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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수필가 11인] 장금식 수필가 '산투르 리듬과 자유의 춤'

주간한국 9일자 31면 게재

2024-12-08     김철희 기자
사진=작가 제공

체에 걸러낸 듯 고운 모래가 바닷물에 섞인다. 모래와 물의 교감은 잠시뿐, 격랑에 쓸려 재빨리 흔적을 지운다. 갈매기가 파도에 몸을 맡긴다. 촉촉한 물기를 핥으며 바다와 한 몸이 된다. 안개구름은 춤을 추듯 곡예를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책장을 덮는 순간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가 그려낸 풍경들이 실제 그 바다 앞에 서 있는 듯 여러 이미지로 살아난다.

소설의 주요 인물 '나'와 '조르바'는 크레타섬으로 떠나는 항구에서 운명처럼 만난다. 문자 세계에 묶여있고 책 읽는 사람으로 비친 '나', 야생마 같고 도발적 행동으로 죽은 지식보다는 몸의 실천을 중히 여기는 사람 '조르바'. '나'와 '조르바' 앞에서 말 없는 바다는 산투르 리듬으로 흥겹게 춤을 춘다. 책을 읽는 내내 '자유'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헤집는다. 크레타섬을 끌어안은 조르바의 벌거벗은 바다를 나는 푸르게 상상한다. 소설의 인물들이 화두를 던진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조르바'는 삶의 조력자, 멘토로 삼고 싶은 매력을 지녔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이원적 대립으로부터 '보이는 것, 육체, 물질'이 '보이지 않는 것, 영혼, 정신'과 하나 되어 진흙처럼 끈끈하게 섞일 순 없을까.

새로운 세계인 탄광촌에서 지성의 화신인 '나'와 자유를 실천하는 '조르바'의 행동에 다소 저항적 마찰이 예상되나 두 관계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조르바'의 인간 정신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의 자유가 탐이 난다.

광부들과 섬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조르바'의 행동을 보라. 인위적인 틀을 허물고 웃음과 해학, 내면의 소리에 따르라고 한다. 화자의 광산업 실패에 대해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지 않고, 내일 일어날 일도 묻지 않고, 이 순간 일어나는 일이 중요하다"라고 말해 나도 무릎을 친다. 실패할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 좌절 대신 자축을 벌이라는 건가. 양고기를 구우며 포도주를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는, 이 초인 같은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니체의 관점으로 본다면 조르바는 위버멘쉬[Übermensch : 초인사상]를 실현한 인물에 가깝다. 초월적 인간형, '인간을 넘어선 새로운 인간'이다. 니체의 인간 정신의 단계, '낙타, 사자, 어린이' 중 어린이 단계를 실현하는 유형이다.

등에 짐을 지고 사막을 달리는 낙타는 묵묵히 일만 할 뿐 자유가 없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어. 참아야 해. 곧 바람이 불 거야. 나무도 자랄 테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사막 한가운데 동그마니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모래폭풍을 견디며 걸어가야 하는 낙타. 이 단계에 나를 끼워 넣는다.

사막이라는 삶의 테두리 안에서 아등바등 전전긍긍, 더 이상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겹쳐서 오는 재난은 겪을 만큼 겪었어. 정저지와(井底之蛙)'의 삶만 즐기는 사람이 어찌 넓은 세상을 유영할 자격이 있을까. 이런 내가 '자유'를 추구하다니 얼마나 모순인가.

그러면서 내 영역이 아니라고 밀쳐놓은 사자와 어린이 단계에 자꾸 눈길이 간다. 사자는 노예의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다. 낙타처럼 주인의 채찍에 무릎 꿇으며 무조건 복종하지 않는다. 용(龍)처럼 군림하며 명령하는 법이나 관습을 우상으로 섬기지 않는다. 가식과 위선이 없고 타자의 시선과 행위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사자는 부당한 것엔 저항하지.

어린이 단계야말로 나와 먼 거리에 있지.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목적을 추구하지 않아도 되는 순진무구의 세계는 그저 딴 세상일 뿐이지. 포도가 포도즙이나 포도주가 되고,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수(聖水)가 되듯, 어린아이는 디오니소스적인 절대 긍정의 세계에 머물지. 놀이하는 기쁨으로 나날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나가지. 바로 그거야. 그런데 현실의 사막에서 내가 그런 자유를 누린다는 건 꿈일 뿐. 미숙한 자유라도 만끽해보라는, 환청이라도 듣고 있는가. 책갈피를 넘길수록 조르바의 춤과 초인적 '자유'가 온통 뒤섞인다.

내 안에서 자유란? 복잡한 마음의 굴레를 벗는 것이다. 얼기설기 얽힌 부정적 감정들과 화해하기. 불안, 슬픔, 욕망, 걱정, 실망감, 좌절, 무기력 등 출처 불분명한 감정의 찌꺼기를 씻어내는 작업이다. '자유'라는 단어를 노예로 만들지 않는 게 지름길이다. 내게 다가오는 삶과 손잡으며 노래하고 춤추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우선이다.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초월적 인간형을 생각해본 것만으로도 부정의 굴레에서 해방된 듯하다.

언젠가 크레타섬에 가게 되면, 화자가 그려놓은 풍경을 따라가며 그 이미지에 푹 빠져보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거침없이 자신을 표현할 용기를 가지며 푸른 바다 위에 나의 물감을 풀어보자. 어설픈 붓놀림으로 잘못되거나 휘적거리다 말더라도 푸른 도화지가 되어준 바다에 자유롭게 그려보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묘비명에 적은 것처럼 어떤 바람도 없이, 어떤 두려움도 없이 그냥 자유를. 

장금식 수필가. 사진=주간한국 제공

◆장금식 주요 약력

△경북 칠곡 출생 △'계간수필'(2014) 등단 △수필집 '내 들판의 허수아비' '프로방스의 태양이 필요해' △현재 '인간과문학' 편집장 △소르본 대학원(불문학) 석사과정 졸업 △프랑스어 교사, 프랑스 국제학교 강사 △아르코 발표지원 선정 △정읍사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