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 1월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적극적 경영권 행사) 가이드로 나선 모습을 보고 오죽 답답하면 저럴까 싶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인 없는 회사’들의 회장 거취를 두고 잡음이 이는 상황을 특수부 검사로 잔뼈가 굵은 윤 대통령이 모를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스튜어드십이 주인 없는 회사에는 작동해야 하고, 주인 있는 회사에 대해선 과잉 행사되면 안 된다고 주문하며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KT와 금융권의 수장 선임과 관련해 한창 진통을 겪던 시기였으니 고민이 담긴 언급을 할만도 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훌쩍 흐른 사이 최대주주로서 소유분산기업 최고경영자(CEO) 인사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의 승자라는 얘기가 업계에 회자됐다. 이 정황 역시 윤 대통령의 귀에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5대 금융지주 회장 자리와 KT 대표직이 바뀌는 등 국민연금이 CEO들을 주물럭거리는 인상을 준 것과 관련 정부가 ‘보이지 않는 손’을 행사한 결과물이라고 의심하는 시선에 대해 윤 대통령은 어떤 생각인지 궁금하다. 아울러 국민연금이 정부의 입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곳이라는 점에서 업계에 ‘신(新) 관치의 시대’가 열렸다는 자조 섞인 한탄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지 답변을 듣고 싶다.
특히 KT CEO 후보 선정 과정은 마녀사냥을 절로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 기회만 되면 친기업을 강조하는 윤 대통령의 속내를 들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해 12월 구현모 KT 대표에 대한 차기 대표 선임 절차가 이뤄질 당시 여권이 기존 절차가 공정하지 않았다며 ‘밀실 단합’이라고 압박하자 국민연금은 두 번에 걸쳐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유력 후보가 스스로 사퇴하게끔 만드는 데 조력해 ‘기업 사유화’ 의심을 샀다.
물론 구 대표가 재임 기간 KT의 가치를 훼손했다면 물러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근거가 없다. 오히려 작년 한 때 10여년 만에 시가총액 10조원을 웃도는 기대 이상의 경영 성과를 낸 구 대표가 최종 후보 면접에도 오르지 못하게 한 압박이 ‘필요악’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구심만 든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근로자가 노후를 대비해 낸 돈을 잘 운용해서 최대한 수익을 올리기 위해 투자한 기업의 CEO 선정에 공정성 제고를 요구하는 일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권의 정치적 코드에 맞춰 물갈이 선봉에 나서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는 건 당파적 행태로 오해를 살 만하다.
국민연금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지만 스튜어드십 권한을 남용한다면 결국 관치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윤 대통령이 모르지 않을 터다. 역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대부분이 ‘관’ 출신이라는 사실도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금융위원회에서 오래 근무한 현 이사장이 주인 없는 회사에 대해 정부가 주인 노릇을 하려 한다는 눈총을 불식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관치에 대한 우려와 비판적인 시선은 결국 관의 주체인 정부가 해소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금융지주회사들과 KT는 뚜렷한 대주주가 없어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탓에 더욱 더 투명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친정권 인사를 책임자로 앉히는 데만 앞장서면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기업의 제도적 장치를 올바르게 운용하기 위한 규칙 마련에 더욱 힘을 쏟는 것이 바람직하다.
윤 대통령이 스튜어드십을 언급한 김에 본인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지배구조 개선의 해법 중 하나로 검토해보는 건 어떨까. 의결 과정에 참여하는 노동자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주인 없는 회사 이사회의 투명한 구성을 기대해볼만 하다.
주인 없는 회사의 이사회가 정부 입맛에 맞는 거수기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스튜어드십이 시장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윤 대통령도 인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