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자 수필 '물미해안길'...에세이문예(겨울호)

권대근 문학평론가 섬네일. 사진=데일리한국DB
권대근 문학평론가 섬네일. 사진=데일리한국DB

기행문이 수평적인 구조를 가진다면, 기행수필은 수직적인 구조를 가진다. 우리나라 수필은 2,30년대는 기행문으로 불릴 정도로 기행문이 많았다. 문제는 기행문과 기행수필은 다르다는 것이다. 중고등 교과서에서 기행문을 기행수필과 같은 급으로 취급하니, 일반인들은 그 차이를 모르고, 일부 작가들 또한 기행문을 기행수필로 혼동하기도 한다.

에세이문예 겨울호 송정자의 수필 '물미해안길'은 단일 제재와 주제를 기본요소로 직조된 확실한 기행수필로서 문학적 효과를 극대화한 작품이다. 작가는 한 달살이 차원으로 남해로 가서 바다를 만난다. 제일 처음 접하는 게 남해 출신 시인 고두현이 쓴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란 시다. 

남해섬 출신 시인의 신춘문예 당선시를 외우고 남해로 떠났으니, 그 감동은 짐작하고도 남을 듯싶다.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주어서 '바다'라고 하듯, 그녀 역시 살면서 쌓인 아픔을 치유할 목적으로 남해행을 결행한 듯보인다. "사는 게 몹시도 허탈해 불현듯 길 떠난 여행자" "다 벗어던지고 나에게 올래. 푸른 바다가 읊조리듯 바람결에 건네는 다감한 음성에, 목이 메고 가슴 밑둥까지 서러움이 파고든다"는 대목이 읽는 이의 가슴도 후벼판다.

작가는 허탈하고 서러운 마음에 서울을 떠나 유배문학의 섬 남해 미조항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물미해안길의 풍경을 절경으로 받아들이고, 수필의 대우성체 문학의 특성을 살려 묘사해 잘 해나간다. 다채로운 물미해안이 포구를 감싸고 있는 마을부터 훑어가는데, 그녀는 어촌마을 어귀에 닿을 때마다 바람의 냄새가 다양하고 바다색깔이 다르다는 것에 진한 섬 기운을 느끼며 위로를 받고 있다. 이 수필의 매력은 풍경의 인상을 모사가 아니라 절묘한 묘사로 표현한 데 있다.   

'물미해안길'은 물건리에서 미조항까지 삼십 리 해안길을 칭하는 말이다. 송정자의 남해기행이 기행수필로 명명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단일 제재를 통해 하나의 주제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달간 남해를 기행하면서, 수필의 공간적 배경을 물미해안이 포구를 감싸고 있는 어촌으로 한정하고 있다. 물론 송정자 수필가는 남해의 여러 곳을 여행하고 손을 잡아주고 등을 두드려주는 남해의 파도와 바람, 그 따스한 눈길을 경험했겠지만, 그 경험을 수필로 쓰기 위해 제재 단위로 다섯 개의 글로 나누었던 것이다. 

여인의 유려한 허리 곡선이 낭창낭창 65구간이나 굽이쳐야 닿을 수 있는 길이 비단자락처럼 펼쳐진 해안이니 만큼 그 풍경이 주는 느낌이 처음 와보는 이방인에게는 다채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살면서 받은 약간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터라, 말을 걸고 손짓하는 해안길의 다양한 행위소 정물들이 작가에게는 응시로 다가섰을 것이다. 

그녀는 이런 느낌을 극락정토로 여기다가도 비가 오고 폭우가 쏟아지면 금방 집어삼킬 듯 시퍼렇게 작가를 불러다 앉히고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남해 바다는 한없이 보듬어주다가 또 뜨끔하게 눈을 흘긴다'고 적었다. 

이 수필의 압권은 묘사의 극치를 보여주는 다음 대목이 아닐까. "어쩌다 알라딘의 램프 속 거인의 그림자처럼 밀물이 해변을 포획할 때가 있다. 조잘거리는 몽돌을 덮치려 허연 거품을 입에 문 물결은, 더 이상 햇살에 아장대며 다가오는 친절이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만들고, 그로 인해 마음이 절룩거리고, 못다 해준 것에 연연해하고, 오만 가지 잡념이 여름 한철 용광로처럼 들끓는 이방인에게 따끔한 경고를 주려함인가. 세상살이에서 무엇이든 물색없이 떠안으려는 나의 대책 없는 신뢰감에 날선 경계심을 심어주고자 하는 것일까"

밀물이 해변을 포획하는 데서 세상살이의 진리를 포착하는 작가의 예리한 상관화가 문학적 성취를 안겨준다. 경계심없이 와락 안겨드는 자신의 안이한 태도에서 얻은 상처와 이로 인한 후회가 ‘허연 거품을 문 물결’에 비쳐나온다. 매몰차지 못하고 마음 약한 자신으로 인해 절룩되는 마음, 오만 가지 잡념 등의 혼란을 반성적 성찰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어 공감력이 크다. 정서의 객관화를 통해 자조적인 문체를 형성해 내는 데도 성공했다.

결말부에 가서 작가는 물미해안길을 객체화해, 하나의 행위소로 놓고, '길'이 전하는 메시지, "자꾸만 뒷걸음치는 나에게, 세상에다 등만은 돌리지 말고 저 앞바다를 보라고"를 담론으로 의미화한다. 유독 작가의 시선과 사물의 응시가 빛나는 이 수필의 쾌미는 작가가 바다라는 객체와 동등한 자격으로 소통하는 대우성에 있다고 하겠다. 모사보다는 묘사에 치중한 것과, 행위소 연결망이론은 물론 객체 지향 존재론적 접근을 통해 에세이테라피를 구축한 것도 큰 성과라 하겠다.

◆권대근 주요 약력

△경남 남해 출생 △'동양문학' 수필 등단(1988) △'문예사조' 문학평론 △'경북신문' 문학평론 △'중앙일보' 수필 신춘문예 당선 △현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명예회장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 번역서 '한국의 명수필', 문학이론서 '문장가로 가는 길' △수필집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등 25권 △부산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월강문학상, 여산문학상, 정과정문학상 등 수상

♣물미해안길 –글/송정자

여인의 유려한 허리 곡선이 낭창낭창 65구간이나 굽이쳐야 닿을 수 있는 길이다. 비단자락처럼 펼쳐진 해안, 남녘 바다 끝의 남해, 물건마을에서 미조항으로 접어드는 삼십 리 구간을 물미해안길이라 부른다.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지난여름 푸른 상처
온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남해 출신 고두현 시인은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의 시에서 철철 넘치는 그리움을 담아내었다. 시인의 길인 물미해안길 끝자락에는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같은 노을이 잠든 지 이미 오래였다. 바람난 봄볕처럼 허겁지겁 짐을 싸서 도망치듯 길을 나선 터였다. 

오월의 황금연휴에 묶여 수도권에서 아홉 시간이 넘도록 지치지도 않고 찾아온 길, 그 누구도 기다리지 않은 남해에서 온전히 나를 받아주던 길, 수억 광년을 달려온 별빛이 하나가 되어 은하수를 이루며 맞아준 물미해안길이다. 우리나라 남쪽바다를 통틀어 상징하는 남해(sea)의 남해(island)섬. 가파른 암벽을 끼고 섬 길에 오른, 삶의 빛을 따라 유구히 흘러가는 해안길이다.

꼬불꼬불한 뱀 꼬리가 요동치는 길을 수십 바퀴 돌아야 한다. 반대편 차가 없을 때는 차선을 넘어 부채처럼 휘어지는 조심성이 필요하다. 절벽에 바짝 붙으면 차바퀴가 휘청거릴 수도 있다. 천혜의 비경인 우리나라 해안길 중에서도 으뜸가는 물미해안길의 절경을 쉬이 지나가도록 해 두었겠는가. 깜깜한 암벽 길에 바람이 마음먹고 켜 놓은 불빛 때문일까. 밤바다의 빛깔에도 익어가는 봄기운이 스며들어서일까. 낯선 길인데도 낯설지가 않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점점 고단해져 갔다. 특별하고 귀한 만남일 줄 알았던 사람 관계가 형편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천둥소리를 내며 다가왔던 인연도 한낱 여치소리만큼이나 낮아져 소리 없이 사그라져버렸다. 사는 게 몹시도 허탈해 불현듯 길 떠난 여행자에게 물미해안길은, 안개 속에서 그 어떤 실오라기 장치하나 없이 맨살의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다 벗어던지고 나에게 올래' 푸른 바다가 읊조리듯 바람결에 건네는 다감한 음성에, 목이 메고 가슴 밑둥까지 서러움이 파고든다. 성서에 예수께서 모두 사랑하라 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라 하셨다는데, 그 어느 쪽도 서툴기만 했던 나에게 고개 끄덕여주는 물미해안은 늦은 봄날에 내려주신 신의 보속일까.

남해살이가 시작되었다. 다채로운 물미해안이 포구를 감싸고 있는 마을부터 훑어갔다. 어촌마을 어귀에 닿을 때마다 바람의 냄새가 다양하고 바다색깔이 다르다는 것에 진한 섬 기운이 스며든다. 송정 솔바람 해변, 방조어부림이 있는 물건항을 지나 은점마을과 대지포, 노구마을을 지나면 항도마을에 이른다. 몽돌해변을 걷다가 자르르 자지러지는 몽돌이 무리지어 발바닥을 간질거리면 두 팔은 허공을 휘젓고 있다. 파도에 씻겨 투명한 유리알 같은 초전몽돌해변까지 닿으면, 해는 느긋하게 기다려주지 않았다. 홍시 속살 같은 노을이 어느새 고개를 기웃거린다. 낮은 파도에도 찰박거리는 노을을 이 곳에서 볼 수 있을까.

미조항에서는 어느 곳을 목적지로 삼아도 마음씨 넓은 물미해안길을 거쳐 야 한다. 봄 햇살에 꾸벅꾸벅 오수에 들다가도, 밤바람에 잠시 몸을 누이다가도, 어느 때고 벌떡 일어나 품을 내어주는 살가운 길이다. 사랑하는 이의 가슴팍같이 다정하다가 때로 변덕스런 그의 품처럼 형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짙은 침묵 속의 장승같을 때도 있다. 또 다른 날은 낯익고 친절한 이웃처럼 곰살맞게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그럴 때 물미해안길의 환한 마중은 그 어느 극락정토가 이보다 더 구체적일 수 있으랴. 그러다가 비가 오고 폭우가 쏟아지면 금방 집어 삼킬 듯 시퍼렇게 나를 불러다 앉힌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남해의 끝 쪽 바다조차 한없이 보듬어주다가 또 뜨끔하게 눈을 흘긴다.

어쩌다 알라딘의 램프 속 거인의 그림자처럼 밀물이 해변을 포획할 때가 있다. 조잘거리는 몽돌을 덮치려 허연 거품을 입에 문 물결은, 더 이상 햇살에 아장대며 다가오는 친절이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만들고, 그로 인해 마음이 절룩거리고, 못다 해준 것에 연연해하고, 오만 가지 잡념이 여름 한 철 용광로처럼 들끓는 이방인에게 따끔한 경고를 주려함인가. 세상살이에서 무엇이든 물색없이 떠안으려는 나의 대책 없는 신뢰감에 날선 경계심을 심어주고자 하는 것일까.

인기척조차 없는 물건항 밤 바닷가를 거닐었다. 저녁노을의 잔광이 아스라한 방파제에서 두어 분이 찌를 드리우고 밤낚시에 빠져있다. 싸아한 밤공기를 뚫고 달려오던 파도가 칠흑 같은 정적에 움찔한다. 물방울처럼 부풀어 오르는 눈물을 감추려니 어스름한 달빛 아래가 제격이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 매본 사람은 알게 된다는 노랫말도 있지 않은가. 누군가의 관심이, 누군가의 다가옴이, 누군가의 세레나데가 얼마나 만지고 싶은 사람의 얼굴인가를. 바다도 외로울 때가 있을까. 오랜 세월 파도에 쓸리고 굴곡진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저 바다가 말을 걸어온다면, 나는 지체 없이 그 품속으로 뛰어들 수 있으련만. 바다가 목이 마르다면 부르튼 입술로 기꺼이 입맞춤 할 수도 있으리라.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굼틀대는 물미해안길이 풀어놓은 심곡의 길에서 잠시 멈칫한다. 이대로 넉넉한 가슴에 안겨볼까. 이 곳에서는 잎줄기에서 떨어져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꽃이 될 수 있을 것을. 여신 아프로디테가 피그말리온의 지극적인 사랑에 감동하여 그의 조각인 갈라테이아여인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었듯이, 간절한 나의 여망도 이루어질 수 있을까.

어느 새 남해 한달살이가 끝나갈 때 그 간의 인연 때문인가. 물미해안길이 고조 곤히 들려준다. 자꾸만 뒷걸음치는 나에게, 세상에다 등만은 돌리지 말고 저 앞바다를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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