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국정농단 사태가 알려진 2016년 '정경유착'이라는 말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측으로부터 다시 듣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전경련은 이 전무후무한 사건의 한 축으로 지목됐던 경제단체 아닌가. 정경유착은 전경련에서 ‘금기어’로 통할만했다.
그럼에도 지난달 23일 정치인 출신인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에 오르자 이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정경유착은 결국 언급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흘렀다. ‘윤석열 캠프 출신 정치인’이라며 정경유착이라고 지적한 한 기자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부터 시작하겠다”고 약속한 김 직무대행 사이에서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재계 거물들이 한번쯤은 맡고 싶어 했던 ‘경제 대통령’ 자리는 어쩌다 정치인이 차지하기에 이르렀을까. 이는 전경련이 진보정권인 문재인 정부 내내 투명인간 취급 받고, 친기업을 앞세운 보수정권 윤석열 정부에서도 끝내 패싱 단절을 막아내지 못한 결과임은 분명해 보인다.
전경련이 정경유착을 회생의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한 건 아닌 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의 ‘정치 멘토’라 불릴 정도로 정권의 실력자인 김 직무대행을 위기 상황에서 굳이 데려온 것이 존립을 도모하기 위한 정치 술수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정치학을 전공하고, 기업경영 경험은 없는 이가 경제단체 수장이 된 것은 누가 봐도 자연스럽지 않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김 직무대행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전경련이 관치(官治)라는 비아냥 속에 요지경으로 전락하지는 않을 지 우려스럽다.
최근 정부가 금융권의 한 기업 회장 내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인 ‘관치 금융’ 논란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400여개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전경련에 관치 드라이브가 걸려선 곤란하다. 불미스러운 기억이 여전히 국민들에게 남아 있는데 색안경을 끼고 볼 여지를 줘서야 되겠는가.
전경련이 구태를 탈각하길 바란다. 창조적 파괴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손경식 회장이 제안한 한국경영자총협회와의 통합론을 단순히 유혹으로만 치부할 필요는 없다. 꼭 통합이 아니어도 좋다. 이왕 정치인에 의한 경제단체 정화에 나섰으니 외부 수혈에 과감히 나서면 패싱 타파에 적잖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김 직무대행이 정경유착이 아닌 정경협력을 하길 기대한다. 관치를 진화시킨다고 해서 조직의 영구성을 담보할 해결책이 될 순 없다. 관치를 없애면 유착은 자연히 없어진다는 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