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헤리티지DLS 피해자들 “분조위 100% 전액배상 결정하라”
상품설명서와 달리 투자 부동산 희소가치 없어 사기계약 주장 피해자들, 과거와 달리 금감원 분조위 미온적 태도에도 울분
[데일리한국 김병탁 기자] “속은 놈(NH투자증권)보다 속인 놈(신한금융투자)의 죄가 왜 더 가볍냐.”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 피해 투자자들이 손해배상 문제를 두고, 금융감독원의 태도 변화에 울분을 토하고 있다. 현재 금감원 내부에서는 옵티머스펀드 사태와 달리 독일 헤리티지DLS의 경우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가 아닌 ‘불완전판매’ 쪽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100% 배상은 사실상 어려워진다.
2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는 독일 헤리티지DLS 사태에 대한 투자자 배상과 관련해 이달 초 법무법인 등에 법률자문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자문 결과를 토대로 이달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위원들과 사전 간담회를 갖고, 이르면 내달 초 분조위를 열 예정이다.
독일 헤리티지DLS는 독일 정부가 문화재로 지정한 ‘기념물보존등재건물’을 고급주거시설로 개발하는 사업(리모델링)에 투자한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다. 독일 현지 시행사인 저먼프로퍼티그룹(GPG)이 개발 사업을 맡았고 싱가포르의 반자란자산운용이 운용을 담당했다.
해당상품은 지난 2017년 4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신한금융투자를 포함해 5개 증권사와 2개 은행에서 5280억원이 판매됐다. 하지만 현지 시행사인 GPG의 파산으로 인해 천문학적인 피해를 낳았다. 환매 중단 금액은 2020년 말 기준 5209억원으로, 1조원대 투자 피해를 일으킨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의환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피해자들의 경우 당시 4~5단계의 복잡한 재간접 방식의 투자를 이해하고 투자한 것이 아닌 수십년간 신뢰관계를 쌓아온 판매직원의 말만 믿고 투자했다”며 “옵티머스펀드 사태 때 처럼 ‘사기에 의한 계약취소’로 결정하지 않을 거면 분조위를 열지 마라”고 말했다.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는 계약체결 시점에 미리 알았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만큼, 중대한 사항을 숨기거나 속일 때 적용되는 법리적 해석이다. 이 경우 피해자들은 원금을 100% 돌려받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옵티머스펀드 사태 당시 옵티머스자산운용은 투자제안서의 명시된 것과 달리 투자대상인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지 않았다. 금감원 분조위는 이 사실을 근거로 NH투자증권이 피해투자자들에게 원금 전액을 반환할 것을 주문했다.
반면 불완전판매의 경우 피해자들이 100% 손해 배상을 받기 어렵다.
이의환 위원장은 “NH투자증권의 경우 본인들도 옵티머스자산운용에 속았으며, 이를 제일 먼저 금융당국에 보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분조위에서 100% 보상하라고 결정했다”며 “하지만 독일 헤리티지DLS의 경우 신한금융투자가 계획하고 설계한 OEM펀드로서 담당자들이 실사까지 했는데, 어떻게 그보다 처분이 가벼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느냐”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독일 헤리티지DLS의 경우 판매 당시부터 여러 문제점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품설명서에는 해당 투자 건물이 기념물보존등재로 등록된 건물로, 독일 내 전체 건물 중 약 3%에 해당하는 매우 희소성이 높은 투자자산이라고 설명돼 있다. 하지만 주정부에 누구나 신청하면 등록이 가능하고, 정부 차원의 제도적 혜택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현지 시행사의 경우 지난 2015년부터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부실회사로, 2017년부터는 외부 차입이 없으면 대출상환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영국에서는 허가 받지 못한 유사수신업체였으며, 싱가포르에서도 투자 경고리스트에 올랐다.
이 위원장은 “이러한 부분이 신한금융투자를 통해 사전고지 됐으면 누가 투자를 하겠냐”며 “독일 헤리티지DLS 역시 사기에 의한 계약취소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피해자들은 금감원의 달라진 태도에도 반감을 드러냈다. 김은경 금소처장(부원장)은 2020년에 임명돼, 라임자산운용 사태와 옵티머스펀드 사태 등 주요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분쟁 조정을 이끌어왔다. 분쟁 조정 과정에서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라는 법리적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뚜렷한 성과 덕분에 지난해 4명의 부원장급 중 유일하게 유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보다는 불완전판매로 분쟁조정을 이끌어가고 있다. 예컨대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의 경우 지난 6월 분조위에서 불완전판매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하나은행에 투자원금 전액이 아닌 60~80%을 손해배상으로 받을 수 있게 됐다. 독일 헤리티지DLS 경우에도 금감원 내부에서 불완전판매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의환 위원장은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사태 당시에도 금감원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우선으로 해 피해자보다는 금융사 중심으로 편향된 결정을 내렸다"며 “이러한 금감원의 원리·원칙 없는 분쟁조정 결과를 피해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