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T가 이권카르텔 흑역사 청산하려면 정치와 헤어져야
[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안병용 기자] 2000년 KT가 우리나라 시가총액 1위를 꿰차던 시절의 기억이 이젠 아득하다. KT는 한국서 월드컵을 치르던 해에 첫 발을 내딛은 민영화 이후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현재 시총 40위권에 머물고 있는 회사의 모습을 보고 이사회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주가가 저평가 돼 있으니 가장 먼저 주주들의 원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정권만 바뀌면 주주들이 엄연히 있는 민간회사의 CEO 교체에 정부가 간섭하려 드니 투자자들도 신경이 쓰일 것이다.
CEO가 장기 집권도 하지 못하고, 후계자도 입맛대로 고르지 못하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화법을 빌리자면 ‘이러려고 민영화를 했나’ 자괴감에 빠질 만하다.
그렇지만 공기업이 아닌데도 공기업 취급을 받는 데 대해 딱히 억울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 통신 역사가 KT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공성을 띠는 기업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1980~1990년대 너나할 것 없이 KT 전신인 한국통신을 전화국처럼 생각하던 공기업 시절에도, 2002년 민영화가 돼 사명감과 책임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민간기업이 된 이후에도 국가기간통신사로 묵묵히 임무를 다하고 있지 않았던가.
다만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게 찜찜하다. 경영권을 확실하게 장악한 지배주주가 없다보니 CEO들이 정치권으로부터 집요하게 물어뜯기는 잔혹사가 툭하면 터진다.
3년 만에 돌아온 이번 KT 대표 선거도 그렇다. 공복(公僕)이 욕심내선 안 될 경영권인데 불쑥 고개를 내밀어 낙하산을 꽂으려 사장도, 사외이사도 다그치는 일부 선량(選良)들의 행태는 양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민주적 질서를 전복시키려는 추악성에 반기를 들고 대표 후보자를 지키려 똘똘 뭉친 KT의 소액수주들을 볼 낯이 없을 지경이다. 반관반민(半官半民) 시절이 20년을 넘었는데도 정치권의 사냥감 꼴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목도하는 KT 직원들의 심정이 어떨지는 불 보듯 뻔하다.
국민들이 유선전화기 1대를 개통할 때마다 맡긴 25만원의 보증금을 기반으로 성장한 국민기업이 이권 카르텔로 점철된 흑역사를 청산하려면 정치와 헤어질 굳은 결심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정치공학을 계속 바라봐야 할 이유가 더는 KT 장삼이사들에겐 없다.
KT 정관에 명시된 CEO 선출 기준인 ‘경영·경제 지식, 기업 경영 경험, 정보통신 분야 지식’ 잣대를 눈치 보지 않고 적용만 잘하면 전문성 없는 정치인들이 느닷없이 이력서를 내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윤경림 대표 후보자가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요청해 일찌감치 운영에 들어간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결정이다. 결심이 섰으니 좌고우면 하지 않길 바란다.
정부를 등에 업은 KT의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10.13%)을 누군가 매입하는 것도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을 막을 좋은 방법이다. 대표 후보를 뽑아 놓고 두 번이나 처음으로 되돌려 후보를 다시 뽑는 과정을 거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민연금이 대표 선출을 최종 의결하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또다시 반대표를 모은다는 소리가 들린다.
정치권에서 CEO 인사에 개입하자 주가가 올해 고점 대비 20% 가량 폭락한 이 혼돈을 어떻게 또 되풀이하려 할 수 있나.
정치권 입김이 거센 국민연금의 ‘지분 정치’가 끝나면 3년 뒤엔 KT를 탐내는 권력 실세 간 알력 다툼을 보지 않아도 될 듯하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을 펼 용자(勇者)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