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심포니 2024 피날레 무대는 ‘말러 교향곡 1번’
직접 찍은 흑백 방수포 사진으로 포스터 작업 참여
​​​​​​​“커다란 망토 두른 거인이 힘겹게 일어나는 장면 생각”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2024 피날레 무대를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으로 장식한다. 다비트 라일란트 예술감독은 ‘기억, 시간, 순환’을 주제로 인간의 정체성과 내면을 탐구한 세 명의 작곡가 작품을 엮어 한 해를 돌아본다.

오는 12월 7일(토)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국립심포니의 올해 마지막 공연은 노재봉의 ‘집에 가고 싶어.’로 포문을 연다. 2023년 작곡가 아틀리에 우수 작곡가로 선정돼 2024/25 국립심포니의 상주작곡가로 임명된 노재봉은 현재의 사회상에 관심을 둔다. 국립심포니의 위촉으로 세계 초연되는 이 작품은 고령화와 치매라는 현실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일반적인 관찰을 넘어 경험자의 시선으로 ‘기억’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이어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의 협연으로 라인홀트 글리에르의 ‘하프 협주곡 내림마장조(Op.74)’를 만난다. 지난 2월 기타 협주곡을 통해 실내에만 머물던 악기를 협주 무대로 끌어낸 국립심포니는 이번에 하프가 지닌 ‘과거의 영광’을 무대 위에서 재현한다. 고전양식과 러시아 낭만주의가 두드러지는 이 작품은 반복되는 주제의 변주를 통해 하프와 오케스트라의 유기적인 대화를 끌어낸다. 시간을 초월한 하프의 음색과 매스트르의 비르투오소적인 기교를 통해 하프의 매력을 재발견한다.

공연의 대미는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이 장식한다. 전통을 넘어서는 혁신적인 요소로 가득 찬 말러의 작품은 낭만주의의 새로운 확장을 끌어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인생의 본질을 사유함과 동시에 반복되는 구조를 통해 시간의 순환, 즉 ‘끝’은 또 다른 ‘새로운 시작’임을 상기시킨다. 라일란트 예술감독은 바로 그 점에 주목한다. 그는 시즌의 마지막을 말러 교향곡 1번으로 선택해 ‘끝’이 아닌 국립심포니의 ‘새로운 도약’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라일란트 예술감독은 “말러 교향곡 1번을 통해 처음과 끝을 동시에 이야기하고자 한다”며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말러의 작품을 통해 복합적인 감정의 파도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박찬욱 “얼룩지고 때탄 방수포 사진...더럽기보다는 숭고해 보여”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2024년 피날레 공연 포스터 이미지는 영화감독이자 사진작가인 박찬욱이 참여했다. ‘헤어질 결심’에서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녹음한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을 삽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한 그는 잘 알려진 ‘말러리안’이다. 박찬욱의 말러 사랑은 교향곡 1번으로 시작됐다.

“우연히 교향곡 1번의 3악장을 듣고 말러라는 거대한 우주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물론 2번을 듣고 5번을 알고, 6번에 반하고 9번에 울다 보면, 1번은 너무 통속적이고 얄팍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몇 년이고 이 곡을 멀리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정명훈 선생 지휘로 실연을 들은 사건을 계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통속적이고 얄팍하다는 인상 자체가, 통속적이고 얄팍했다는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무 죄의식 없이 1번을 실컷 듣습니다.”

음악 사랑이 듬뿍 느껴지는 고백이다. 박 감독은 그러면서 각 악장의 감상 팁도 덧붙였다. 그는 “셋째 악장에서 마르틴 형제 주제가 변주될 때, 그리고 피날레 악장을 여는 지옥 부분에서 어김없이 전율한다”라며 “장송행진곡 악장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던 망자는 4악장에서 지옥에 떨어졌다가 천국으로 상승한다”고 말했다.

포스터에 쓰인 사진 선정 과정도 밝혔다. 그는 “제가 고른 사진에는 무엇인지 모르는 어떤 커다란 장비를 덮은 방수포가 찍혀있다. 어떤 영웅, 고행자, 또는 이 교향곡의 본래 제목이었던 ‘거인’이 커다란 두건 달린 망토를 두르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장면을 생각했다. 이 옷은 얼룩지고 때탔다. 하지만 더럽기보다는 숭고해 보인다. 그러라고 흑백으로 찍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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