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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희의 법과 영화 사이] 굿바이, 폰 부스

2022-05-30     데일리 편집팀
장서희 변호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겸임교수)

[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전문가 칼럼=장서희 변호사] 5월 23일, 미국 뉴욕시에서는 7번가와 50번가 모퉁이에 있던 공중전화 부스가 철거되었다. 이제 뉴욕에서는 공중전화가 완전히 사라졌다. 영화 팬들을 위해 보존해둔,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클락 켄트가 슈퍼맨으로 변신할 때 이용하던 맨하튼의 전화부스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적어도 뉴욕 안에서는 공중전화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영화 <8미리>를 연출한 조엘 슈마허의 <폰 부스>는 이러한 뉴욕의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하다. 영화는 휴대전화가 등장한 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즐겨 찾는 2002년 뉴욕의 공중전화 부스를 포착한다.

닳아빠진 홍보맨인 주인공 스투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매일 공중전화 부스에 들러 전화를 하곤 한다. 통화를 마친 스투는 공중전화 벨소리가 울리자 무심코 수화기를 든다. 전화 속 남자는 왜 스투가 폰 부스에 있는지를 비롯해서 스투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는 반면 스투는 남자가 누구인지 짐작조차도 하지 못한다. 남자는 전화를 끊으면 스투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그의 목숨을 담보삼아 인질극 아닌 인질극을 시작한다. 스투는 폰 부스에 갇힌 채 남자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협박 때문에 스투가 폰 부스에서 나오지 않자 공중전화를 쓰려던 다른 사람들과 시비가 벌어진다. 억지로 스투를 부스에서 끌어내려던 한 남자가 전화 속 남자가 쏜 총에 맞아 살해된다. 이로 인해 경찰들이 현장에 출동하게 되면서 스투는 이제 범인뿐 아니라 경찰들과도 대치하는 신세가 된다.

계속되는 협박에 따라 스투는 현장을 찾은 아내에게 자신을 미혼이라고 속이고서 팸이라는 여자에게 공중전화로 매일 전화해 유혹했던 사실을 이야기한다. 더 이상 내몰릴 곳조차 없는 스투가 결국 자신이 끝까지 숨기고 싶던 많은 것들을 아내와 팸, 경찰들, 그리고 거리를 가득 메운 낯선 사람들 앞에서 토해내면서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현장에 출동한 레미 반장은 스투가 누구와 통화하고 있는지 묻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에 레미는 스투의 통화 내용을 엿듣고자 하지만 이를 포기한 채 번호 추적을 선택한다. 아무리 수사기관이라 하더라도 타인의 통화를 감청하기 위해서는 영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통신비밀보호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에 의하지 않으면 감청을 하지 못한다. 영장에 의해서만 감청을 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또한 우리 대법원은 제3자가 전기통신의 당사자인 송신인과 수신인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전기통신 내용을 녹음하는 행위 등을 감청이라고 하면서, 만일 제3자가 통화 당사자 일방의 동의를 받고 그 통화 내용을 녹음하였다 하더라도 그 상대방의 동의가 없었다면 감청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폰 부스>의 상황에 비추어보면 감청에 대한 규정은 우리 법과 뉴욕 법이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극중 경찰이 실시간 감청에 관해 고민할 수밖에 없던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피해자스투의 동의가 있었다고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그 통화 상대방인 범인의 동의까지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폰 부스>는 탁 트인 뉴욕 맨하튼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내러티브는 오로지 폰 부스 안에서만 진행된다. 관객들은 80분 내내 가슴 조이는 폐소공포와 긴장에 시달리다가 스투가 자신을 내던지며 폰 부스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해방감과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영화의 최종 결말은 관객들을 다시금 불편하게 만드는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열린 공간의 폐소공포라는 아이러니를 창조해낸 이 영화는 이렇게 관객들을 끝까지 매료시킨다.

 ■ 장서희 변호사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를 졸업한 뒤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학사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률사무소 이헌의 대표 변호사다. 영화를 전공한 법률가로, 저서로는 '필름 느와르 리더'와 '할리우드 독점전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