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 2일자 30면 게재
33명의 수필가 작품 '극본' 객색

한혜경 명지전문대 명예교수. 사진=주간한국 제공
한혜경 명지전문대 명예교수. 사진=주간한국 제공

이경은의 수필극 <튕>은 경이롭다.
33편이나 되는 수필을 극본으로 재탄생시킨 저력이 놀랍고, 극본의 완성도 또한 놀랍다. KBS 라디오 드라마 극본 작가와 클래식 음악 공연 각색 작가로 각각 10년 동안 다져온 실력과 안목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여기에 이경은만의 상상력을 가미함으로써 그의 수필극은 단순한 번안이나 각색을 넘어선다. 원작의 내용을 반복, 재생한 것에 그치지 않고 신비한 연금술로 빚어진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음을 알리고 있다. 

33편의 원작 수필은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32명 수필가의 작품과 고(故) 목성균의 작품으로, 유년 시절과 어머니, 가족, 살아가면서 겪은 일들과 소회, 삶의 희로애락,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 등을 진솔하게 담아낸 글들이다.

그리하여 <튕>은 묵직하다. 
그 묵직한 무게로 땅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튕겨 오른다. 수필가들의 고유한 경험과 사유가 생동감 넘치는 현장성으로 옷을 갈아입은 극본으로 튀어 오른다. 같은 내용이 새로운 언어와 형식으로 담겼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 선명하게 보여 주면서.

북토크 갖는 이경은 수필가. 사진=김철희 기자
북토크 갖는 이경은 수필가. 사진=김철희 기자

'극'이란 줄거리를 지닌 이야기를 무대에서 공연하기 위한 글이므로, 등장인물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서 모든 것을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기 어렵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특성이 있다.

이경은의 수필극은 극적 효과를 위한 플롯에 기반하여 장면을 배열하고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이러한 제약을 뛰어넘는다. 아울러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 원작자의 메시지를 강조하기도 하고, 원작의 순서를 바꿔 중요한 장면을 전면 배치하기도 하고, 수필에 서술된 작가의 생각을 내레이션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목성균의 <목도리>를 예로 들어보자. 원작은 1960년대 말 횡계의 겨울을 배경으로 따뜻한 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글이다. 극본은 아내의 하얀 손을 걱정하며 명태를 주는 아낙네들의 장면으로 시작함으로써, 이 장면이 이 수필에서 가장 중요함을 암시한다. 원작에서 다섯 줄 정도로 묘사된 부분을 동네 아지매 세 명과 아내의 대화로 확장하여,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하는 동네사람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그리하여 독자는 사건에서 비롯되는 극적 긴장감과 삶의 현장에 대한 감각을 체득하면서 원작 수필과 다른 결의 감동을 얻게 된다.

수필극에 작품이 수록된 원작 수필가들이 대거 참석해 기념촬영 하는 모습. 임승주(오른쪽부터. 표지 화가), 류외순, 노상비, 박금아, 장호병, 김현순, 박민재, 이경은, 원준연, 이영옥, 김경혜, 서미숙, 전경옥, 오송례, 박미경, 김철희(이상 수필가). 사진=김철희 기자
수필극에 작품이 수록된 원작 수필가들이 대거 참석해 기념촬영 하는 모습. 임승주(오른쪽부터. 표지 화가), 류외순, 노상비, 박금아, 장호병, 김현순, 박민재, 이경은, 원준연, 이영옥, 김경혜, 서미숙, 전경옥, 오송례, 박미경, 김철희(이상 수필가). 사진=김철희 기자

<튕>은 이제 튀어 올라, 첩첩이 쌓인 산등성이 위로 솟아오른다. 33편의 글은 33개의 삶과 소망, 꿈을 담은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

곧 <튕>은 장르의 경계를 넘어선 첫 시도로, 수필의 지평을 넓힐 뿐 아니라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읽는 독자에 한하지 않고, 극본을 읽고 공연을 보는 관객에 이르기까지 독자층이 확대됨으로써, 소통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릴 수 있다.

최근 디지털 기술 발달로 SNS나 유튜브 활용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짧은 수필극은 영상에 익숙한 독자층을 끌어들일 수 있으므로 독자층이 한층 다양해질 수 있다는 의의가 있다.

이제 책 안에 갇혀있던 글은 바야흐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고 있다.

◆한혜경 주요 약력

△서울 출생 △명지전문대 명예교수 △<계간수필> 수필 등단(1998) △<한국문학평론> 평론 등단(2002) △평론집 <상상의 지도> <시선의 각도> △글쓰기 이론서 <말 글 삶> <생각 글 말-내 안의 가능성을 보다>△수필집 <아주 오랫동안> <시간의 걸음> <이상한 곳에서 행복을 만나다>(4인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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