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본능은 타고나는 걸까. 세상의 반대편, 페루의 나스카 평원엔 거대한 지상화가 보존되어 관광객을 부른다. 무수한 선 그림 전체는 1300㎞, 낱개의 그림이 있는 면적은 450㎢에 달한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면서도 곧게 그린 선과 기학학 문양, 거미, 고래, 벌새 등 다양한 동식물과 외계인 같은 인간도 등장한다.
이 그림들은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후 800년까지 지속되었던 나스카 문화 시대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부분 한 붓 그림 방식으로 그린 거대한 그림이라 공중에서 내려다봐야 한눈에 들어온다. 한 붓 그림은 오직 한 번뿐인 삶과 닿아있다.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해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 '천상의 신들을 위한 대지의 신전'이라고도 해석하는 땅 그림을 보면서 기록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내가 책을 묶었으면 하는데..."
느닷없이 그가 물었다. 퇴직 일 년 앞두고 공로 연수 들어가기 한 달 전이었다. 지금은 너도나도 책 내는 시대이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의 근무처인 대학에서 연구가 본분인 교수들에게는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교육행정직으로서는 드문 일이라 의아했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그는 진정한 호모 아키비스트였다. 사무관 시절 7년간 행정일지를 써 왔노라고.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전날 일지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성했다고. 소소한 기록일망정 퇴직 기념으로 동료·후배들과 나누어 봤으면 싶다는 게 아닌가. 그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기록의 힘을 믿기에.
책을 막 묶어내려 할 즈음에 복병을 만났다. 갑자기 친정아버지가 소천하셨다는 연락이 왔다. 향년 82세였지만,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아버지가 아니던가. 순간 든든하게 받쳐주던 지주 하나가 소리 없이 내게서 빠져나갔다. 다급한 마음에 비좁은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옆 차를 살짝 긁고 말았다. 출고한 지 열흘도 안 된 내 차는 살필 경황이 없었다. 우선 옆 차에 쪽지를 남기고 친정으로 달려갔다.
장례 치르고 뒷정리하랴, 사고 차 수습하랴. 한동안 정신이 혼미했다. 내게 맡긴 행정일지 교정을 꼼꼼히 살필 여유가 없었다. 시간에 쫓겨 첫 독자로서 설렘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한 채 모니터에서 대충 훑어보고 원고를 넘겨야 했다.
한학에 밝은 동료가 지어준 호를 따서 <형서일지(炯緖日誌)>로 책 이름을 정했다. 청보라색 표지와 부록으로 수록할 사진도 함께 골랐다. 어릴 적부터 퇴직 무렵까지 그의 일생이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솔뫼를 떠나는 소회와 동료의 축사가 앞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손사래를 쳤지만, 내가 우겨서 ISBN(국제표준도서번호)까지 부여하고 보니 어엿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아 든 동료들은 적이 놀란 모양이다. 대부분 본문보다 부록 사진에 눈길이 먼저 쏠렸다고 전했다. 33년간 동고동락했던 날들이 고스란히 담겼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문학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담담하게 사실을 기록한 일지에 불과하지만, 시간의 켜가 쌓여 그의 역사가 되었다. 덤으로 우리 가족의 중요한 일도 곁들여 가족사가 되기도 한다.
가끔 일지를 들춰본다. '이런 일도 있었구나, 그땐 그랬었지' 하면서 지난 일을 반추한다. 한편,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밥벌이를 위해 집을 나섰다가 귀가하기까지 일들이 짠하기도 하다. 객지에서 감기 몸살로 고생하면서도 내가 걱정할까 봐 혼자 삭인 일이며, 치통을 앓으면서도 선약한 직원들과 퇴근 후에 테니스 쳤다는 대목에선 미련퉁이 같은 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면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며 <형서일지>에 큰 관심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서울의 모 대학 기록학과 대학원생이다. 21세기 초반 교육행정 사무관의 업무와 일상, 그리고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드문 자료여서 연구에 필요하다며 책 기증을 요청해 왔다. 그는 기꺼이 응할 수밖에 없었다.
늘 그림자 같던 사람이 다시 보였다. 무엇보다 7년간 날마다 일지를 쓰는 꾸준함이라면 뭐든 해낼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간혹 맞춤법이 맞지 않거나 사진이 순차적이지 않고 더러 섞인 것 등은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엄지를 치켜세우며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교육행정 사무관 합격 후 연수받던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어느 강사가 강의 중에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단다. 몇백 명 연수생 가운데 행동으로 옮긴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그뿐이 아니다. 지난여름 내가 입원한 병실에서도 그는 기록을 멈추지 않았나 보다. 퇴원 후 어느 날 '집사람 병상일지'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거기엔 입원부터 퇴원까지 날마다 치료 과정, 방문객, 산책, 장보기, 인근 도서관 나들이 등을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두 달간의 병원 생활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평범한 일상이 모여 삶이 된다고 했던가.
요즘 주변을 살펴보면, 기록하는 사람이 늘어나서 반갑다. 글로, 사진으로, 그림으로, 또는 영상으로 어떤 형태이든 일상을 촘촘하게 기록하면 역사가 된다. 역사는 훗날 해석하는 자의 몫이지만, 해석하기 위해선 기록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스카 땅 그림처럼 거창한 기록만이 아니라 소시민의 미시적인 기록도 쓸모가 있으리라. 그것은 마침내 한 개인의 역사를 넘어 한 시대의 역사가 될 터이니 말이다.
드문드문 일기 쓰던 나도 야무진 결심을 했다. 새해 앞두고 ‘5년 다이어리’를 주문하고 말았다. 내가 기록하지 않으면 내 역사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니까. 기록하면서 나를 좀 더 들여다보게 될 테니까. 때로는 기록이 상처를 위무하기도 할 테니까. 그는 지금도 아침마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다.
◆ 서미숙 주요 약력
△경북 안동 출생 △계간 '문장'(2015) 등단 △수필집 '남의 눈에 꽃이 되게' 기행수필집 '종점 기행' △제20회 원종린수필문학상(작품상)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 △프리랜서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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