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배터리법’ 재활용 규제에도 K-배터리 이상무
2023-06-19 김정우 기자
[데일리한국 김정우 기자] 유럽 시장에서 배터리 원료 재활용 의무화를 골자로 한 ‘지속가능한 배터리법(이하 배터리법)’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현지 시장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 미칠 영향에 이목이 쏠린다. 정부와 업계는 제도 변화에 긴밀히 대응해 온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현지시간) 유럽의회는 본회의에서 배터리 설계에서 생산, 폐배터리 관리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담은 배터리법을 승인했다.
행정부 격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020년 12월 초안을 발의한 지 약 3년 만이다. 이날 의회 승인에 따라 배터리법은 남은 형식적 절차인 EU 이사회 승인과 관보 게재를 거쳐 발효될 예정이다.
배터리법 골자는 폐배터리 재활용이다. EU 시장에서 판매되는 업계 전반의 배터리 생애주기를 관리하고 친환경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 등에 따라 향후 폐배터리 급증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오염 등을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됐다.
이에 EU는 법 발효 시점을 기준으로 8년 뒤부터 역내에서 새로운 배터리 생산 시 핵심 원자재의 재활용을 의무화한다. 법 발효에 앞서 이사회 승인만 남겨둔 만큼 재활용 의무화 적용 시점은 2031년이 유력하다.
원자재별 재활용 의무화 비율은 시행 8년 뒤 기준 코발트 16%, 리튬 6%, 납 85%, 니켈 6% 등이다. 시행 13년 뒤에는 코발트 26%, 리튬 12%, 납 85%, 니켈 15%로 의무 비율이 높아진다.
아울러 폐배터리 재활용 장려를 위해 2027년까지 폐배터리에 있는 리튬의 50%, 코발트·구리·납·니켈은 각각 90%씩 의무적으로 수거하도록 규정했다. 2031년에는 리튬은 80%, 코발트·구리·납·니켈은 95%로 수거 의무 비율이 확대된다.
휴대용 폐배터리의 경우 당장 올해 45% 수거 의무가 적용되며 2030년까지 73%로 단계적 확대한다.
생산 공정에 대한 규정도 강화된다. 전기차 배터리, 전기자전거와 같은 경량 운송수단(LMT) 배터리 등은 생산·소비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의미하는 ‘탄소 발자국’ 신고가 의무화된다. 휴대전화 등 휴대용 배터리는 소비자들이 쉽게 분리하고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전기차·LMT 배터리와 2kWh 이상 산업용 배터리는 각각의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디지털 배터리 여권’이 도입된다. 아울러 중소기업을 제외하고 모든 역내 관련 업계에 대한 공급망 실사 규정도 적용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유럽 현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배터리법 시행의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업계는 그간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선제적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등 준비해온 만큼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중국 코발트 생산 기업 화유코발트와 폐배터리 합작 법인을 설립했으며 모회사 LG화학과 북미 최대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라이사이클에 약 600억원 지분 투자를 단행, 10년간 2만t의 재활용 니켈을 공급받기로 했다.
삼성SDI는 국내 재활용 업체 성일하이텍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천안·울산 공장에서 발생하는 불량품 또는 폐기물을 회수해 원자재를 추출, 재활용하는 체제를 운영 중이다. 아울러 원자재 회수율 향상, 저비용 친환경 소재 회수 기술 등을 개발하기 위한 리사이클 연구 랩도 설치했다.
SK온은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통해 폐배터리 사업에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폐배터리로부터 리튬·망간·코발트·니켈 등 광물 회수를 위한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또 지난해 성일하이텍과 국내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2025년 상업공장 가동을 추진하고 있다.
배터리 원재료 채굴부터 재활용까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배터리 여권 도입에도 대응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해당 제도를 제시한 글로벌 배터리 얼라이언스(GBA) 회원사며 삼성SDI는 GBA 회원사는 아니지만 관련 파일럿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우리 정부도 낙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5일 “EU 배터리법에는 특정 기업에 차별적으로 적용되거나 우리 기업에만 불리하게 작용하는 조항은 없다”며 우리 기업의 EU 내 지위가 흔들릴 가능성은 없다고 전망했다.
산업부는 오히려 EU 배터리법 통과가 국내 배터리 업계의 친환경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른 공급망 선제 정비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구체적인 이행 방법 등을 담은 10개 이상의 하위 법령이 2024∼2028년 제정되는 만큼 실제 법 적용까지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봤다.
그간 정부는 EU통상현안대책단을 중심으로 업계와 EU 배터리법 대응을 추진했다. 정부 간 협의 채널, 민·관 합동 출장단 등을 통해 우리 기업의 EU 내 영업 활동에 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법과 하위 법령을 제정해줄 것을 EU 측에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정부는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해 관련 제도 마련 등 노력을 지속하고 배터리 재활용 공급망 구축·기술 개발 등 지원을 추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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