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워 CT 찍으면 뇌혈관질환 진단...‘제2의 백내장 사태’ 우려
다른 증상이나 치료없이 가벼운 두통 및 어지러움에도 뇌혈관질환 진단
[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박재찬 기자] 지난달 60대 가정주부 김 씨는 두통과 어지러움으로 병원을 찾았고,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CT를 촬영했다. 촬영결과는 상태불명의 어지럼증 및 두통과 함께 퇴행성 뇌혈관병증 진단이다. 다른 증상이나 치료없이 뇌혈관질환 진단을 받은 것이다. 김 씨는 2008년께 뇌혈관진단비 3000만원을 가입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뇌혈관질환 진단비가 ‘제2의 백내장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두통이나 어지럼증이 있는 60대가 의료기관을 찾아 뇌 전산화단층촬영(brain CT scan)만 하면 다른 증상이나 치료없이도 뇌혈관질환 진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대형 영업조직이 뇌혈관질환 특약 집중판매에 나서자 보험사들이 이 담보에 대한 판매 자제를 요청했다.
뇌혈관질환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등 뇌의 혈관에 관련된 질병으로 한국인의 사망원인 4위인 질병이다. 뇌혈관질환의 가장 큰 원인은 고혈압과 당뇨이고 고지혈증, 흡연, 비만, 스트레스 등의 원인질환과 습관들도 발병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뇌혈관질환 특약의 경우 크게 뇌출혈, 뇌졸중, 뇌혈관질환 보장으로 나뉜다. 뇌출혈은 가장 하위의 질환이고, 뇌졸중은 뇌출혈을 함께 보장하고 있으며, 뇌혈관질환 특약에 가입할 경우 뇌졸중, 뇌출혈은 물론 뇌졸중 외의 기타 뇌혈관질환, 뇌혈관질환 후유증 등까지 모두 보장받을 수 있다.
문제는 60대 정도의 보험가입자가 가벼운 두통 및 어지럼증으로 의료기관을 찾아 CT를 촬영하면 다른 증상이나 치료과정 없이도 쉽게 뇌혈관질환 진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영업현장의 보험설계사는 “가벼운 두통과 어지러움증은 60대 이상의 고령자 소비자들에게는 흔한 일이지만, 이런 증상으로 병원을 방문해 CT를 촬영하면, 다른 증상이나 치료없이 뇌혈관질환 진단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보험소비자 박 씨는 상세불명의 뇌혈관질환 진단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로부터 부지급 통보를 받았다. 보험사는 뇌혈관질환의 확정 진단에 해당하려면 신경학적 증상이나 결손이 발생해야 하고, 실질적인 치료가 동반돼야 하는데 박 씨는 신경학적 증상이 전혀 없고, 치료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보험금 부지급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뇌혈관질환 특별약관에 따르면 뇌혈관질환의 진단확정은 의료법에 정한 병원 등 의료기관의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자에 의해 내려져야 하며 병력·신경학적 검진과 함께 뇌 전산화단층촬영(brain CT scan), 자기공명영상법(MRI), 뇌혈관조영술, 양전자방출단충술(PET), 다일광자방출 전산화 단충술(SPECT), 뇌척수액검사 등을 기초로 해야한다.
이 약관대로라면 보험기간 중 ‘뇌혈관질환’으로 진단 또는 치료를 받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화된 기록 또는 증거가 있는 경우 보험사는 보험소비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한다.
법원 역시 약관에 따라 보험소비자인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우선 법원은 보험사의 주장과 달리 약관에 뇌혈관질환 진단의 신경학적 결손이나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돼야 하거나 실질적인 치료가 동반돼야 한다고 기재돼 있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또 진단비 특약의 보험금 지급이 실질적인 치료까지 동반돼야할 필요도 없어보이는 등 뇌혈관질환 진단에 해당한다고 최종 판단했다.
보험업계는 뇌혈관질환이 ‘제2의 백내장 사태’처럼 보험금 누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실제 최근 한 대형 영업조직이 뇌혈관질환 특약 판매에 나서자 보험사에서 영업현장에 이 상품에 대한 특약 판매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뇌혈관질환은 별다른 증상없이 간단한 CT촬영만으로도 진단금을 받을 수 있는 담보로 보험사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도수치료나 백내장처럼 보험금 누수로 이어질 수 있는 질병들은 많아 보험사들도 관리하고 있지만, 허술한 약관을 이용해 의료쇼핑을 권유하는 일부 병원과 보험소비자들이 여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