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터리, 내년엔 차세대 기술 혁신 가속화·글로벌 공급망 재편'
문학훈 오산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 "올해는 군웅할거(群雄割據)"
"올해 배터리 업계를 사자성어로 정리하자면 '군웅할거(群雄割據)'일 것입니다. 각국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새로운 기술과 전략으로 시장 선점을 위해 노력한 해였죠"
문학훈 오산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올해 배터리 산업을 이렇게 정의했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원자재 가격 하락, 기술 혁신의 부상 속에서 산업계가 격변을 맞이했다. 문학훈 교수는 앞으로의 2~3년간 배터리 시장이 침체기에 머물 가능성이 있지만, 이 시기를 기술 혁신과 내실을 다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오는 2025년 배터리 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전망하며 다섯 가지 주요 변화를 꼽았다.
우선 문 교수는 당분간 전기차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연합(EU) 보조금 축소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정책 변화로 전기차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며, 배터리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것이다.
동시에 차세대 배터리 기술 혁신 가속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전망했다. 특히 중국 기업 CATL이 개발 중인 2세대 나트륨이온 배터리와 같은 혁신적 기술은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와 경쟁하며 시장을 재편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문 교수는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미국·유럽의 자국 내 생산 강화 움직임은 시장 판도를 뒤흔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별 생산 역량 강화도 주목했다. 유럽과 미국은 배터리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생산 역량을 키우고 있다. 일례로 EU는 내년까지 배터리 자급률 100%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미국은 배터리 공급망 강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사용후 배터리 재활용 및 재사용도 언급했다. 그는 "전기차 보급 확대에 따라 사용 후 배터리의 재활용과 재사용이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사용 후 배터리 산업 확대를 위한 정책 및 규제, 신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하락세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글로벌 시장 합산 점유율은 20.1%로 전년 대비 3.3%포인트 하락했다. 중국 CATL(36.8%)과 BYD(16.8%)의 점유율이 공고한 것과 대조적이다.
문 교수는 K-배터리 점유율 하락 이유로 중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과 LFP 배터리 기술 우위, 중국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 글로벌 생산기지 확대를 지목했다.
중국 배터리의 강세와 관련 그는 CATL과 BYD가 수직 계열화된 생산공정과 원자재 조달을 통해 비용을 대폭 낮췄고,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안정성과 저비용을 강점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더불어 CATL과 BYD가 해외 생산기지 확장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을 강화한 것도 이들의 점유율 확대에 기여했다는 판단이다.
K-배터리 맞춤 대응 전략도 제시했다. 전기차 시장이 일시적 수요정체(캐즘)를 겪고 보급형 전기차가 확대되면서 국내 기업들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 교수는 국내 기업들의 대응 전략으로 △보급형 배터리 제품군 강화 △프리미엄 기술 개발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확대 △OEM 협력 강화 △글로벌 생산 기지 확장 등을 제언했다.
특히 LFP 배터리와 같은 저가형 제품을 개발해 보급형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는 동시에 전고체 배터리와 고에너지 밀도 배터리와 같은 첨단 기술을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전기차 시장 둔화의 대안으로 ESS 시장이 주목받고 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애리조나주에 ESS용 LFP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는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삼성SDI는 현대차와 각형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협력 관계를 확장했고,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와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생산기지를 확대하며 완성차 업체들의 요구를 충족하고 있다.
문 교수는 "유럽 시장에서 각형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므로, BMW, 폴크스바겐 등 유럽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인도, 동남아시아 등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지역의 완성차 업체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이같은 전략을 통해 국내 배터리 3사는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중국업체들이 강세인 인산철(LFP) 배터리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
"LFP 배터리는 가격이 저렴하고 안정성이 높아 전기차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LFP 배터리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함에 따라 중저가 전기차 및 ESS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중국 기업들과의 가격 경쟁 및 공급망 확보 등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전략적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