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결산] 특검법 15건, 탄핵안 18회, 거부권 31번…두 쪽 난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 계엄·탄핵 정국…'정쟁' 오욕의 한 해 무안 여객기 참사 '정쟁자제' 기류 이틀만에 대치
[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이지예 기자] 정치권을 아노미 상태로 몰고 간 정쟁이 대규모 사상자를 낸 예기치 못한 참사 앞에서 잠시 멈췄다. 잠잠해진 여의도가 기이할 만큼 여야의 대치는 22대 국회에서 극에 달했고, 정쟁의 산물로서 탄핵소추안, 특검법안, 거부권 건수는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헌정사 최초'의 수식어를 이토록 남긴 정국 자체가 최초였다. 여전히 헌법재판관 임명 등 각종 난제를 둘러싼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여의도 일대를 감돌고 있다.
22대 국회는 시작부터 극단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을 벌이다 이내 탄핵의 강 앞에서 올해 마지막 날을 보내게 됐다. 정부를 겨냥한 야당발(發) 탄핵소추안은 올해 18번(동일인물 포함) 발의된 데 이어 설상가상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국무총리의 탄핵소추라는 초유의 사태가 대미를 장식했다. 대한민국 국정 키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에 도달한 상태다.
그간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을 무력화할 태세로 무차별적 탄핵 공세를 이어왔다. 감사원장은 대통령실 관저 이전에 대한 부실 감사 등을 이유로, 서울중앙지검장과 일선 검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수사했다는 이유로 탄핵소추됐다. 민주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탄핵안을 밀어붙이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있을 때까지 직무는 정지된다. 이 때문에 제도의 목적과는 별개로 정부 압박용으로 탄핵안을 남발해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거야(巨野)의 입법 독주와 대통령의 재의요구도 일상화됐다. 정쟁의 시발점이 된 특검법안 발의는 15번, 윤석열 정부의 재의요구(거부권 행사)는 31번 이뤄졌다. 22대 국회 개원 후 국회가 격주로 탄핵안과 특검법을 발의한 셈이다. 대통령실을 겨냥한 '채상병·김건희 특검법'은 벌써 4번째에 이르렀다.
22대 국회에서 이날까지 처리된 법안 건수는 총 912건에 그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같은 기간 1408건 법안을 처리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다. 특검·탄핵 정국에서 민생·경제 법안은 또다시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여야, 참사 이틀 만에 헌법재판관 임명·쌍특검법 신경전
정치권이 혼란한 가운데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 참사로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됐다. 정쟁을 자제하자는 암묵적 기류가 형성된 것도 잠시 여야는 이틀 만인 31일 헌법재판관 임명과 쌍특검법을 둘러싼 신경전을 노골적으로 이어갔다. '윤석열 탄핵시계'와 '이재명 사법시계'에만 골몰하고 있는 모습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한 당 입장은 변함이 없다. 특히 최상목(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지위가 유동적"이라며 "우리가 헌법재판소에 한덕수 국무총리의 표결 절차가 적합했는지 여부에 대해 권한쟁의를 신청한 상황이다. 이게 인용된다면 최 대행의 현재 위치도 불안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국무총리까지 맡는 1인 3역 체제를 정비할 틈도 없이 무안공항 여객기 사고 수습에 나선 상황에서 최 대행의 지위를 부정하는 듯한 입장을 내세운 셈이다. 다만 권 위원장은 "쌍특검법은 재의요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다.
야당이 추진하는 내란·김건희 여사 특검법인 이른바 '쌍특검법'의 공포 시한은 1월 1일이라 이날 국무회의에서 최 대행은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민주당은 국가애도기간인 만큼 최 대행이 특검법을 거부하더라도 탄핵과 연계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덕수 총리의 탄핵소추로 '대행의 대행 탄핵' 선례를 남긴 부담감에 더해 참사 상황에서 자칫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최 대행이 특검을 거부하고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경우, 또는 특검도 거부하고 헌법재판관 임명도 안 하는 등 경우의 수에 따른 민주당의 대응이 궁금할 것으로 생각한다"라며 "지금은 현직 대통령 내란 사태가 발생한 상황이고 수많은 변수, 도전, 난관이 지속될 예정이다. 민주당이 경우의 수에 따라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기는 그렇다"며 말을 아꼈다.
법원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도 또 다른 뇌관으로 떠올랐다. 윤 대통령의 내란 등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직 대통령 체포영장이 발부된 건 헌정사상 처음이다.
민주당은 이날 내란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활동에 즉시 돌입하겠단 계획을 밝히면서 "내란 사태의 위헌 및 위법성과 국회 침탈 과정, 책임자 발본색원 등 책임자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국민의힘은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내란수괴를 감싸지 말고 국가 비상 상황 수습에 적극 협조하길 바란다"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국가 애도 기간에 현직 대통령 체포영장이 발부된 점에 유감을 표하며 "현직 대통령과 (수사와 관련해) 좀 더 의견을 조율하고 출석을 요구하는 게 맞지, 체포영장 등 비상 수단을 통해 현직 대통령 구금을 시도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