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커진 중노위…변화의 바람 불어야"
"'신뢰사회' 위해 '대안적분쟁해결' 적극 활용"
"조사관에 전문성·성취감 주는 환경 조성할 것"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중앙노동위원회, 변화의 바람이 필요하다."
취임 2주년을 앞둔 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은 최근 서울 중구 T타워에 마련된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서울사무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노사 간 이익과 권리 분쟁에 대한 조정과 판정을 주업무로 하는 독립적인 준사법기관이지만, 그동안 소극적인 역할을 하는 데 머물렀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위원장은 경제학 박사이자 단국대 명예교수로 한국노동연구원 동양분석실장,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한국노동경제학회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임금근로시간제도개선위원장을 역임하고, 2022년 11월 중노위원장(장관급 정무직)에 취임했다.
김 위원장은 제정 70주년을 맞은 노동위원회법이 현실과 일부 괴리가 있어, 중노위의 존재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사건처리의 신속성과 비용적 측면에서 장점이 있는 탓에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지만, 부족한 인력와 예산이 늘 한계로 꼽히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중노위에서 처리하는 사건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중노위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사건은 1만6027건에 이른다. 이는 2021년 1만5811건 대비 1.4% 증가한 사건이다.
김 위원장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면서 새로운 도전과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는 만큼, 중노위는 분쟁 해결을 넘어 신뢰 사회를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한다"면서 "취임 후 매 순간 신속하고 공정한 판결과 조정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고 갈등을 해결해 사회통합에 기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무량이 많아지고 활동 수당이 적어 소득이 줄기 때문에 중노위에서 일하는 조사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중노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활동수당(5만원)을 신설했으나, 대한민국이 궁극적으로 '신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들이 전문성을 키우고 성취감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취임 2주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중노위의 위상 제고를 위해 어떤 노력을 펼쳤나?
"중노위원장으로 취임하며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중노위가 그동안 소극적인 역할을 하는 데 머물렀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정 70주년을 맞은 노동위원회법도 현실과 일부 괴리가 있다. 중노위원장 임기 3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중노위가 국민의 신뢰를 얻고 다양한 이해관계간 갈등을 해결해 사회통합에 기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 분쟁 해결을 넘어 신뢰 사회까지 구축해야 하는 이유는?
"중노위에 접수되는 분쟁 사건이 나날이 늘고 있다. 지난해에만 1만6027건이 접수됐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노동쟁의 조정, 복수노조, 부당노동행위 등 집단분쟁 사건은 2499건으로 전년보다 17.4% 줄어든 반면, 부당 해고(징벌 포함)와 차별시정 사건 등 개별적 노동분쟁 사건은 5.8% 늘어났다는 점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개별적 노동분쟁 사건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 이는 결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신뢰'가 사라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신뢰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은 무엇이 있나?
"분쟁을 법적으로만 처리하게 되면 되레 갈등을 키우기도 한다. 중노위나 법원이 조사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당사자인 노사 양측보다 분쟁 상황을 더 잘 알고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노동 사건의 경우 당사자 간 대화와 화해를 통해 해결하는 경우가 60% 정도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30%에 불과하다.
취임 이후 화해를 통한 대안적분쟁해결(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ADR)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이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어 법이 '만능'은 아니다. 특히 고용 형태와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노사의 경계가 명확히 구분되는 분쟁보다 그렇지 않은 분쟁이 많아지고 있다. 명백하게 옳고 그름을 구분하기 힘든 분쟁이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분쟁의 양적 폭증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질적 복잡성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ADR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 ADR 활용 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ADR은 전반적인 분쟁해결시스템으로 단순히 당사자간 화해를 넘어 자문·교육·중재를 병행해 합리적 판단을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당사자 간 자율적인 해결을 지원해 사건의 효율적 처리를 돕고, 사용자와 근로자의 실질적 이익(권리·의무 관계의 신속한 정리, 일터로의 복귀, 신뢰 회복)을 도모해 수용성(만족도)을 높일 수 있다. 또 실질적 이익을 도모하기 어려운 소송에 비해 가성비(價性比, 비용·시간)는 물론 가심비(價心比, 협력·신뢰)도 높다. ADR을 공공부문과 민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갈등 해결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진정한 '신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ADR의 기능과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ADR을 활용해 분쟁을 원활하게 풀어낸 사례를 꼽자면?
"지난 5월 시작해 최근 임금단체협약 협상을 마무리한 한화오션을 비롯해 전면파업의 문턱까지 갔다가 극적 합의로 교통대란을 막을 수 있었던 경기지역 버스 분쟁에 ADR이 적용됐다. 항상 파업에 돌입하던 병원, 철도, 자동차 관련 사업장들도 ADR을 통해 노사 갈등을 풀어냈다. ADR에 대한 노조의 인식 변화가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이전까진 ADR을 통한 문제 해결에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지만, 갈수록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조사관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손실 비용을 막아야겠다는 의지로 발 벗고 뛰어준 결과다. 앞으로도 ADR을 활용한 적극적·예방적 조정 서비스를 확대해 노동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노사관계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 중노위에서 분쟁의 1차적 조정·결정 및 판정을 내리는 비율은?
"전체 노동분쟁 사건의 95%는 중노위에서 종결되고, 소송으로 가는 경우는 5% 정도다. 이 가운데 중노위의 판정이 뒤집히는 경우는 15%에 불과하다. 사실상 중노위의 판정이 대부분 수용되는 셈이다. 법원과 달리 중노위에서는 사건이 신속하게 처리되고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사건처리 비용이 무료인 데다, 월 소득 300만원 미만 근로자에 대해선 무료로 법률 대리인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 처리 기간 역시 평균 57일로, 1년 이상 걸리는 사법부 1심 소송 처리 기간(376일)보다 6배 이상 빠르다. ADR 방식을 통하면 사건 종결까지 평균 39일 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 업무량이 상당할 것 같은데, 어려움은 없나?
"일하는 환경이 녹록지 않다. 상근직원 400여명, 비상근직원 1800여명 등 2000여명이 노동 분쟁에 대응하기 위해 힘쓰고 있지만, 인력과 예산 부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물론 올해 중노위 예산은 465억원으로, 전년(449억원)보다 3.6% 증액됐다. 정부의 예산 긴축 기조 속에서 예산이 증액된 것은 중노위의 역할을 강화하고 자율적 노사분쟁 해결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중노위에 오려는 조사관들이 흔치 않다. 중노위 조사관들은 고용노동부에서 순환 근무로 오는 근로감독관들인데, 중노위로 오면 업무량이 많아지고 소득은 줄어든다. 활동 수당만 보더라도 근로감독관은 한 달에 25만 원이고, 조사관은 5만원에 불과한데 누가 오려 하겠나. 이마저도 중노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신설했다. 중노위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성취감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신뢰 사회를 구축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최근 '노동전문법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우선 현재 법원에는 노동전담부가 없다. 노동법원이 만들어지면 판사들에게 상당한 전문성이 요구된다. 물론 중노위가 법원을 대체할 순 없다. 다만 중노위에서 1차적 조정·결정 및 판정을 내리고 있고, 대부분 수용되고 있다. 또 중노위에 대한 수요도 갈수록 늘고 있는 만큼,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