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신인 윤석열의 '어퍼컷' 당선…'검사 출신 대통령' 새 역사 썼다
정계 입문 8개월 만에 대통령 당선 최초 ‘검찰·서울대 법대·서울’ 출신 당청관계 등 과제 산적…리더십 시험대 오를 듯
[토토 사이트 커뮤니티 박준영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정계에 입문한 지 8개월 만으로, 그는 처음 나서는 공직선거를 대선으로 치러 승리한 최초의 사례가 됐다.
정권교체의 깃발을 손에 쥔 윤 대통령 당선인은 최초의 검찰출신 대통령이 된다. 검찰에서만 26년을 일했고, ‘적폐청산’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2019년 7월에는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는 검찰의 수장으로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당부를 행동으로 옮겼다. 문재인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을 지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를 벌였고, 검찰개혁을 놓고 정부여당과 대립하기도 했다.
임기 142일을 남겨두고 검찰총장에서 중도에 물러나는 수난을 겪었지만, 이는 윤 당선인에게 변곡점이 됐다. 인지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그는 단숨에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당 경선에서 5선 중진인 홍준표 의원을 꺾은 데 이어 대선레이스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막판까지 박빙의 승부를 벌인 끝에 승기를 잡았다.
◆ 9수 끝에 사법고시 합격…대형 수사 맡으며 ‘스타 검사’로
윤 당선인은 1960년생으로 올해 62세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대학교수 부부의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충암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그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교내 동아리인 ‘형사법학회’가 주최한 모의재판에서 판사 역할을 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기도 했다.
정계에 입문한 지 1년도 안 돼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사법시험은 ‘8전 9기’ 끝에 합격했다. 그는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연수원 동기로, 1994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윤 당선인은 ‘스타 검사’로 이름값을 높이기도 했다. 그는 1999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 소속 검사 시절 김대중정부의 실세로 알려진 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의 뇌물수수 사건에서 자백을 받아내 구속시켰다. 이후 2002년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년간 변호사로 일했으나, 2003년 다시 광주지방검찰청으로 복귀했다. 변호사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로 복귀한 뒤에는 대형 수사를 맡으며 ‘특수통’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맡아 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당시 노무현 후보 선대위 정무팀장)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노 전 대통령의 딸인 정연씨를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를 담당해서는 사표를 각오하고 밀어붙인 끝에 정몽구 회장을 구속기소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BBK 특검에 참여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맡았다. 또 부산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수사를 맡아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윤 당선인은 또 2013년 4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되면서 ‘강골 검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상부의 반대에도 국정원을 압수수색하고 직원을 체포했다. 상부의 수사외압도 폭로했다. 그해 10월21일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서는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해 주목받기도 했다.
‘항명 파동’으로 그는 그해 11월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2016년 1월에는 대전고검 검사로 전보됐다. 약 4년 동안 한직을 떠돌던 윤 대통령은 2016년 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합류하며 복귀에 성공한다. 그는 삼성그룹 뇌물 의혹을 담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구속했다.
◆ 文정부 검찰총장으로 취임…‘조국 수사’ 등으로 갈등 격화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올랐다. 전임 이영렬 지검장(사법연수원 18기)에서 다섯 기수를 건너 뛴 파격 인사였다. 윤 당선인은 2018년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을 다시 파헤쳐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다. 2019년에는 ‘사법농단’ 수사를 마무리하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법관 14명을 기소하기도 했다.
2019년 6월에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청와대는 인선 배경에 대해 “탁월한 지도력과 개혁 의지로 국정농단과 적폐청산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국회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과 바른미래당이 청문보고서 채탁을 거부했지만, 문 대통령은 임명안을 재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며 취임했지만, 윤 당선인은 정부여당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조 전 장관의 사모펀드 논란과 입시비리 의혹 수사를 시작으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 의혹, 송철호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이다. 갈등은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임명되며 극에 이르렀다.
추 전 장관은 채널A 검언유착 의혹과 한명숙 전 총리 위증교사 의혹 등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고 6가지 이유를 들어 윤 당선인에게 정직 2개월 징계를 청구했다. 윤 당선인은 집행정지 취소소송을 제기햇고, 인용 결정에 따라 복귀했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지난해 3월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임기를 넉달 여 앞두고 사퇴했다.
◆ 정치 신인이 쓴 새 역사…당청관계 등 해결 과제 산적
정부여당과 불화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윤 당선인의 인지도는 가파르게 상승했고, 야권은 ‘거물급 신인’의 등장에 환호했다. 결국 그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정신을 앞세워 정권 교체를 이뤄내겠다고 밝혔고 지난해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정치에 발을 담궜지만, 적응까진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에 입당해서는 이준석 대표와 불화설에 휩싸이며 구설에 올랐다. ‘전두환 옹호’ 발언 등 수차례 이어진 설화로 지지율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지만, ‘대세론’을 지켜냈다. 이 후보와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토론 능력과 행정 경험 열세가 주된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윤 대통령은 경쟁력을 입증하며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한국 정치사에 이변을 쓴 윤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도 많다. 그는 검사 출신의 첫 대통령, 서울대 법대 출신의 첫 대통령이자 헌정사상 최초의 서울 출생 대통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한국정치사의 새 페이지를 쓴 만큼, 윤 당선인이 안고 가야할 정치적 무게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최초의 ‘0선’ 대통령이 된 만큼, 민주당과의 관계와 당청관계 등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역학구도와 난관을 풀어야 하는 ‘리더십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