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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민의 에너지산책] 전력시장에서 전력피크 절감 열일한 태양광

2023년 비계량태양광으로 인한 수요차감 7GW 중앙집중식 전력공급 개편 한계...PPA실행으로 이미 시작

2023-09-30     안희민 기자
산업부가 지난 9월 19일 '올여름 원전 최대 가동으로 전력수급 안정화'라는 보도자료에 실린 비계량태양광 관련 데이터. 자료=산업부 제공 

[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안희민 기자] 2023년 통계에 잡히지 않는 태양광 전력은 7GW로 추산됐다. 전력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자체소비되기 때문에 기존 전력계통에 부담되지 않는 전력이다. 필요한 전력을 직접 생산해 사용하는 시대가 시나브로 열리고 있다. 

30일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 8월 7일 오후 5시 전력수요 피크는 여름철 사상 최대치인 93.6GW를 기록했는데, 전년 대비 증가한 원전과 태양광에 힘입어 전력수요를 충당할 수 있었다. 특히 전력수요 피크시 원전의 기여도는 23.4%, 태양광은 2.7%로 단연 원전 기여도가 높았다. 태양광의 기여도가 낮은 것은 전력수요의 변동성 때문이라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산업부의 이같은 설명은 윤석열 정부 들어 심화된 원전 중심 정책과 연결돼 있다. 이면엔 기존 전력시장과 원자력 중심의 중앙집중식 전력수급체계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도 담겼다. 

한국의 전력시장 형태는 변동비반영(CBP)시장이다. 다음날 전력수요를 예측한 뒤 당일 발전기가 생산하는 전력 중 가격이 가장 싼 전력부터 사들여 수요를 충당하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전력계통에 발전기를 물린다’고 표현한다. 

산업부에 따르면 현재 전력가격이 가장 싼 발전원은 원전이다. 다음으로 석탄, LNG 발전 순이다. 태양광은 현행 법령상 생산된 전력을 무조건 구입해 CBP 시장에 포함되지 않았다. CBP 시장 체제에선 원전이 효자이며, 태양광은 불효자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정비를 마치고 전력시장에 복귀한 원전에 대해 산업부는 “올여름 원전 최대가동으로 전력수급 안정화를 이뤘다”며 환영의 뜻을 표하기도 한다. 태양광에 대해선 “태양광 비중이 커지며 전력수요의 변동성도 높아졌다”며 불만을 표하고 있다. 

실제로 태양광 발전이 늘면서 전력시장에서 전력수요 피크 발생 시간도 달라졌다. 

태양광 발전소가 많지 않을 때는 전력시장(원전·석탄·LNG발전)의 전력피크는 오후 3시경 발생한다. 하지만 태양광 발전소가 늘면서 원전·석탄·LNG발전을 사용하는 전력피크는 오후 5시로 이동했다. 낮 시간대에는 원전·석탄·LNG발전 대신 태양광 전력을 사용하다가, 오후 5시께 태양광이 사그러지면서 다시 원전·석탄·LNG발전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산업부가 불만인 것은 태양광의 변동성 때문에 맑은 날엔 전력피크가 오후 5시에 형성되고, 흐린 날에는 종전대로 오후 3시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요컨대 날씨에 따라 전력시장을 운영하는 루틴(routine)이 달려지기 때문에 태양광의 확대를 반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현행 CBP 시장제도를 전제로 하는 논리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태양광은 신규 전력망을 건설하지 않아도 되고, 새로운 방식의 전력수급을 견인하는 선구자가 될 수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전력소비자들의 총수요에 기반한 전력피크는 100.8GW이다. 그런데 전력시장에서 나타난 전력피크는 93.6GW이다. 이 차이는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해 소비하는 태양광(비계량태양광)이 메꾸고 있다. 

만약 비계량태양광이 없다면 총수요 전력피크인 100.8GW에 달하는 전력량을 감당할 수 있는 송배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비계량태양광 덕분에 한전은 93.6GW에 대응하는 송변전선 설비만 구비해도 되는 것이다. 즉 비계량태양광 발전은 한전의 송배전사업부문에 설치·유지비용을 줄여주는 효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경남 창원의 스마트산단. 주차장에 태양광발전설비가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 생산하는 전력을 자체적으로 소비한다면 한전 송배전망 설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사진=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산업부에 따르면 2022년 태양광 피크가 1GW였지만 올해는 2.5GW로 크게 늘었다. 전력거래소 입장에선 태양광 변동성에 대응하느라 부산하겠지만, 한전 입장에서는 비계량태양광 덕분에 종전 송배전망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전력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비계량태양광은 향후 늘어날 전망이다. 제도적으로 직접PPA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직접PPA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소비자가 전력을 직접 거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한전의 송배전망 부담은 줄어든다.

비계량태양광에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한다면 오후 5시에 형성된 전력시장에서의 전력피크도 완화할 수 있다. 전력시장에서 ESS는 보조서비스(Ancillary Service) 중의 하나다. 비록 화재사고로 인해 이미지가 실추됐지만,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살리면 기존 CBP 시장의 어려움도 보완할 수 있다. 

이미 태양광과 ESS를 연동해 전력계통의 부담을 줄이는 서비스가 다수 등장해 활용되고 있는만큼 이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해줌, 인코어드, 에이치에너지, 그리드위즈는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뚝심있는 기업들이다. 

비계량태양광의 확산은 현행 CBP 시장 중심의 전력거래 관행을 바꿀 수 있다.

직접PPA 제도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면 굳이 CBP 시장을 통해 전력을 거래하지 않아도 되고 동시에 원전, 석탄발전, LNG발전기가 생산한 전력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한국에선 RE100 등으로 재생에너지가 생산한 전력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특히 한국의 일조량이 평균 6.6시간으로 신재생에너지 선진국인 독일보다 태양광발전 환경이 뛰어나다.

그래서 전력수급체계를 원자력에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중심축을 재편성하는 일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전력 수급에 있어 원자력 일방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