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매년 'VOC(Voice of customer)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고객의 목소리를 기업 경영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기업 경영의 한해 향방을 엿볼 수 있는 신년사에서도 조 회장은 “고객의 소리, VOC를 경청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출발점”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관찰됐다. 조 회장은 어쩌다 VOC를 기업 성장의 나침반으로 삼는 경영철학을 갖게 됐을까.
◇ VOC 경영
조 회장의 학창시절에서 VOC 경영활동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정치학도다.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데 이어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대학원에서도 정치학을 공부해 석사를 취득했다. 20대 시절 내내 정치인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인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공부한 것이다.
장자 승계의 원칙이 뚜렷한 집안에서 태어난 정치학도가 경제인으로 커리어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고객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자연스레 터득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사회에 뛰어들어 일본 미쓰비시 상사와 미국 모건 스탠리 등에서 근무하며 글로벌 감각을 쌓던 조 회장은 1997년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한 효성에서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키웠다. 전략본부에서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 등을 역임하며 그룹의 굵직한 사업방향을 임원 입장에서 설정해 보는 등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았다.
2005년 무역PG장을 시작으로 본격 영업에 뛰어든 조 회장은 2007년 섬유PG장, 20011년 전략본부장을 거쳐 드디어 2017년 회장에 올랐다.
조 회장은 취임 뒤 선제적 투자로 핵심 사업부문의 초격차를 확대하고, 탄소섬유·아라미드 등 첨단소재 분야와 수소 등 미래 에너지 분야에서 신사업을 육성하며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다 올해 초 산업계에서 처음으로 VOC 경영을 발전시킨 ‘고객몰입 경영’을 선포했다. 고객 최우선주의를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한발 더 나아가 공표한 것이다. 단순히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세를 넘어 고객이 원하는 바람을 한발 더 빠르게 제공하겠다는 혁신이 담겼다.
◇ ESG 경영
이를 위해 조 회장은 VOC 경영을 재계의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접목했다. 특히 친환경에 집중한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소재 3사(효성티앤씨·효성첨단소재·효성화학)가 핵심이다.
특히 효성티앤씨는 친환경 경영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평가다. 2007년 전 세계 최초로 친환경 나이론 섬유를 개발하며 주목을 받은 기업이다.
효성티앤씨는 2008년 갖가지 친환경 기술을 공개하며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떠올랐다. 국내 최초로 친환경 폴리에스터 섬유를 선보인 데 이어 세계 최초로 글로벌 리사이클 표준 인증(GRS)을 획득하기도 했다.
또한 페트병을 재활용해 개발한 폴리에스터 원사 ‘리젠(regen)’을 활용해 친환경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리젠은 옥수수 추출물로 만든 세계 최초의 바이오 섬유 ‘크레오라 바이오베이스드’와 함께 대표적인 친환경 제품으로 꼽힌다. 2020년에는 섬유 생산단계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100% 재생해 만드는 재활용 스판덱스 ‘크레오라 리젠’을 론칭하기도 했다.
효성티앤씨는 지자체에서 수거한 페트병을 ‘리젠서울’, ‘리젠제주’, ‘리젠오션’ 등의 섬유로 재활용해 자원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리젠 프로젝트’를 추진, 리사이클 섬유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효성첨단소재는 자체기술로 개발한 탄소섬유를 항공기, 자동차, 에너지, 건축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하고 있다. 강철보다 강도가 10배 강하면서도 무게는 4분의 1에 불과해 경량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효성은 오는 2028년까지 약 1조원을 투자해 전주 탄소섬유 공장을 연산 2만4000톤까지 늘릴 예정이다.
효성화학은 친환경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폴리케톤’으로 탄소저감에 기여한다. 2013년 세계 최초 독자기술을 바탕으로 폴리케톤의 상용화 기술개발에 성공했다. 폴리케톤 1톤을 생산할 때마다 일산화탄소를 약 0.5톤 줄일 수 있다.
효성중공업은 수소충전시스템과 액화수소 사업에 집중한다. 효성중공업이 만든 수소충전소는 700바(bar)급 규모로 3~5분 안에 충전이 가능하다. 시간당 수소차 5대 이상을 충전할 수 있다. 세계적 가스·엔지니어링 기업인 린데그룹과 함께 올해까지 액화수소 생산, 운송 및 충전시설 설치와 운영을 망라하는 밸류체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조 회장은 사업 보강과 신규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경기가 급속히 얼어붙은 2020년 말 효성티앤씨의 터키와 브라질 스판덱스 공장에 각각 2만5000톤과 1만톤의 증설을 결정했다. 또 중국 닝샤 인촨시 닝동 공업 단지에도 연간 3만6000톤 생산이 가능한 스판덱스 공장과 제반 설비 투자를 이어갔다.
2018년에는 베트남 광남성에 효성첨단소재 타이어 코드 공장을 증설하면서 2020년까지 45%였던 시장점유율을 51%까지 끌어올렸다. 2019년에는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초고압 변압기 공장을 인수해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춰 효성중공업의 수익성을 대폭 개선했다.
◇ 스포츠맨십 경영
조 회장은 한 때 운동선수를 꿈꿨다. 어렸을 때부터 야구와 축구 등 구기 종목의 운동들을 주로 섭렵했다. 미국 세인트폴 고교 유학시절에는 야구팀 주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효성에 입사한 뒤에도 직장인 야구단을 만들어 경기에 참가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페어플레이 정신이 뿌리 깊게 몸에 배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덕분에 페이플레이 정신은 가치관으로 자리 잡은지도 오래됐다고 한다.
조 회장이 야구를 경영 활동에 반영한 일화도 있다. 2019년 조 회장은 야구광으로 알려진 멕시코 대통령을 만나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던 추신수 선수의 싸인이 새겨진 야구 배트를 선물했다.
조 회장은 함께 야구 이야기를 하며 효성에 대한 호감을 얻어냈고 결국 사업 협력도 이끌어 냈다. 효성TNS는 멕시코의 대형 복지정책인 ‘Rural ATM(현금지급기) 프로젝트’에서 ATM을 전량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재계에서 조 회장은 ‘야구경영자’로 회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