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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고르디우스 매듭' 풀리나…尹정부 강제징용 해법 공식화

2023-03-06     박준영 기자
2017년 대한불교 조계종 재일총본산 고려사에서 편찬한 사진자료집 '강제징용, 조선 사람은 이렇게 잡혀갔다'에 수록된 누워서 탄을 캐는 갱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정부가 6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방안을 발표했다. 행정안전부 산하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재단'이 재원을 조성해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에 준하는 금액을 우선 지급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로써 한일관계의 최대 쟁점이었던 강제징용 문제는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지 4년 4개월 만에 전환점을 맞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때부터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밝혀온 상황 속, 이번 해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복잡한 문제를 단번에 풀어내는 묘수)이 돼 양국이 다양한 현안에서 본격적으로 머리를 맞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입장'을 발표하며 "이번 해법은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력과 국위에 걸맞은 우리의 주도적인 그리고 대승적 결단이다.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닌 진정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우리 정부는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공식 채택했다.

대법원 확정판결 피해자 15명 가운데 3명만 생존해있는 '피해자 고령화'와 일본의 수출규제 및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 강제징용 이슈 여파에 따른 '한일 미결 현안 장기화'를 고려해 해법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마련한 방안에 따르면 판결금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자금의 수혜를 입은 포스코 등 국내 기업의 재단 출연으로 추진된다. 대법원 판결로 강제징용 배상 의무를 지게 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은 재단 기금 조성에 참여하지 않는다. 

정부는 그동안  일본 피고 기업들의 재단 출연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일본 측은 완강히 거부해왔다.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문제가 일단락된 만큼, 자국 기업이 배상에 참여할 수 업다는 이유였다. 일본 전범 기업들의 재단 출연은 무산됐으나, 박 장관은 이번 해법 발표를 계기로 자발적 기여에 나설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경색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우리 정부의 대승적 결단에 대해 일본 측이 일본 정부의 포괄적 사죄와 일본 기업의 자발적 기여로 호응해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측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가 1998년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대한 계승 의사를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전망이다. 당시 오부치 총리는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를 표명했고, 김 대통령은 불행한 역사를 극복한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강조했다.

박 장관은 "과거사에 대해서 일본으로부터 새로운 사죄를 받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이 기존에 공식적으로 표명한 반성과 사죄의 담화를 일관되고, 또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일본 전범 기업들은 양국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미래청년기금'(가칭) 공동 조성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학생을 위한 장학금 등 양국 청년들의 교류 증진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발표에 대한 평가는 나뉘는 분위기다. 경색돼 있던 한일관계에 '훈풍'이 불 것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일본 전범 기업들이 배상금 조성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두고 '반쪽 해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임재성 강제동원 피해 소송 대리인단 변호사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희가 검토했던 여러 가지 안 중에 가장 하수의 안, 최악의 안이 결국 결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임 변호사는 "순전히 한국 기업들만의 돈으로 소송에서 진 일본 기업의 채무를 면책시켜주는 안"이라며 "일본이 아무런 부담도 책임도 지지 않고 판결에서 진 자국 기업들을 면책시켰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외교적으로 승리한 날이 오늘"이라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한일 재계가 마련키로 한 '미래청년기금'(가칭)에 일본 전범 기업이 참여할 것이란 전망에 대해선 "전형적인 물타기"라며 "강제 동원 문제와 전혀 상관없는 일본의 출연"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며 "물컵에 비유하면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외교부는 "피해자들과 직접 소통한 결과 상당수 유가족들이 소송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했다"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조속한 해결을 희망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모든 피해자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 "많은 유족분들이 정부 구상에 대해 이해를 표해주셨고, 또 상당수의 유족분들은 이 문제가 조속히 종결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주셨다"며 "정부와 또 저희 재단은 앞으로 이런 피해자, 또 유족분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향후 진전 상황을 충실하게 설명 드리고, 또 의사 확인 노력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라며 "피해자 한 분, 한 분을 직접 뵙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성실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