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친환경‧스마트 기술력의 산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가보니...
[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안병용 기자] 지난 6월 이후 경남 거제시는 도심과 해안을 가릴 것 없이 한화그룹을 상징하는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490만㎡(약 150만평) 광활한 부지에 자리 잡은 대우조선해양이 한화오션으로 변모한 시기다. 이때부터 거제는 육군과 공군 부문에 강점을 가진 한화가 가져올 사업 여파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난 27일 거제에 다다랐을 때 오렌지색 바탕에 흰 글자로 ‘Hanwha’ 영문 이니셜이 선명하게 새겨진 커다란 해상 크레인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선 해군까지 포괄한 한화의 포트폴리오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화가 꿈꾸는 ‘한국판 록히드마틴’ 구상의 핵심인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다다랐음을 실감한 순간이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주인 없는 회사’에서 근무한다는 설움이 2만여 명의 한화오션 임직원들을 북받치게 했었다. 그러던 회사 관계자들이 그룹으로부터 전폭적인 투자 지원을 약속받은 이젠 웃을 수 있다.
한화에 인수된 이후 처음으로 사업장을 언론에 모습을 공개하던 이날도 그랬다. 선박 건조부터 엔진 제작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육·해·공 통합 라인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방산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그룹의 비전에 힘을 얻은 듯한 자신감이 엿보였다.
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총괄(사장)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짓고 “수출과 고용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산업의 역군들이 만들어가는 장관(壯觀)에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거제사업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장면은 작업복을 입고 자전거로 분주하게 오가는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다른 조선소의 근로자들이 주로 오토바이나 사륜차를 이용해 속도감 있게 이동하는 경우와 판이했다. 심지어 거제사업장에선 자전거를 타지 않고 끌고 걸어 다니는 직원들도 흔했다.
회사 측 관계자는 “사업장 내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안전이다. 이동 속도를 늦춰 교통사고를 예방한다”면서 “걸어 다니며 건강을 챙기는 건 덤”이라고 귀띔했다.
거제사업장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추구하는 전략은 ‘스마트 조선소’로의 경쟁력 확보다. ‘사람’과 ‘경험’ 중심의 생산에서 ‘데이터’와 ‘로봇’ 기반의 디지털 및 자동화 방식으로 전환하는 스마트 야드를 구축해 사업장의 안전성을 제고하고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숙련직 생산 인원 감소에도 대처하겠다는 전략이다.
생산성 향상의 최전선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곳은 지난 2021년 조선업계 최초로 설립된 ‘디지털 생산센터’다. 이곳은 육지에서 건조 중인 블록 위치와 생산공정 정보, 바다 위의 시운전 중인 선박상태 등에 대한 문제점을 엔지니어들이 원격으로 진단해 실시간으로 해결책을 내놓는다. 공항의 관제탑과 같은 개념이다.
조선소의 생산 현장에서 많이 이뤄지는 작업 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분야는 용접과 도장이다. 이들 공정에 대해서도 한화오션은 ‘자동화’와 ‘지능화’를 꾀한다. 현재 주요 공정에서 활용하는 로봇만 해도 총 10여 개 분야에서 80여 개에 이른다.
회사 관계자는 “생산 현장 자동화율을 70%까지 달성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최근 조선업계에는 ‘친환경’ 바람이 분다. 한화오션도 글로벌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친환경 선박기술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 중이다. 실제 거제사업장 1도크에서는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4척을 동시에 건조하며 친환경 기술의 요람으로 키워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화오션은 LNG운반선 분야의 기술 패권 경쟁에 우위를 점한 기업이다. 전 세계에서 운항되고 있는 LNG운반선 4척 중 1척이 한화오션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졌을 정도다. 이 같은 기술력의 근간은 업계 최초로 설립한 ‘에너지시스템 실험센터’와 ‘슬로싱 연구센터’에서 비롯된다.
거제사업장에서 가장 먼저 찾은 에너지시스템 실험센터에선 LNG의 재액화 또는 재기화 시스템, 암모니아를 연료로 공급하는 시스템, 암모니아를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시스템, 액체 이산화탄소 화물을 관리하는 시스템 등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었다.
재액화장치 기술은 LNG운반선뿐만 아니라 컨테이너선, 초대형원유운반선에도 적용됐다. 특히 이날 승선한 초대형원유운반선 ‘EAGLE VENTURA’(이글 벤츄라)호는 기존선박유와 LNG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고압 이중연료 추진엔진(ME-GI 엔진)과 고망간강을 사용한 연료탱크가 적용된 세계 최초의 유조선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이글 벤츄라는 기름 탱크가 15개로 30만톤이 주입 가능하다”면서 “이는 부산시민 330만명을 태울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슬로싱’(Sloshing) 현상 연구도 한화오션의 친환경 기술에 예외가 아니다. 선박으로 화물을 운반할 때 액체가 선박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는 현상을 슬로싱이라고 하는데 LNG와 같은 극저온의 화물이나 암모니아와 같이 독성을 함유하고 있는 액체가 화물탱크를 깨뜨리고 유출된다면 주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모형탱크 실험이 가능한 슬로싱 모션 플랫폼을 2기 구비한 슬로싱 연구센터에선 무인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 24시간 실험이 이뤄지고 있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도착한 김해공항 국내선 청사 입구에는 택시 기사 서너 명이 삼삼오오 담배를 태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역의 경제 사정은 택시 기사가 가장 잘 안다는 말이 생각났다. 한 택시 기사가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최근 거제 분위기를 전했다.
“조선업이 불황을 겪다가도 제때 수주를 받기 시작하면 또 무섭게 살아난다 아이요. 대기업이 촌동네에 진출했으니 거제 경제에 큰 도움이 될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