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도청' 논란 일파만파…尹 지지율 반등 노린 대통령실 '진땀'
野 이어 與서도 지적 잇따라…하태경 "美에 강력 항의" 전문가들 "한미 관계 중시했던 尹정부에 '악재'될 것"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악재’가 터졌다. 미국 정보기관이 대통령실 고위 관리를 도청한 정황이 외신 보도를 통해 제기된 까닭이다. 대통령실은 사실관계 확인이 먼저라면서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 정부의 미온적 대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쇄도하고 있어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지지율 반등을 모색했던 대통령실은 진땀을 빼는 모양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면서 "양국의 상황 파악이 끝나면 우리는 필요에 따라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과정은 한미 동맹 간에 형성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질 것"이라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을 과장하거나 왜곡해 동맹을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면 많은 국민에게 저항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야권을 겨냥한 발언으로 읽힌다. 더불어민주당은 도청 방지 시스템도 갖추지 않은 채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낸 4성 장군 출신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실이 청와대보다 도·감청에 취약하다고 주장,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가깝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와 관련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늘 귀를 열고 있다. 합당한 주장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번에는 사실과 다른 것이 많다"면서 "보안과 관련한 문제는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할 때부터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또한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정기적으로 점검이 이뤄지고 있으며 그동안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오히려 청와대 시절의 벙커 구조물은 반쯤 지상으로 돌출돼 있어 대통령실의 보안과 안보가 용산보다 훨씬 더 탄탄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최근 온라인에 미국 기밀로 보이는 다수의 문건이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해당 문건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것이다. 이 문건에는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등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우회 지원을 논의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뒤집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 野 이어 與서도 지적 잇따라…하태경 "美에 강력 항의해야"
대통령실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라는 입장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정부의 안이한 대처에 강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야권은 이번 일을 ‘안보 참사’라고 규정하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일국의 대통령실이 도청에 뚫린다는 것도 황당무계한 일이지만, 동맹국의 대통령 집무실을 도청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같은날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상무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미국의 불법 도·감청은 대한민국에 대한 심대한 주권 침해를 버젓이 자행한 중대 사태"라며 "마땅히 우리 정부는 즉각 미국 정부를 향해 이와 관련한 사실 규명과 사과,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도 ‘따질 것은 따지고 사과를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전반기 정보위원회 국민의힘 간사를 맡았던 하태경 의원은 이날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미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해야 한다”며 “물론 정보기관은 자기 편, 다른 편 이런 것 없이 모든 정보를 다 수집한다. 하지만 그 행위에 대해서 우린 주권 국가이기 때문에 그 나라가 누구든 간에 따질 건 따지고 사과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도 이날 YTN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도·감청 사실이 있으면 국가적으로 우리 한국 정부는 유감을 표명하고 진상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며 “미국에 강력히 요구하는 게 주권 국가의 입장 아니겠냐. 외교라는 것은 서로 간에 주고받을 수 있지만 지켜야 할 것은 꼭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尹 지지율 상승 한 대통령실, 뜻하지 않은 악재 만나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통해 지지율 반등을 모색하고자 했던 대통령실은 뜻하지 않은 ‘외교 악재’에 당혹스러워하는 모양새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자격으로 찾는 것은 12년 만인 데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 국빈 방문이라는 점 등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후폭풍과 주69시간제 등 노동 정책에 대한 논란 등으로 30%대 박스권에 갇혀 좀처럼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미국의 도·감청 의혹이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사실관계를 조금 더 파악해야겠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얼마나 잘 지냈나. 이번 문제(도·감청은)는 우리 정부와 윤 대통령의 리더십을 아주 무시하는 처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식으로 외교 관계를 이어간다면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거나 승리하긴 어렵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윤석열 정부의 특성상 대미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이번 문제는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방안에 이어 이번 문제도 '협의하겠다'는 식으로 마무리 짓는다면 윤석열 정부에 있어 악재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