침 운동 나왔던 이웃 할머니가 잠시 의자에 쉬었다가 일어선다. 정원을 공유하고자 하는 주인의 마음이 꽃보다 아름답다. Good Day라 적힌 삭소롬 화분이 돋보인다. 하루를 어여쁜 꽃으로 시작하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길 건너 현수막에 눈길이 쏠린다. '나눔과 공유 그리고 실천' 유춘근 기증 유물 특별전이 궁금하다. 의성 <조문국 박물관>으로 산책을 나선다. 화려한 외관에 비해 소장자료는 빈약했던 박물관이 기증유물 덕분에 활로를 찾게 된 셈이다. 가정집 창고에 은거하던 301점의 유물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관람객을 기다린다. 삼국시대부터 근세까지 토기와 도자기가 주를 이루고, 고서도 45점이나 된다. 

섬세하고 귀한 유물도 더러 보인다. 뚜껑 달린 굽다리 접시는 문양과 트임이 다채롭다. 녹황색, 담청색, 녹회색 등 고려자기를 선보여 고려자기는 비취색이란 고정관념을 깨게 해준다. 대호는 온전한 형태의 큰 항아리로 기증자가 애착을 가졌던 희귀품이다. 대부분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지역민들에게서 수집한 것이지만, 일본 에도시대 청동거울이나 중국 명나라 백자청화 풀꽃무늬 완, 청나라 청자 철화무늬 항아리 등도 포함되었다. 고서 중에서 최제우가 쓴 '동경대전(東經大全)'은 동학에 관한 서책으로 학술대회를 검토 중이다. 

이 모든 것이 한 개인의 수집품이라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생에 걸쳐 애써 모은 수집품을 지역박물관에 아무 조건 없이 기증했다. 1958년생인 그가 형편이 어렵던 고교 시절부터 문화재에 관심을 두고 한 점씩 모으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애틋할까. 1982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에서 하던 사업을 청산하고 귀향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집한 것들이다. 

기증자는 현재 의성에서 영농법인 대표이사로 활동 중이다. 오직 고향을 아끼는 마음과 열정 덕분에 지역 문화재가 오롯이 지역에 남게 되었다. 그는 "박물관에 전시하면 여러 사람이 같이 보고, 같이 공유하여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는 생각으로 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공유하려는 이웃이 늘어간다. 공간을 공유하고 경험을 공유한다. 한편 나는 무엇을 공유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좋은 이웃을 만나면 행복 바이러스가 전염되어 같이 행복해진다. '같이'의 가치다. 오늘은 어떤 신세계가 내 앞에 펼쳐질까. 산책 시간이 기다려진다. 

◆ 서미숙 주요 약력

△경북 안동 출생 △계간 '문장'(2015) 등단 △수필집 '남의 눈에 꽃이 되게' 기행수필집 '종점 기행'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 △프리랜서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