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주도권 잡을까
무음극 기술로 수명 문제 해결…2027년 양산 목표
[데일리한국 김정우 기자] 배터리 안전성과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이 한창인 가운데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삼성SDI가 차세대 배터리 시장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이달부터 수원 연구소 내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인 ‘S라인’을 가동하고 시제품 샘플 생산을 시작했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양산 목표 시점을 2027년으로 잡고 올 하반기 시제품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혀왔다.
삼성SDI는 지난해 3월 국내 배터리 제조사 중 처음으로 수원 연구소 내에 6500㎡ 규모의 전고체 배터리 생산 파일럿 라인을 착공했다. 파일럿 라인은 기존 연구개발(R&D) 차원의 소규모 생산에서 자동화 설비를 통한 시험 생산으로의 확대를 위한 것으로, 이후 단계적으로 생산 규모를 키우면서 양산성에 대한 시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앞서 지난 2월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SDI 전고체 배터리 시험생산 라인을 방문해 개발 현황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전기차 등 관련 시장 확대에 따라 차세대 배터리 기술 선점을 통한 미래 먹거리 확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도 이달 1일 53주년 창립기념일을 맞아 전고체 배터리를 비롯한 ‘초격차 기술’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사장은 앞서 지난달 29일 열린 창립기념식에서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 구축 완료를 알리며 “올해 삼성SDI의 비전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접어 들었다”고 평가했다.
현행 리튬이온배터리는 크게 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질 4대 구성 요소로 이뤄지는데 양극과 음극 사이를 리튬이온이 이동하면서 전기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양극과 음극 사이에 안전을 위해 접촉을 막아주는 분리막이 있고 액체 전해질이 채워져 있는데 이 전해질을 고체로 바꾼 것이 전고체 배터리다.
고체 특성에 따라 분리막이 따로 필요 없고 외부 충격이나 온도 변화 등 상황에서도 형태 유지가 가능해 상대적으로 화재·폭발 등 위험에 대한 안전성이 높다.
또한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배터리의 안전성 관련 부품을 줄일 수 있는 공간 활용성 덕분에 용량을 키우고 더 높은 에너지밀도를 구현, 전기차 등에 적용 시 주행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리는 것이 가능해 가장 유력한 차세대 배터리 형태로 꼽힌다.
전고체 배터리는 구성 물질에 따라 황화물계, 산화물계, 고분자(폴리머)계로 구분되는데 삼성SDI는 가장 성능 효율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독자 조성의 고체 전해질 소재와 혁신 소재 기술로 ‘무음극 기술’로 해결 과제 중 하나인 수명을 개선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실제 전기차 시장 등에서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높은 생산 단가를 낮춰야 한다.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의 경우 공정상 유독가스인 황화수소가 발생하는 등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사용할수록 음극 표면에 리튬 결정이 생성되는 ‘덴드라이트’ 현상 억제도 난제로 꼽혀왔는데 삼성SDI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음극 기술을 적용했다.
많은 배터리·완성차 업계가 경쟁적으로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이 같은 문제들 때문에 실제 상용화 시점은 2030년 이후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상대적으로 기술 난도가 낮은 고분자 전고체 배터리를 2026년부터 우선적으로 생산할 계획이며 황화물계 양산 시점은 2030년 이후로 보고 있다. SK온은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SDI의 2027년 양산 목표는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 표현으로 읽힌다. 실제 전기차 시장에서 상용화가 이뤄져도 고가·고성능의 프리미엄 차량에 우선적으로 적용되고 볼륨 판매 모델에는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기존 리튬이온배터리가 탑재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의 고부가 시장 선점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2035년 전고체 배터리 점유율이 10∼13%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SDI의 가장 큰 경쟁자로는 일본 토요타자동차가 꼽힌다. 최근 토요타는 기술설명회를 통해 소재 기술을 통해 전고체 배터리의 내구성 문제를 극복했다며 2027~2028년 전고체 배터리 적용 전기차를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토요타가 제시한 전고체 배터리의 성능은 전기차 주행거리 1200㎞를 제공하며 충전 시간은 10분 이하에 불과하다. 토요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를 보유한 기업이기도 하다.
토요타 외에도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들은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를 다수 확보하고 있으며 국내 배터리 기업 중에는 삼성SDI가 가장 많은 특허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경쟁상대인 중국 기업들의 관련 기술 개발은 아직 시작 단계인 만큼 향후 전고체 배터리 시장에서는 한·일 기술 경쟁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민간과 함께 20조원을 차세대 배터리 분야에 투자해 전고체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일본 정부도 배터리 산업 육성 지원을 위해 3300억엔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