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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희 변호사의 법과 영화 사이] 중대재해처벌법이 '레인메이커'가 되기를

2022-02-04     
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객원교수)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장서희 변호사] 지난 달 11일 광주 아이파크 신축 현장에서 외벽 붕괴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29일 양주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토사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아이파크 사고로 작업자 6명이 실종됐고 사고 채석장에서는 3명이 매몰돼 숨졌다. 새해 벽두부터 소중한 생명이 잇따라 산업재해로 희생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불행한 두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일을 전후로 발생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과 공중이용시설 등에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근로자와 일반 시민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기업의 조직 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20대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된 후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석탄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사망 사고 등의 참사가 이어지자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규정한다. 중대산업재해란 산업재해의 결과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등을 뜻한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결과 등을 요건으로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와 같이 일반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규정됐다.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여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게 된다. 형사처벌뿐 아니라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해당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은 그로 인해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그 5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진다(제15조). 이는 우리나라에서 예외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성격의 규정이다. 받은 손해만 배상하는 전보배상을 초과하는 고액 배상을 통해 민사적으로도 제제하려는 것이다.

영미에서 발달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기업 등이 고의적이고 비도덕적인 불법행위로 피해자에게 손해를 가할 경우에 징벌적 차원에서 적용된다. 법정 영화인 ‘레인메이커’는 이 제도를 다루고 있다. 신참 변호사 루디(맷 데이먼)는 백혈병에 걸린 의뢰인에게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거대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수행한다. 의뢰인은 골수이식에 필요한 보험금을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었다. 배심원들은 부당하게 보험금 지급을 거부해온 보험사에게 손해액 15만달러 외에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5000만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지급하도록 평결한다.

그러나 패소한 보험사는 파산 신청을 하는 방법으로 법적 책임에서 빠져나간다. 소비자를 기만해 죽음으로 내몬 악덕 기업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마저 잠탈해버리는 모습은 허탈감을 안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젊은 변호사가 거대악에 맞서 일궈낸 승리는 가물어 힘든 세상에 내리는 반가운 단비임에 틀림없다. 성공보수 대신 비를 염원하는 레인메이커(rainmaker: 비를 내리게 하는 인디언 주술사 또는 거액 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가 그려내는 결말은 그래서 희망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와 우려가 혼재되어 있다. 앞으로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생명과 안전을 위한 법률인만큼 중대재해처벌법이 우리 사회에 한줄기 단비를 내리게 하는 레인메이커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