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김하수 기자] 올해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시장은 잇단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 속 건설사들의 옥석가리기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 한해였다. 또 사업장 곳곳에서 공사비 증액을 놓고 조합-시공사 간 갈등이 커지면서 조합 방식 대신 신탁방식 ‘붐’이 일어난 해로 평가된다.
◇ 안전진단‧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완화…정비사업 대못 뽑혀
정부는 올초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해 ‘재건축 3대 대못’으로 꼽히는 분양가상한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안전진단 규제 등을 완화했다. 여기에 ‘1기 신도시 특별법안’도 통과시키며 지지부진한 1기신도시 정비사업의 물꼬를 터줬다.
최근 정부는 안전진단 없이 주택 노후성만으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 착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준공 30년이 지난 아파트는 안전진단 전에 재건축 절차에 돌입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손 볼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재건축 안전진단 등 재개발·재건축 관련 절차를 원점에서 검토해 다음 달 중 구체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안전진단은 재건축사업의 첫 관문으로, 안전진단 D~E등급을 받아야 조합설립 추진위원회 구성 등 본격적인 절차 진행이 가능하다. 안전진단 승인 전 재건축 착수가 가능해지면 재건축 사업 기간이 1~2년 줄어들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안전진단 단계가 생략되면 재개발·재건축 사업 기간이 최소 1~2년간 줄어들고, 그에 따른 조합 운영비, 금융 이자 부담 등의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정비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건설업계 정비사업 ‘무혈입성’ 바람 거세
올해 재건축‧재개발 수주시장에서는 건설업계의 ‘옥석가리기 현상’이 심화된 한해였다. 대다수 재건축‧재개발 시공사 선정 사업지에서는 건설사가 경쟁 없이 수의계약 방식으로 시공권을 획득하는 사례가 주를 이뤘다. 과거 정비사업 수주를 위해 출혈경쟁까지 마다않던 건설사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최근 진행된 서울 노량진1구역 재개발사업의 시공사 선정은 건설사가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아 유찰됐다. 이 사업장은 사업비만 1조원에 달할 정도로 매머드급 사업지로 꼽히며 건설사들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지만, 건설사들은 결국 노른자 사업장을 포기했다. 조합이 제시한 평당 730만원의 공사비 탓이다.
여의도 공작아파트와 과천주공 10단지도 비슷한 상황이다. 여의도 ‘재건축 1호 사업장’인 공작아파트의 경우 대우건설이 단독으로 입찰해 최근 시공사로 선정됐으며, 과천 알짜 재건축사업지로 평가 받는 과천주공 10단지 역시 삼성물산만 단독으로 응찰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치솟은 공사비를 고려하면 낮은 공사비로 사업을 따내봤자 오히려 손해라는 판단에 무리한 사업 수주보다는 철저한 사업성 분석으로 선별적 수주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같은 분위기는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날개 단 신탁방식 정비사업…서울‧수도권으로 확산
신탁방식 정비사업도 올해 재건축·재개발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올랐다.
올해 강남, 목동, 여의도 등 서울 알짜 정비사업지에서 ‘신탁방식’을 택한 조합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인천‧경기 등 수도권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에서도 신탁방식 정비사업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신탁사가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시행이나 대행을 맡는 구조로, 신탁사가 자금을 조달해 금융비용이 절감될 뿐 아니라 사업추진 과정이 투명해 조합원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추진위원회나 조합설립이 없이 사업을 추진해 주민 간의 이해관계를 두고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신탁사가 정비사업을 담당할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2016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도입 초기에는 10여년 이상 사업이 지지부진한 지방 정비사업장 외에는 신탁사를 찾는 조합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서울에서도 최근 공사비 인상이나 사업이 지지부진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조합들이 신탁 방식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추세다. 전문성을 갖춘 부동산신탁회사를 통해 불필요한 분쟁을 최소화하고 속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함이란 분석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공급을 해야만 하는 우리나라의 주택시장 특성상, 금융위나 금감원의 규제를 받는 신탁사가 정비사업에 참여할 경우 잡음 없이 안전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면서 “공사비 인상, 금리 인상 등에 따라 자금 조달 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인 만큼 신탁 방식에 대한 관심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