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전된 내용 없는 '반도체법‧IRA'…재계는 자구책 마련 분주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길에 동행한 경제사절단은 구성 당시부터 떠들썩했다. 122명으로 현 정부 출범 뒤 최대 규모였을 뿐만 아니라 2003년 이후 4대 그룹 총수와 6대 경제단체장이 20년 만에 모두 참여한 데 따른 화젯거리였다. 풀어내야 할 통상 현안도 적잖았던 만큼 재계는 경제사절단이 예상보다 큰 선물 보따리를 받아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내심 가진 터였다.
2일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윤 대통령의 방미 행보와 관련한 경제사절단의 성과에 대해 “딱 예상한 만큼이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특히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개정이 원론적인 협의에 그치자 아쉬움을 표했다.
IRA는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액공제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미 정부가 발표한 보조금 지급 대상에 현대차·기아 차량이 모두 제외됐다. 우리나라 자동차업계는 보조금 지급 기본 요건을 당장 맞추기 어렵다며 IRA 시행 유예를 미 측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자동차업계의 독소조항인 IRA가 양국 간 추가 협의로 넘어간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좀처럼 해법이 마련되지 않자 기업들은 스스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현대차와 SK온은 북미 합작법인(JV)을 설립하며 IRA 대응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전기차 보조금과 생산 세액공제를 취하기 위한 기업 간 협력이다.
반도체법도 마찬가지다. 최근 반도체 기업들의 가장 큰 경영 악재는 반도체법의 가드레일 조항,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규제 등 해외발 리스크다. 가뜩이나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터라 반도체 기업들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숨통이 트일 수 있는 방안이 발표되길 기대했다.
하지만 양국 정상의 공동성명에 따르면 반도체법 역시 ‘지속적인 긴밀한 협의’ 언급에 그쳤다. 관련 업계가 실감할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다만 미 정부가 반도체법에 따라 설립하는 국가반도체기술센터(NSTC)의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성과로 꼽힌다.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미국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한국 기업들에게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한미가 반도체 포럼을 신설하기로 한 것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반가워할 소식이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정상 간에 이미 IRA나 반도체법 관련 한국 기업의 부담과 확실성을 줄여준다는 방향성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를 했다”며 “양국 상무부나 부처 간에 실무 협의를 통해 기업들의 부담이나 불확실성을 줄이는 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맞서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