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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자식 잃은 슬픔”...통곡으로 메워진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

서울광장 합동분향소 마련...현장상담소도 운영 "정치권 서로 탓 멈춰야" 지적도

2022-10-31     이지예 기자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 사진=이지예 기자

[데일리한국 이지예 기자] “꽃다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는데 못 살린 게 한이 되고 화가 나요”

10월의 마지막 날, 매년 들뜬 분위기가 가득했던 서울에는 비통함의 눈물이 대신 채워졌다. 150여 명의 꽃다운 청춘들이 마지막 인사도 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는 추모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조문을 위해 광장을 찾은 시민들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이번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넋을 기렸다.

평소 차량이 많고 사람이 붐비는 시청역 서울광장이지만 시민들이 헌화를 위해 대기하는 줄 만큼은 더욱 무겁고 엄숙했다. 순서가 되면 국화꽃을 헌화하며 묵념을 통해 조의를 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부 시민들은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 조문 마치고도 자리를 뜨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얘들아 미안하다'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이지예 기자.

뜨거운 햇빛 아래 ‘얘들아 미안하다’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홀로 들고 앉아 현장을 지키던 이모 씨(여·60대)는 “21세기 서울 한복판에서 20대의 꽃다운 청춘들이 대거 목숨을 잃은 게 말이 되는가. 기성세대의 책임이고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너무 미안하고 통탄하는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이모 씨는 “체력이 되는데 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며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마음, 부모의 심정에서 이렇게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동작구에서 온 70대 노모는 “아들이 중학교 3학년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나 25년을 울면서 살았다. 이제야 무뎌지나 했더니 내 자식 같은 얘들이 이런 일을 당해 또 악몽이 시작됐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 모습. 사진=이지예 기자.

 

광장에서 분향소를 응시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박모 씨(여·60대) 와 신모 씨(여·50대)는 “모르는 사이지만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에 조문을 마치고도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전했다.

박 씨는 “너무 화가 난다. 경찰들이 있었으면 통제는 되지 않았겠나”라며 “어른들이 잘못으로 비슷한 사고가 반복된다”고 비통해했다.

정치권의 분열을 우려하며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신 씨는 “이런 상황에 정치권에서 서로 탓만 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한 정직한 방법이 아니다”라며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기성세대의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하고, 안전성과 교육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 사고 예방 차원의 매뉴얼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5년 후 10년 후 같은 일이 또 반복될 것”이라며 “책임 전가, 당리당략을 떠나 미래 세대와 국민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한 것 같다”면서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오던 용산구에 거주하는 오모 씨는 (여·30대) “동생 같은 친구들이 놀고 싶은 마음에 갔다가 이런 참변을 당해서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앞선 사고도 인파가 이미 예견된 사고였지 않았나. 코로나도 풀려서 사람들이 야외활동하고 싶어 하는데 정부와 정치권에서 사고 예방을 철저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분향소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 광장 주변에서 애도를 표한 시민들도 있었다. 분주한 발걸음을 멈추고 분향소를 멍하니 응시하던 시민들의 얼굴에는 먹먹함이 가득했다. 외국인 조문객도 적지 않았다.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 마련된 심리지원 현장상담소. 사진=이지예 기자.

분향소 왼편에는 이태원 심리지원 현장 상담소가 운영되고 있었다. 세 명의 상담사가 모두 상담을 진행 중이었던 만큼 심리적·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는 일반 시민들도 있는 듯했다.

이날 정치권을 비롯해 경제계, 노동계, 종교계 등 많은 사람들이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 부부, 한덕수 국무총리, 오세훈 서울시장,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윤희근 경찰청장, 박진 외교부 장관이 분향소를 방문해 추모했다.

앞서 지난 29일 밤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는 핼러윈 축제를 맞아 한꺼번에 몰린 인파 탓에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숨지는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국내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 중 최대 규모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비극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해밀턴 호텔 근처에서 쪽 인근에 있는 5m 너비, 50m 길이의 내리막길에서 일어났다.

이태원을 달궜던 환호와 함성의 열기는 오후 10시 15분쯤 순식간에 절규와 비명으로 바뀌었다. 비좁은 경사 길에 수많은 인파가 몰린 게 원인이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20대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발생 이후 11월 5일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고, 이에 따라 서울시는 이날부터 엿새 동안 서울광장에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운영키로 했다.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지예 기자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는 이날 오전 10시에 문을 열었다. 국가애도기간 동안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조문객을 받을 예정이지만 운영시간 이후에는 자율적으로 조문 가능하다.

이와 별개로 참사가 발생한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 관할 구청인 용산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녹사평역 광장에 합동분향소의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