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투자증권, 헤리티지펀드 전액 반환...'사적화해' 선택 배경은
업무상 배임, 다른 사모펀드 분쟁 등 고려한 듯 피해자들 "선심 쓰듯이 보상...진정성 없다"
[데일리한국 이기정 기자] 신한투자증권이 독일 헤리티지펀드 원금 전액 반환을 위해 '사적화해' 방식을 선택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은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서 권고한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가 아닌, 사적화해 방식을 통해 헤리티지 펀드 피해자들에게 투자 원금 전액을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신한투자증권은 이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에 대해 분조위에서 권고한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에 대해 법리적 이견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밝히지는 않았으나, 착오에 대해 금감원과는 다른 해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분조위는 민법 제 109조, 의사표시가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경우 취소가 가능하다는 내용에 근거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권고했다. 착오유형은 '동기의 착오'다.
동기의 착오는 의사표시가 상대방(신한투자증권)이 착오를 유발한 경우, 의사표시와 무관하게 취소가 가능한 것을 말한다. 즉, 금감원은 착오가 없었더라면 피해자들이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동기의 착오는 무역금융펀드와 옵티머스 사태에서도 적용된 논리다"라며 "보통 일반인도 같은 처지라면 계약하지 않았을 정도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신한투자증권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업무상 배임 우려를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분조위의 권고안이 법적 근거가 부족해 향후 주주들로부터 경영진이 업무상 배임을 지적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분조위의 권고 수용이 업무상 배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금융투자업규정에 따르면 분쟁조정이나 재판상의 화해절차에 따라 손실·손해를 배상하는 행위는 배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시민단체들도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는 것은 업무상 배임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신한투자증권이 향후 다른 사모펀드 분쟁에서 불리한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사적화해를 선택한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신한 피델리스펀드와 젠투펀드, 팝펀드 등 다른 사모펀드 분쟁이 끝나지 않았다.
전문투자자 배상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신한투자증권은 일반투자자 100% 원금 반환과 함께 전문투자자들에게 80% 이상의 사적 화해를 제시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에 반발해 전문투자자들이 민사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앞선 분조위 권고안에는 일반 피해자들만 포함된다.
만약 신한투자증권이 헤리티지펀드 판매 과정에서의 착오를 인정하게 되면, 성격이 유사한 다른 사모펀드의 분쟁 과정이나 전문투자자들과의 소송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신한투자증권이 권고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는 판매액이 가장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신한금융지주 내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만큼, 불확실한 결정에 부담이 따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는 별개로 헤리티지펀드 피해자들은 신한투자증권이 진정성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피해자를 위하는 척 하지만, 결국 본인들은 잘못이 없고 금감원의 눈치가 보여 억지로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다.
이의환 전국 사모펀드 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금감원의 권고가 아닌 피해자들을 위한 선택이라면 왜 금감원이 권고안을 내릴 때까지 기다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그 4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은 어떡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신한투자증권은 주요 경영진이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마치 선심을 쓰듯이 피해금을 반환하겠다는 것은 피해자들을 우롱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의미를 담아 원금을 전부 반환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라며 "전문투자자들 배상 비율의 차등을 둔 것은 전문투자자들이 일반 피해자들보다 더 많은 정보와 자원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독일헤리티지펀드의 증권사별 판매 금액은 신한투자증권 3907억원, NH투자증권 243억원, 현대차증권 124억원, SK증권 105억원 등이다. 현대차증권과 SK증권은 분조위 권고를 수용했고, NH투자증권은 사적 합의 방식을 통해 원금 전액을 환불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